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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성 따르면 안 되나요?" 청와대 국민청원 올린 이유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페이지 만들고 운동 시작... '부성 우선주의' 폐지 요구

등록 2020.07.02 09:55수정 2020.07.0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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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 인터넷 갈무리

    
이수연씨는 2019년 12월에 태어난 딸에게 아빠인 박기용씨의 성이 아닌 자신의 성인 '이'씨를 물려주고 '이제나'라는 이름을 지었다. 많은 이들이 '엄마 성 물려주기'가 가능한지조차 모르는 현실 속에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민법 781조는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원칙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고, 예외적으로 혼인신고를 할 때 부부가 합의하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수연씨도 예전부터 '엄마 성 쓰기'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기자인 남편 박기용씨가 여성가족부를 취재하다가 민법 781조의 개정으로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자녀의 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과 출산 후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던 이씨는 '엄마 성 쓰기'를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했고 남편인 박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씨는 혼인신고와 아이의 출생신고를 거의 동시에 하면서 아이의 성을 '이씨'로 지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이씨의 사례는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딸에게 아빠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물려주며), <한겨레>, BBC 코리아 등에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씨를 비롯해 아이에게 엄마 성을 따르게 하고 싶은 여성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는 가족을 비롯해 사회적 반발에 부딪히는 게 현실이다. 아빠의 성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굳어진데다가, 호주제가 폐지됐음에도 남성 중심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가부장제의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씨는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엄마 성 쓰기'에 뜻을 함께하고 있는 여성 4명(박은애 선다혜 윤다미 차수연)과 함께 의기투합했다. 페이스북에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라는 페이지를 만들고 '엄마 성 쓰기 법 개정 청원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녀에게 엄마 성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리며 활동 시작을 알렸다. 해당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0235)에는 현재 (2일 오전 9시) 792명이 참여했다. 

"어머니의 성은 여전히 '예외'... 실질적으로는 아버지의 성이 강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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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엄마 성을 줄 수 있는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해주세요' 청원 ⓒ 인터넷 갈무리

 
이씨를 비롯한 청원인들은 "민법 제781조 제1항에 규정된 자녀 성(본) 결정 방식을 '부성주의 원칙'에서 '부부간 협의 원칙'으로 개정"하고 "혼인신고가 아니라 출생신고시 하도록 변경"을 요구했다. 

나아가 "자녀 본인이 원할 경우 성(본)을 바꿀 수 있는 적절한 절차 마련"과
"부부간 협의를 통한 자녀 성(본) 결정 확산을 위해 대국민 홍보와 정책적 연구를 추진할 것", "관련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할 것", "관련 사항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 전담부서를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씨 등은 "2005년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아버지의 성만을 따를 것을 강제한 781조 1항이 개인의 선택권 제한과 양성평등에 위배된다고 헌법 불합치를 판결받았다"라며 "이후 개정이 되었으나 한계가 있다. 여전히 아버지의 성을 '원칙'으로 하고, 어머니의 성은 '예외'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 "(법 개정이) 어머니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작은 통로를 열어주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아버지의 성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존재한다"라며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 시 '자녀의 성을 모의 성(본)으로 한다'는 항목에 별도 표시를 해야 하고, 부부가 협의서도 추가 제출해야 한다. 아버지의 성을 물려줄 때는 거치지 않는 불편하고 부당한 절차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법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족 내 동등한 권리를 갖는 문제와도 관련 있다며 "민법의 부성주의 원칙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별하고, 어머니가 자녀에게 성을 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이는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성평등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청원인들은 "부성주의 원칙의 폐지는 우리 사회가 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상상하고 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양한 가족들이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청원 글을 마무리했다.

국민 73% '부성 우선주의 불합리'... "법무부가 법 개정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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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서 양식 4번 항목은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고 묻는다. ⓒ 대한민국 법원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30일에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79세 이하 국민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자녀 성 결정 방식'의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하여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73.1%가 찬성했으며, 여성(80.6%)이 남성(65.8%)보다 찬성 비율이 높았다. 또한 연령대가 낮을수록 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 의견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도 '부성 우선주의'를 '부모협의 원칙 전환'으로 바꾼다는 방안이 포함되어있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위원장 윤진수)도 지난 5월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지를 정부에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가족생활 내 평등한 혼인 관계를 구현하고 가족의 자율적 합의를 존중할 수 있도록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부모의 협의를 원칙으로 하는 등 민법의 전면 개정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호주제 위헌소송 대리인단이었던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2005년 개정된 민법에서도 부성 우선주의가 고수되었다"라며 "성을 '혼인신고' 때 정하는 규정도 입법 당시에 '가족(형제·자매)은 성이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법무부 산하 위원회가 의견을 내놓은 만큼, 법무부가 직접 민법 개정안을 내놓거나,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했으면 좋겠다"며 입법을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엄마성쓰기 #민법781조 #부성주의 #부성주의우선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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