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민권

등록 2020.06.18 15:13수정 2020.06.1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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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지방법원 판사인 뷔르마이어 박사(Dr. Ulf Buermeyer)가 대표로 있는 독일의 인권단체 '자유권협회'(Gesellschaft für Freiheitsrechte)는 최근 성적자기결정권에 관련된 헌법소원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에 제기하였다. 주된 내용은 '주민등록부'(Personenstandsregister)에 기록하는 성을 개인이 결정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2020년 4월 22일 독일 연방대법원(Bundesgerichtshof)에서 내린 판결에 불복하는 것이다.

독일의 공영방송인 ARD의 2020년 6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이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남성'(männlich)도 '여성'(weiblich)도 아닌 성으로 확인된 사람이 나중에 '여성'(weiblich)으로 표기되는 난을 삭제할 권리를 달라는 요청을 거부하였다. 사실 독일의 주민등록법(Personenstandesgesetz)에 따르면 '성적 발전에 변이가 있는 사람'(Personene mit Varianten der Geschlechtsentwicklung)은 공문서 상의 성별 표기를 나중에 수정할 권리가 이미 보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독일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권리는 자신이 '혼성'(Intersexualität)이라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오로지 의학적인 '혼성자'(Interperson), 곧 육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판명이 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맞서 '자유권협회'는 성별은 육체가 아니라 개인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이 생각하기에 공문서에 자신의 성이 잘못 표기되었다면 그것을 고칠 권리가 국민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막는 것은 차별에 해당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2018년부터 모든 공문서에 성별을 기록하는 난에 남성과 여성 이외에 '다성'(divers)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자유권협회'는 이러한 자기의 성을 결정하고 수정할 권리 행사에는 오로지 의사의 확인서가 있어야 하는데,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의 행사를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차별이기에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인식과 법적 보호에 관한 또 다른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20년 6월 15일 미국연방대법원(Supri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에서는 성차별에 관한 여러 사건(Bostock v. Clayton County, Ga., Altitude Express v. Zarda, and R.G. & G.R. Harris Funeral Homes v. Equal Opportunity Employment Comm'n)을 통합하여 1964년 7월 2일 제정된 미국 역사의 기념비적인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7조에 나와 있는 '성'(sex)의 개념을 시대에 맞게 정의하였다. 곧 이 시민권법에 나온 '성'은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트랜스젠더'(transgender)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판결한 것이다.

이 판결과 관련된 관청인 클레이톤 군(Clayton County)의 공무원으로 오래 근무해온 보스톡(Gerald Bostock)은 게이 소프트볼 리그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앨티튜드 익스프레스 회사(Altitude Express)에서 근무하던 자르다(Donald Zarda)는 자신이 게이라고 밝히자마자 해고당했다. 그리고 해리스 장례회사(R.G. & G.R. Harris Funeral Homes)에 다니던 스테픈스(Aimee Stephes)는 입사할 때 남자라고 했다가 나중에 고용주에게 앞으로는 여자로 살겠다고 밝힌 이유로 역시 해고당했다. 이 세 사건 모두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7조를 근거로 차별을 당했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고용주가 어떤 사람이 단지 게이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를 하는 것은 민권법 제7조에 위배된다." 종교적으로 보수색이 뚜렷한 미국에서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 사실 이번만은 아니다.


사실 20세기 이후 인권에 관한 의식과 제도가 급격히 개선되는 상황에서 모든 개인의 민권을 포함한 인권은 거부하기 힘든 개념이 되었다. 오늘날 개인의 인권은 자유와 평등을 모두 포섭하는 근본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수용을 요청하는 당위에 속하는 것이 되었다. 논쟁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는 '과연 성적 지향이 인권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법적으로 결국 동성애자들의 결혼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동성애와 관련된 정부 정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동성애자들의 혼인의 합법성 인정과 법적 혜택 부여이다. 혼인은 단순한 법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 행위이기 때문에 그 의미와 형식의 변화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도 의미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을 중심으로 세계의 많은 국가들에서는 동성혼을 법적으로 허용하여 이성혼과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동성혼(same-sex marriage)을 법제화하였다. 이후 벨기에(2003), 스페인(2005), 캐나다(2005), 남아프리카(2006), 노르웨이(2009), 스웨덴(2009), 포르투갈(2010), 아이슬란드(2010), 아르헨티나(2010), 덴마크(2012), 브라질(2013), 프랑스(2013), 우루과이(2013), 뉴질랜드(2013), 룩셈부르크(2015), 아일랜드(2015), 독일(2017)이 뒤를 이었다. 미국의 경우는 매사추세츠 주(2004)를 시작으로 로드아일랜드 주(2013)에 이르기까지 주별로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과정이 지속되었다. 2013년 기준으로 시민 결합(civil union)을 포함하면 미국의 20개 주가 동성혼을 법제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어 마침내 2015년 6월 26일 미국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이 미국수정헌법 제14조에 입각하여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미국 전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것이다.

사실 동성혼 이전에 이미 덴마크(1989)에서 시작된 '시민 결합'(civil union)은 그린란드(1996), 독일(2001), 영국(2005), 체코(2006), 슬로베니아(2006), 스위스(2007), 헝가리(2009), 오스트리아(2010), 리히텐슈타인(2011)에서 법제화 된 제도로 활용되어 왔다. 국가별로 법적인 제한에 차이가 있지만, 동성혼과 시민 결합(civil union)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자녀의 입양이나 출산의 제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도 점차 완화되는 추세로 영국과 같이 시민 결합에서 동성혼의 법제화로 진행하는 단계를 많은 국가들이 밟아왔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서양의 선진국들이 동성 혼인을 법제화 하는 추세에 있는 현상의 원인을 흔히 세속화와 상대주의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여론의 호의적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퓨연구소(Pew Research Center)의 2019년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61%가 동성혼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반대를 표명한 사람은 31%에 불과하다. 2011년을 기점으로 찬성이 반대를 추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13년 6월 25일에 있었던 미국 연방 대법원의 결혼보호법(DOMA) 위헌 판결 이후 동성애자들의 동성혼을 포함한 성소수자들의 권리 보호에 50% 이상이 찬성 의견을 보였다. 이후 현재까지 그러한 추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에도 그러한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개신교 주류 교회의 백인 신자들의 66%, 가톨릭 신자들의 61%가 동성혼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수교파에서는 여전히 반대가 높다. 그러나 극도로 보수적인 복음주의 개신교회의 백인 신자조차도 2004년(11%)에 비해서는 18%p가 늘은 29%의 찬성률을 보이고 있다. 흑인 개신교 신자의 경우는 44%가 동성혼을 지지하고 있다. 이렇게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유럽은 물론 이제 미국도 성소수자의 인권, 특히 행복추구권과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의 시대정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로 나가고 있다.

이렇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을 중심으로 동성혼의 법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의 변화에 있다. 사실 혼인의 효력을 교회가 독점적으로 통제하던 시대가 종말을 고한 지는 오래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성사혼의 효력을 무력화 시키고 사회혼(civil marriage)에만 법적 효력을 인정하였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제국도 1875년 '사회혼법'을 제정하여 오로지 사회혼만이 법적 효력을 지닌 것으로 규정하였다. 가톨릭교회가 1566년 트리엔트공의회 칙령으로 사제 앞에서 두 명의 증인과 더불어 거행된 성사혼 이외의 혼인은 무효라고 선언했지만 그 이전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혼인은 개인간 또는 집안 간의 사적 합의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곧 인류 역사에서 혼인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고 혼인 당사자들의 합의로만으로도 충분했었다. 이것이 정밀한 의미에서의 '사실혼'(common-law marriage)이다. 그것을 교회가 중세부터 통제해온 것일 뿐이다. 나중에 세속 정부가 도입한 사회혼 제도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국가가 간섭하는 것으로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고 역사적으로도 사실혼에 매우 뒤지는 제도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제 '동거'(cohabitation) 또는 '시민결합'(civic union)도 법적으로 성립된 사회혼과 동등한 법적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미 2013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96년 제정된 연방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이 "수정헌법 제5조에서 보호되는 인간의 자유를 침범하였기에"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법에서는 동성혼 부부에 대하여 세금, 자녀 상속, 복지 제도 등에 관련된 혜택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방 결혼보호법 3조에서는 "부부"의 개념이 "이성 커플"에만 해당된다고 정의하며 동성혼 부부에게는 이성혼 부부에게 보장되는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위헌으로 판결되면서 "혼인"과 "부부"의 법적 개념을 이성 간의 관계에만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판결은 "미국 대 윈저 사건"(United States vs. Winsor)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2007년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동성혼을 하고 뉴욕에 거주하던 윈저(Edith Winsor)는 자신의 배우자였던 스파이어(Thea Spyer)가 2009년 사망함에 따라 유산 상속을 하는 과정에서 세금 감면 조치가 결혼보호법을 근거로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게 되자 2011년 뉴욕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2012년 6월 6일 존스(Barbara S. Jones) 판사는 결혼보호법 제3조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고 2012년 10월 18일 순회 항소심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다. 이에 미국 검찰이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결국 법은 최종적으로 윈저의 권리를 보장하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때 연방 대법원은 이 사건과는 별도로 "홀링스워츠 대 페리 사건"(Hollingsworth vs. Perry)에 대하여 캘리포니아 주가 추진하고 있는 동성혼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동성혼을 허용하는 13번째 주가 되었다.

사실 서양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일반에서 혼인, 나아가 가정의 개념은 변하고 있다. 많은 경우 부부와 자녀로 한 가정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한부모 가정, 조손부모 가정, 단독 가정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이른바 '비전통적' 가정의 증가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맺은 평생 공동 운명체의 당위성이 현실 상황 앞에서 그 힘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동성혼 가정의 증가가 이러한 시대정신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인지는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적으로 21세기에 들어와서 세속적 가정의 정의가 더 이상 한 남성과 한 여성의 배타적인 평생 공동 운명체만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지 남녀의 평균 수명의 차이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가정이 반드시 후손을 보는 목적을 달성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부부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의도적으로 자손을 낳지 않고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20세기 이후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인구의 증가가 가져오는 파국적인 미래의 예측으로 인간이 온 땅에 퍼져서 지구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땅에 대한 지배가 인간의 탐욕의 무한 충족이라는 그릇된 목적을 위한 무한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러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물질적 욕망의 무한 충족을 위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이성적 성찰의 결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이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성적자기결정권에 관한 헌법소원과 미국연방대법원이 '성'의 개념에 대하여 내린 판결은 사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흔히 사용하는 말에 "정상"(normal)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의 반대말은 "비정상"(abnormal)이다. 이 단어는 오래전부터 목수가 사용하는 직각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norma"에서 나온 것이다. 비유하자면 주어진 자로 재어 보아서 목수의 생각과 맞아 떨어지면 정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는 판단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모든 사회에는 규범(norm)이 있고 그 사회 구성원은 정해진 규범을 따르도록 요청받는다. 그런데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사회 여기저기에서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원래 이 단어는 2007~2008년에 발생한 경제 위기 직후인 2009년 '필라델피아시신문'(Philadelphia City Paper)이 시민운동가인 글로버(Paul Glover)의 말을 인용하면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그런데 그 의미가 확대되어 현대 사회가 더 이상 과거의 '규범'으로는 더 이상 적절히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도 유기체처럼 상황의 변화에 적응한다. 특히 독일과 미국에서 최근에 진행되는 성소수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에 관한 법적 제도의 변화는 그러한 적응 기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 #뉴노멀 #헌법재판소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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