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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언유착 끊자"... '신문개혁 버스투어'를 아시나요?

전북 언론 개혁 이어온 시민운동사... "지역 공론장 역할은 전국신문이 아닌 지역신문"

등록 2020.07.01 18:20수정 2020.07.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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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통장·이장·반장(아래 통리반장) 등에게 신문을 나눠주던 일명 '계도지'가 현재는 주민홍보지 등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 경남에서 전국 최초로 구정홍보용신문구독예산, 일명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후 전국에서 계도지 폐지 열풍이 불었지만 아직 서울 25개 자치구별로 계도지 예산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는 1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은평구청은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계도지 예산, 6억 2382만원을 올해 책정했다. 

이에 <은평시민신문>은 계도지 예산을 개혁한 지역을 찾아 계도지 폐지의 필요성과 관언유착, 예산낭비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한다. 

기획취재 두 번째 방문지는 전북 지역이다. 전북에서는 2001년 남원시가 계도지를 폐지한 뒤로 2003년도에 전북에서 계도지가 사라졌다. 당시 계도지 폐지운동에 앞장섰던 전북 민주언론시민연합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과 손주화 사무국장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보고 지역 언론의 발전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기자 말


[관련기사]

서울 25개 자치구, 신문 뿌리는 데만 100억원 '훌쩍' http://omn.kr/1ny8z
"지역신문 아니면 지역문제 얘기할 곳 없어" http://omn.kr/1ny90
"슬그머니 살아난 '계도지'... 관언유착 뿌리 뽑아야" http://omn.kr/1o4rr
 

전북 민언련 손주화 국장과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은평시민신문


언론과 지자체 유착문제 제기하며 전북서 계도지 폐지운동

새만금간척사업은 당시 전북지역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지역의 최대사업인 만큼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지역 언론이 그 역할을 해야 했지만 시민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 


박민 소장은 "지역 언론이 여론의 다양한 공론장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토건세력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북민언련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언론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토건세력의 유착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전북민언련이 창립된 1999년은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상승하던 시기였다. 계도지 폐지를 위해 농민회, 전북참여시민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무원직장협의회 등 24개 단체가 함께 연대했다. 그 결과 '계도지 예산철폐를 위한 전북지역협의회'를 결성하고 "재정을 악화시키고 지역여론을 왜곡시켜온 계도지 구독예산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2001년부터 전북민언련을 중심으로 펼친 계도지 예산 폐지운동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건 2002년 들어서다. 지역 언론과 행정기관의 대표적인 유착사례로 지적되고 있는 계도지 예산이 김제·진안·무주 등에서 폐지돼 14개 시·군 중 9개 시·군에서 완전 폐지됐다. 그러나 익산·고창·순창·장수·임실 등 5개 시·군은 주민계도용 신문 구입비를 여전히 책정했다. 당시 가장 많은 계도지 예산을 편성한 곳은 익산시로 9500만 원 규모였다. 

당시 전북 지역의 경우 전주, 군산을 제외한 12기 시군이 계도지 구입비로 약 6억8천만 원을 책정했다. 전주와 군산은 계도지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고 실과에서 구독하는 수준이었다. 

박민 소장은 "명분이 확실했고 경남 등에서도 계도지 문제제기가 있어서 2000년 9월 전국 언론단체 연석회의에서 계도지 폐지운동을 같이 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 말에 14개 시·군을 대상으로 계도지 싸움을 시작했고 당시 익산시 계도지 예산이 제일 많아 익산시를 중심으로 시장, 시의회 면담, 시청 앞 항의 시위, 시민서명운동, 시의회 예산 통과 시 방청투쟁 등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계도지 거부의사를 밝히고 이를 1면에 실었던 새전북신문 ⓒ 은평시민신문


2001년에는 계도지 폐지를 위한 '신문개혁 버스투어'가 진행됐다. 전북 지역을 순회하며 시장, 군수, 의회 면담 등을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익산시가 계도지 예산을 조금 줄이기 시작했고 2001년 남원시가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계도지 예산을 폐지하는 성과를 냈다. 

박민 소장은 "계도지 폐지문제 이외에도 기자실 문제, 관의 홍보비 문제 등이 있었다. 한 번에 모든 문제를 짚을 수는 없으니까 가장 명분이 확실한 계도지 문제부터 부각됐다"며 "계도지 예산 폐지는 워낙 명분이 확실했던 만큼 자치단체장들도 이 예산을 유지하겠다는 반응을 내놓지는 못했고 탐탁지 않게 여긴 언론사들도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당시 한국기자협회 보도에 따르면,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을 만난 익산시장은 계도지 예산을 폐지해 이를 통리반장의 자료구입비용 등으로 전환하고 완주군수는 계도지 예산 폐지를 시장군수협의회에서 의제로 설정해 적극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전했다.  

행정에서 보통 계도지 지급의 근거로 지금까지 얘기하는 부분은 '통리반장 편의제공'이다.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문구 하나로 수억 원대의 계도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시민단체들은 "인터넷 기반 구축이나 방송 이용료, 신문 구독 등 정보통신을 확대할 수 있는 비용을 지급하고 당사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장했다. 통리반장에게 정보를 제공할 목적이라 하더라도 선택권은 통리반장에게 있고 신문구독에 한정 지을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신문사 내부에서도 계도지 거부운동이 시작됐다. 창간 한 달을 넘긴 <새전북신문>은 1면에 '본지는 계도지를 거부합니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계도지 예산 배정을 받을 경우 도민의 소중한 혈세가 낭비되고 관으로부터 계도지 구입을 내세워 기사 압력을 받아 언론의 기본 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서라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박민 소장은 "계도지를 없애고 싶어 하는 단체장이 의외로 많다. '혼자하면 정 맞는다, 다른 곳이 없애면 같이 없애겠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명분이 있으니까 단체장들끼리 연락하더니 일시에 다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전북지역의 계도지 폐지 시민운동은 시민들의 혈세가 부당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해 상당한 결실을 얻었다는 점에서 시민권리회복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자실 운영, 홍보비 지출 문제 

관언유착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된 계도지 폐지운동은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 행정의 홍보비 지출 문제해결로 이어졌다. 

2000년 12월 <한겨레21> 보도에 따르면 "계도지 철폐하는 것만으로 관언유착의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형태인 자치단체의 홍보비 예산 배정과 각 단체마다 발행하고 있는 시보 군보 제작비 등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한다"는 전북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이 담겨있다. 

박민 소장은 "홍보예산의 가장 큰 문제는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홍보예산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점이다. 홍보예산을 쓰더라도 공식적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보예산을 집행하면서 홍보효과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언론길들이기용으로 집행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계도지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전북시민사회단체들 ⓒ 은평시민신문


계도지는 없어졌지만...

풍선효과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박민 소장은 "전북에서 계도지 예산을 없애는 데 성공했지만 지역 언론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사라진 계도지 예산은 홍보 예산으로 흘러들어갔고 최근엔 계도지와 유사한 사례들도 나타나 전북민언련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손주화 국장은 "홍보비 사용내역을 매년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는데 사업예산이 매년 많아지고 있다. 2007년부터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구독료, 광고료, 업무추진비, 선물구입비 등을 찾아서 발표하면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예산으로 숨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경남에서는 계도지가 폐지된 이후 지역언론발전지원 조례가 만들어졌다. 전북의 경우는 어떨까? 박민 소장은 "시도는 했는데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지원기준 마련에 발행부수, 유가부수 등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신문사 별로 격차를 공식화 하는 거라고 신문사가 반대했다"고 전했다. 

계도지 예산 이외에 홍보 예산도 공식화하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대해 언론사들의 반대가 있었다. 공식적인 시스템보다는 밀실에서 유착관계를 통해 얻어내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홍보 예산을 빼고 논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박민 소장은 "홍보예산은 공개 영역으로 드러내서 합의를 통해 조례로 담아서 기준에 따라 집행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신문 지원 필요성 

지역신문은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지방분권시대를 맞이해 그 역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디어를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 지역신문의 난립 등은 지역 언론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민 소장은 "지역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고 지역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건 전국지가 아니라 바로 지역 언론이다. 그래서 지역 언론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민 소장은 "지원을 하더라도 지원목표가 분명히 있어야 하고 설사 지원사업 중 구독지원 항목이 있더라도 주민들이 어떤 매체를 선택할 것인지 선택권을 주는 등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며 "보도 자료를 그대로 싣는 신문을 구독하라고 강요하는 건 지금 시점에서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역 언론 스스로도 본래 설립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하고 지원을 하더라도 지역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업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 언론의 옥석이 구분되고 건강한 지역 언론이 발전할 수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별로 여전히 계도지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박민 소장은 "독재정권이 통리반장을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만든 게 계도지고 그때 관용신문이었던 서울신문을 주로 배부했다. 이 역사를 간략히 언급하면 시민들은 당연히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계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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