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라구요? 먼저 인정부터 하시죠!

그와 나는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만이라도 인정해 줬으면

등록 2020.06.26 09:05수정 2020.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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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생과 자주 싸웠다. 네 살이나 터울이 졌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진 않았다. 동생이 악바리였다. 녀석은 하나도 지지 않았다. 난 처음엔 잘 참다가도 약이 바짝 오르면 몇 대 쥐어박곤 했다.

동생은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눈물로 형의 만행을 고발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총채를 거꾸로 들고 나를 부르셨다. 단단한 대나무 자루로 방바닥을 '탕, 탕' 내리치면서 겁부터 주셨다. 바지를 걷어 올릴 땐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엄마의 첫 마디는 늘 이거였다.

"형아가 돼서, 그것도 네 살이나 더 먹은 게 어린 동생을 패? 동생을 이해하고 감싸줘야지."

그랬다. 엄마는 나에게 동생을 이해하라고 했다. 이해가 뭔가. 깨달아 안다는 뜻이다. 잘 알아차리고 그게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상의 원인과 의미까지 제대로 알고 수긍하는 태도다. 그러니까 나에게 동생을 이해하라는 건 녀석의 한없는 욕심과 쇠심줄 같은 고집이 옳은 일이라는 말과 같았다. 옳다고 수긍하라는 말씀이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나는 도저히 녀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선은 나 같으면 안 그랬을 거라 그랬다. 만약 내가 동생이었다면, 나처럼 이해심 많고 자상한 형님의 말씀을 고분고분 잘 듣고 따랐을 거다. 덤벼들고 욕까지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전혀 아니었다. 녀석은 논리도 없었고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그건 그냥 어깃장 놓기였다. 떼쓰기, 억지부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해하고 말 것도 없었다. 녀석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해하라는 거다. 어머니께서도 녀석의 실체를 아셨다면 그런 말씀 안 하셨을 게다. 어머니는 그 숨겨진 진실을 알지 못하셔서 그러신 거였다. 만약 어머니에게도 그런 동생이 있었다면 나보다 더 세게 때려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걸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믿질 않으셨다. 정말 미칠 듯 답답했다.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어머니의 매가 무섭고 아파서가 아니었다. 억울해서 그런 거였다. 게다가 그때 나는 겨우 일고여덟 살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럴 땐 '인정'이라는 말을 써야 옳지 싶다. 인정도 이해와 뉘앙스는 비슷하다. 사전적 의미도 '확실히 그러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을 조금 다른 의미로 쓸 때가 있다. 확실하지 때도 인정을 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미로 쓸 때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패배를 인정한다', '(참 내키지 않지만) 네 의견을 인정한다' 따위의 경우가 그렇다.

골프용어로 컨시드(concede)란 말이 있다. 아주 짧은 거리를 남겨둔 퍼팅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직접 공을 치지 않고도 1타로 홀인(hole in)했다고 간주해 주는 것이다. 유난히 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럴 때 '인정'이라 하기도 한다. 솔직히 속으로는 그러기 싫을 거다. 승부가 걸려 있을 때는 더욱 그럴 터다. 그래도 넉넉하게 '인정', '컨시드'를 외쳐주는 골퍼는 매너 좋은 동반자로 소문난다. 그게 인정의 힘이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했다.

'네 동생이 욕심쟁이에 황소고집인 거 내가 잘 안다. 근데 어쩌겠니. 그래도 네 동생이니 형아가 인정하고 받아 줘야지.'

만약 그러셨다면 나는 동생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거다. 더 많이 참고 그가 바뀌길 기다렸을 거다, 더 이상의 분란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뜸 이해부터 하라셨다. 단계를 한참 건너 뛴 거다. 뭐든 순서가 있다. 스텝 바이 스텝이다. 이해보단 인정부터 했어야 했다. 일단 받아들이고 난 연후에 이해하려 노력하는 게 맞다. 어머니께서 잘못 생각하신 거다. 난 그래서 더 이해해 주지 않았다. 

차별과 억압 그리고 강요는 폭력이다

지난 15일 미연방대법원은 LGBT(성소수자,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가 성정체성을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 받는 것은 위법이라 판결했다. 소식을 전한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 내 26개 주에서 그런 차별이 합법적 관행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해고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했다. 인권 선진국이라 알려진 미국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다니 놀라웠다. 나라전체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와중인지라 새삼스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그들(LGBT)을 이해할 수는 없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렇다. 어떻게 그러나 싶기까지 하다. 맞아 죽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나는 이성애자다. 간접적으로라도 그들의 방식을 경험할 수 없어서 그렇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리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일면 당연하다.

하지만 난 그들을 인정한다. 그들도 사람이다. 나와 본질적으로 같다. 한 하늘 아래 함께 공존하는 엄연한 인격체다. 단지 생각이 서로 다른 거다. 타고난 본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것이다. 이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정상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들은 그들의 방식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거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 일 게다. 그건 개인의 문제다. 개인의 선택은 여하한 순간에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게 범죄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수의 생각이라 해서 그게 곧 규범이 되는 건 아니다. 다수가 소수를 차별하거나 배제해서도 안 된다. 강요도 안 된다. 강요한다고 바뀔 일도 아니다. 그건 폭력에 다름 아니다. 이념이나 종교를 폭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다. 강요하는 쪽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 있다. 나치가 그랬고 IS가 그랬다. 설사 강요하는 바가 진리라 해도 그렇다. 그래서 그동안 그들을 차별하고 심지어 해고했던 미국의 회사들은 이해는 고사하고 인정조차 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해와 인정은 별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할 순 있다. 성소수자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그건 당신들 몫이라고 인정은 할 수 있다. 그래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통과 분열은 상대방을 그런 인정조차 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가치 따위는 물론 이려니와 아예 존재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난리를 겪고 있는 거다.

언감생심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모두가 서로를 인정만 해 줬으면 좋겠다. '참 잘했어요' 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상대의 존재만이라도, 그와 나는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만이라도 인정해 줬으면 한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르다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건 옳지 않다. 멸시하고 혐오까지 하는 건 원시적이다. 참 어렵겠지만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본다.
#이해와 인정 #차이 #성소수자 #차별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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