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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버리기로 결심한 중학생 딸, '맞아서'가 아니다

[서평] 부모의 우울증과 무관심의 폐해를 다룬 청소년 소설 '진짜 가족'

등록 2020.06.17 11:14수정 2020.06.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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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장면이 시시때때로 떠올라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처음 접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상시키거나,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궁금해 다시 들추게 하는 인상 깊은 작품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고통을 그린 영화 <생일>도 그런 작품이다. 지난해 한동안 이 영화의 몇 장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엄마인 순남(전도연 역)의 감정이 격해져, 저녁밥을 먹다가 집 밖으로 쫓겨난 예솔(김보민 역)이가 계단에서 웅크리고 훌쩍이는 모습은 특히 자주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윤찬영 역)를 잃은 순남의 충격과 상실감, 그로 인한 우울증 그 폐해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 '저러다가 (수호 동생) 예솔이까지 잃는 것 아냐?' 조마조마, 안타깝게 봤다. 그 때문에 한동안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세월호 관련 뉴스 등을 볼 때면 이 장면이 떠올랐다.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는 엄마 이야기나, 아동 학대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울컥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더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진짜 가족> 책표지. ⓒ 우리 교육

다시 이 장면을 복기하게 된 건 지난 4월 <진짜 가족>(우리 교육 펴냄)을 읽으면서다. 주인공 히요리도 예솔이처럼 엄마가 겪는 트라우마로 상처를 입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히요리는 자신에게 웃어주지도, 안아주지도 않는 엄마 주변을 맴돈다. 혼자 놀거나, 끊임없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언제나 슬프고 아프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그리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아이 모습이 연상됐다. 동시에, 예솔이의 모습이 겹치기도 했다.

아이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엄마
 
엄마가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거나 안아준 기억도 없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마트에 가도 나는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언제나 필사적으로 따라 다녔다. 하지만 걸음 빠른 엄마를 눈에서 놓치기 일쑤였다. 나는 슈퍼에서 미아가 된 적이 두 번 있다. 미아센터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펑펑 울었다. 미아가 된 것은 무섭지 않았다.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그것이 너무나 무서워서 눈물을 쏟았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두 번 모두 데리러 왔다. 담당자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몇 번이나 꾸벅꾸벅 인사하고 내 손을 꽉 잡았다. 잡힌 손이 아팠다. 아팠지만 마음이 놓였다. 이제 엄마가 나를 두고 가거나, 내가 엄마를 잃어버릴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1쪽)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가기만 해도 지레 끔찍해하며 히요리를 밀쳐내곤 했던 엄마였다. 단 한 번도 웃어준 적도 없다. 그래서 히요리는 모든 엄마가 그런 거라고 알고 자랐다. 하지만 그 엄마가 동생이 태어나자 환하게 웃었다. 동생의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히요리는 비로소 알아차린다. '우리 엄마만, 나에게만 그런 것'이라고.

그런 엄마를 보며 히요리는 '내가 사랑받을 짓을 하면 되겠지. 그러면 동생처럼은 아니어도 조금은 사랑해주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제 할 일을 알아서 하거나, 소리 없이 집안일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칭찬은커녕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히요리의 엄마는 그런 것들마저 사사건건 못마땅해하며 도리어 그를 미워한다.

히요리는 이제 열다섯, 중학생이다. 엄마는 누가 봐도 못된 짓을 해도, 그마저 감싸줄 정도로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히요리는 언젠가부터 '미움만이라도 피하자, 최대한 엄마의 눈에 거슬리지 말자'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엄마는 그마저도 못마땅해한다. 히요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싫은 것이고, 그래서 한 집에 사는 한 엄마의 미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히요리는 엄마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집을 뛰쳐나와 밤거리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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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우울과 무관심은 아이에게 또다른 상처를 안긴다. ⓒ pixabay

소설은 같은 상황을 두고 각자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히요리 편에서 히요리는 동생이 태어나던 초등학교 2학년 때를 회상한다. 소설을 어느 정도 읽을 때까지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첫째의 마음, 즉 청소년의 성장통을 다룬 소설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아니었다.

출산이란 엄청난 일을 겪으며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자신이 낳은 딸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는 한 엄마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낳은 딸에게 겹겹의 상처를 주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다시 상처를 준 후 자책을 되풀이하는 아이코의 현실이 아프게, 그리고 측은하게 와 닿았다.
 
"부모라서 상처 주는 일도 있는 거라고요"
"남이라면 상관없는 것도 부모라서 상처받기도 한다구요" (157쪽)

엄마가 딸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이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무조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부모와 자식 사이란 이래야 된다는 신념이 가족을 속박하고 괴롭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163쪽)
 
이 책은 청소년 소설로 분류됐다. 출판사 우리 교육에 따르면, 이 책은 '가족이라 해도 서로의 다른 점이 부딪치며 균열을 일으킨다면 때로는 각자의 시간과 거리를 넉넉히 두고 살아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하는 소설'이다. 이런 설명에 동감이다. 그런데 아쉽기도 하다. 

청소년 소설인 만큼 청소년에게 뭔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태어난 직후부터 버려지다시피 자란, 히요리다. 그야말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미움을 받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히요리다. 엄마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런 히요리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히요리 이야기를 두고, 청소년들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읽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벼운 우울증 증세조차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는, 이를 그냥 두면 그 감정이 점점 깊어지고 죽음으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소중한 존재인 아이를 학대하는 등 또 다른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히요리의 아빠 신야는 출산 직후부터 아내의 눈빛이 자신이 낳은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 아울러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되려 '아이를 낳은 여자는 본능적으로 모성애라는 것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그 모성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언젠가는 아이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문제를 간과한다.

오랫동안 '모성은 선천적이며 본능적인 것'이라고 간주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모성은 후천적이며, 출산과 육아 환경에 따라 좌우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 속 히요리 아빠처럼 모성 신화를 대책 없이 믿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히요리의 엄마처럼 '아기의 얼굴을 보면 숨이 막힌다'는 고백을 하면 '엄마 실격'이란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혼자 앓으며 병(육아 우울증)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아내와 히요리 간의 갈등을 계속 느끼면서도, 둘이 알아서 하도록 모른 척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히요리의 아빠는 이 방법이 가족 모두에게 좋으며,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가정을 지키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거나, 비겁하게 도망쳤다. 그런데 진정 가족을 위해선 무엇이 옳았을까?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히요리 부모들에게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청소년들에 앞서 부모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진짜 가족

이토 미쿠 (지은이), 고향옥 (옮긴이),
우리교육,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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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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