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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엄마에게 생긴 욕창... '욕망' 드러낸 아버지

[리뷰] 영화 <욕창>, 가부장제의 상흔을 들추다

20.07.02 16:20최종업데이트20.07.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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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은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은 환자가 오래도록 고정된 상태에 있을 때 살이 무르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썩어들어가면서 생기는 질병이다.

2일 개봉한 영화 <욕창>은 70대 퇴직 공무원 강창식(김종구 분)의 아내 나길순(전국향 분)이 뇌출혈로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해 욕창이 생기며 벌어지는 난감한 상황을 다룬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건 그저 '보이는 상처'만이 아니다.

외려 영화 속 '욕창'은 상징적이다. '오래도록 고정된 상태'에 놓인 건 그저 나길순의 움직일 수 없는 몸만이 아니다. 70 평생을 '가부장'으로 군림해 온 아버지,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의 200만 원 넘는 연금과 그의 집이라는 경제력 아래 놓인 가족들의 부조리한 모습이 어머니 나길순의 욕창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 <욕창> 스틸 컷 ⓒ 필름다빈

 
욕창으로 드러난 가족의 실상

낡았지만 오래된 성곽과 같은 김종구씨의 집에는 그와 뇌출혈로 쓰러져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내 나길순씨가 산다. 아니, 그들 부부와 함께 나길순씨를 '전담 간병'하는 재중동포 유수옥(강애심 분)씨도 산다. 

간병인이라지만 이젠 집안 살림까지 책임지는 강애심씨가 마련한 밥상에 세 사람이 먹을 음식이 준비되면 김종구씨는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든다. 일반적으로 가족이 함께 하는 밥상의 모습은 어떨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식구를 기다리고 모든 식구가 앉으면 그때 비로소 함께 수저를 들지 않을까? 하지만 김종구씨는 강애심씨가 뒤늦게 아내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식사 장면이야 말로 이 집안에서 김종구씨가 누리는 권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내인 나길순씨의 식사와 집안 일 모두를 책임지는 강애심씨의 바지런한 간병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투병을 해온 나길순씨의 몸에 '욕창'이 생기기 시작한다. 강씨는 환자의 위치를 자주 바꿔주고 약도 발라보지만 상처는 쉬이 낫지 않는다. 

그러자 김종구씨는 딸인 지수(김도영 분)에게 연락을 한다. 그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딸에게 연락을 한다.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아 매사에 반목하는 큰 아들, 멀리 떨어져 립서비스만 능한 둘째 아들과 달리, 딸은 자신의 형편, 처지와 상관없이 집으로 달려가 '해결사'가 되곤 한다. 

점점 심해지던 어머니의 욕창이 방문 간호사와 강애심의 노력으로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그런 어머니의 욕창에 변주를 일으키는 건 간병인 강애심이다. 어머니를 위해 사온 과일도, 어머니의 옷장 속 머플러도 자연스레 강애심의 것들이 되어가는 상황이지만 몸조차 움직일 수 없는 나길순씨도,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딸 지수도 이렇다 할 토를 달기 어렵다.

강애심이 미묘하게 경계를 오가는 상황에서 기름을 부은 건 결국 강창식의 욕망이다. 어느덧 누워있는 아내를 제쳐두고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한 강창식은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의 불안정성으로 다른 선택을 하고자 하는 그녀에 대한 '무리한 결정'을 도모한다. 하지만 이는 숨겨져 있던 가족의 깊은 갈등을 건드리며 파국으로 향하는 끈을 잡아당긴다. 

피해자가 되는 여성들
 

영화 <욕창> 스틸 컷. ⓒ 필름다빈

 
영화는 어머니 나길순의 오랜 투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움직일 수 없는 어머니로 인해 재중 동포 전담 간병인이 함께 살고, 그런 상황을 딸인 지수가 뒷치다꺼리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욕창이 깊어지고, 거기에 아버지의 욕망이 드러나며 이 모순적 관계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 정점에는 아픈 어머니가 아니라 가부장으로서 자신의 불편이나 불리함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거기에 더 나아가 자신의 욕망마저 편승하고자 하는 집요하고도 파렴치한 가부장의 권세가 있다. 

그리고 결국 그런 '구조'에서 여성들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욕창으로 점점 더 살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어머니는 좀 더 나은 '케어'를 받을 수 있는 환경 대신 아버지의 편의를 위해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딸인 지수는 언제나 1분 대기조처럼 달려오곤 한다. 말조차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 오열하는 장면, 그리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하는 손으로 딸의 손을 잡아주는 장면은 모녀의 '난감한' 처지를 비감하게 드러낸다. 반면 아들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핑계로 이 '책임'에서 자신들을 방기한다. 

강애심이라고 다를까. 아픈 남편, 무능한 아들을 대신해 손주를 키우기 위해 이곳까지 온 그녀는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헐거워보이는 '사기'의 그물에 취약하고, 강창식씨의 욕망을 밀어내기에도 역부족이다. 

부모님 세대가 노인이 되어가면서 불가피하게 맞이하게 되는 <욕창> 속 상황들. 하지만 그 상황의 전개는 각 가정이 저마다 지녀 온 모순적 역사를 답습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픈 환자의 문제이지만 결국 그 속에서 곪아 들어가고 있는 건 해묵은 가족의 지체된 관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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