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독립전쟁 전승 기념일을 제정하자

등록 2020.06.09 10:33수정 2020.06.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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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일이다.

봉오동 전투는 지금부터 100년 전, 1920년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최진동의 군무독군부, 안무의 국민회군이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라는 연합부대를 편성하여 중국 길림성 화룡현 봉오동 계곡에서 일본의 정예부대인 월강추격대대를 맞아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훈춘사건을 일으키고, 10월 14일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한국 주둔군 2개 사단과 연해주 주둔군 3개 사단에서 25,000여명의 정예 군인을 차출하여 독립군 탄압부대를 편성하였다.

한편 우리 독립군은 홍범도 장군을 사령관으로 1,400여명의 독립군연합부대를 재편성하고,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600여명과 함께 2,000여명의 독립군이 1920년 10월 21일부터 6일 동안, 연변 화룡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차례에 격전을 치른 끝에 일본군을 완전히 패퇴시킨 일련의 전투가 청산리 대첩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600여명을 살상하고 우리 독립군도 150여명이 희생되었다.

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지휘체제가 상이한 10여개의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통합작전을 전개했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죽음을 각오한 희생정신과 화합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군 부대의 주도세력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 망명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하여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10년 동안 3,500여명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사령관과 이장녕 참모장을 비롯한 중견 간부들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었고, 이청천이 이끄는 교성대가 홍범도부대에 합류하여 인적 기반이 된 것이다.

독립전쟁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독립운동 단체들이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 개별적인 전투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벌려왔다. 그러나 봉오동, 청산리 전투 전승 100년을 맞이하는 금년에는 6월 7일에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서는 정부의 후원으로 "독립전쟁 전승 100주년 기념행사"로 격상시킨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였고, 독립군 부대들이 연합하여 봉오동, 청산리 대첩을 거두었다. 또한 우리 학계에서도 1980년대부터 봉오동 청산리 독립전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러므로 봉오동,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아 무장투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독립전쟁이란 개념을 정립해야 될 것이다.

또한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이후 1945년 해방 될 때까지 선열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끈임 없이 싸웠던 의병투쟁과 독립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국민들에게 분명히 세기기 위하여 '독립전쟁 전승 기념일'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기념일은 독립전쟁의 첫 승전보를 올린 봉오동 전투 전승 기념일인 6월 7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독립전쟁 #홍범도장군 #김좌진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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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을 정년 퇴직하고 현제는 보훈처에서 지정한 현충시설에서 해설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세미나나 학술회의에 자주 참여하면서 소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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