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 빠는 소리가 아득해질 때 비로소 엄마는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등록 2020.07.01 09:59수정 2020.07.0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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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추억하며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분유를 먹던 아이의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며 물건들을 추억과 함께 정리하던 날은 행복의 잔상으로 남았다. ⓒ 이샛별

모유 수유를 중단한 이후부터 아이는 젖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주방으로 향하는 발소리부터 분유통을 여는 소리와 젖병 소독기에서 젖병을 꺼내는 소리까지 아이는 늘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 소리를 상상해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는데도 어떤 소리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달그락'거린다고 할까. 집으로 찾아온 산후조리 선생님이 초보 티 팍팍 내던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젖병을 빨 때 소리가 나요."
"공기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요."
"좀 더 젖병을 기울여 주세요."


아이를 대하는 자세는 전문가의 모습이었지만, 청각장애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선생님도 잘 몰랐던 것 같았다. 눈대중으로,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면서 아이가 젖병을 빨 때마다 공기가 생기는 이유와 젖병 빠는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들 예준이는 유난히 분유를 먹고 나서 잘 토하는 편이라 엄마와 선생님, 모두가 걱정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트림을 시켜도 곧잘 게워내 하루 동안 바꾼 옷만 해도 산더미였다. 그러다 보니 젖병을 빠는 아이의 모습을 하루 내내 집중해서 봐야했다. 조금 불편했지만, 아이가 분유를 다 먹고 난 뒤 행복한 미소를 보일 때면 충분히 위안을 받았다.

그때는 '아이가 젖병을 빨 때마다 생기는 공기가 식도를 넘어가 위에 가득 찼을 때 가스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구토 현상이 생긴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늘 노심초사했었다. 그 엄마는 이제 아이의 일상을 함께 했던 젖병과 분유통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어쩌면 이 일이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이별의 단계가 아닐까 싶었다.

기우였던 걸까.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지 오랫동안 보채거나 칭얼거리지 않는 아이에게 새삼 고맙기만 하다. 아이의 입 모양과 분유를 흘리지 않고 잘 넘기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보던 그때의 엄마는 지금에서야 젖병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말한다.


"서툰 손길에도,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던 네가 어느새 이별을 경험하네. "
"괜찮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야."


그 후 예준이는 젖병을 더이상 찾지 않고, 빨대컵과 금세 친해졌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만남과 이별을 체득했다. 엄마는 아이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하며 '비움'을 배웠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할 순간을 담기 위해서 지나간 추억을 비울 줄 아는 '태도'가 필요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의 마음을 나눠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젖병 빠는 소리는 나만 몰라도 괜찮았다. 엄마의 걱정과 다르게 아이는 스스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젖병을 빠는 소리를 스스로 알았던 것처럼.
#농인 #엄마 #아기 #젖병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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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다수 매체 인터뷰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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