4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부른 이선희의 '인연'

등록 2020.07.02 15:44수정 2020.07.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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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가 나에게 다가온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2012년 12월의 어느 날 문학동호회에 갔다가 늦게 집에 왔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 프로그램 이름이 '불후의 명곡'이었다. 네 명의 가수들이 저마다 기량을 뽐내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바로 그날 이선희의 <인연>을 처음 만났다.


가수 소향이 예쁜 한복을 입고 나와서 불렀는데, 그런 노래가 있다는 것도, 소향이란 가수가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화면에는 노래 가사도 나왔는데, 그 가사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라는 가사는 너무 좋았다. 아마도 그 당시에 내가 여러 모임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나에게 잊히지 않는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그 노래는 나의 18번지가 되었다. 노래 가사를 늘 갖고 다니는 수첩 뒷면에 적어서 길을 오가며 외웠다. 그리고 입으로 수없이 흥얼거렸다. 이선희의 <인연>을 유튜브를 통해 얼마나 따라 불렀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사건들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랬다. 그 시간은 나에게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어준 날들이었다.

그 뒤에 가끔 이 노래를 교실에서 불렀다. 잘은 부르지 못했지만, 옛날의 기쁘고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감정을 충분히 살려서 부를 때 학생들은 환한 얼굴로 박수를 보내주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나만 보면 이선희의 <인연>을 불러 달라고 조르곤 했다. 어떤 때에는 나 혼자서, 어떤 때에는 그 학생들 몇 명과 같이 두어 대목을 불렀다. 학생들은 그 시간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2015년 3월의 어느 날이다. 1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그 가사가 칠판에 적혀져 있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학생들과 몇 시간밖에 만나지 않았고, 그 노래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글씨를 쓴 학생한테 물어봤더니 선배에게 들었다며, 꼭 그 노래를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교실이 떠나갈 듯이 손뼉을 쳤다. 그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은근히 그런 시간이 온 걸 속으로 무척 반겼다.

그 이듬해에 2학년 수업에 들어갔다. 20분가량 수업을 했을 때다. 한 학생이 "선생님, 오늘 영희(가명) 생일이에요. 좀 쉬면서 영희 노래 한 곡 듣고 해요"라고 말했다. 영희는 그 학급의 가수라고 일컬을 정도로 노래를 꽤 잘 부른다는 학생이었다. 교과서를 놓고 영희한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표정이 언제나 밝은 영희가 예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 학생들은 먼저 영희를 위해 생일축하 노래를 손뼉을 치며 불러주었다. 나도 학생들과 함께 크게 부르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다음은 우리가 모두 고대하는 영희의 노래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영희가 "오늘 저는 선생님의 애창곡인 이선희의 <인연>을 부르겠습니다. 그 노래를 선생님과 같이 꼭 불러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책상을 치고 박수를 열렬히 보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나는 생일을 맞이한 가수 영희와 그 노래를 불렀다. 학생들은 두 손을 들어서 율동을 했고, 노래 중간중간에 화음을 넣어주기도 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7년 3월 어느 날의 일이다. 학교에서 3월과 9월에 정기적으로 환경미화심사를 하는데, 그날 나는 심사위원 가운데 한 명으로 3학년 교실 창문과 복도 청소 상태를 담당하게 됐다. 열여섯 개 반이나 되기 때문에 꼼꼼하게 점검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두 부문을 마음속으로 정해서 그것만 보며 채점을 해나갔다.

3학년 2반 교실에 들어갔다. 대청소를 마친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거나 교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1년 전에 수업시간에 만난 학생들은 반갑다며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대여섯 명은 점수를 잘 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나도 만면에 미소를 띠며 점수 아주아주 잘 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바로 그때였다. 교실 뒤쪽에서 누구인가가 바로 그 노래 이선희의 <인연>을 부르기 시작했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그러자 그 반 학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그 노래를 다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봤다. 뒤에 서서 힘차게 그 노래를 이끄는 영희를. 영희가 그 반 학생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문과 여학생 반이라 학생 수가 40명에 가까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한껏 취해버렸다. 꿈만 같았다. 환상적이었다.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며 즐거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나도 열정적으로 불렀다.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이 또다시 올 수가 있을까.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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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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