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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종, 여성, 20대... 코로나19 속 '노동재난 종합세트'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 ⑫] 성차별 겪으며 일하다가 코로나19 터지자 해고

등록 2020.06.02 17:49수정 2020.06.04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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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재난을 마주했다. 일상의 회복을 향한 갖가지 노력과 정부대책이 세워졌으나,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고 있던 사회에서 재난을 마주한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에 처하고, 정당한 가치 인정 없이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돌봄노동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재난위기 대책이 논의 되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와 삶터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기획을 세워 총 13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해 여성의 현장 상황을 알리고자 한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회사는 건재한데 여성들은 해고... 간접고용 없어졌으면"]

경북 모지역에 있는 화장품 제조회사에서 일했던 이강희(가명)씨는 지난 3월 초에 수습종료통지서를 받았다. 수습종료통지서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당사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여 경영난으로 수습종료를 통보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오전 갑자기 통지서를 받았고, 대표와의 20여 분의 면담으로 해고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강희 씨가 입사한지 딱 두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입사 때 정규직이라고 하였고, 수습기간을 포함한 계약기간이 끝나면 연봉협상을 위해 다시 계약서를 쓰게 될 거라고 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떠나서 취업을 했고, '이제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겠구나' 했는데 해고를 당하니 억울했다. 그리고 다시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가야 할 텐데 또 일자리가 얼마나 있을지 등 여러 생각들이 '불안'이라는 단어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20년 3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20대 산업별 취업자 증감>표. 2019년 3월과 비교해봤을 때, 상당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심각한 고용단절을 겪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강희씨처럼 일자리를 잃은 20대 여성들은 통계청 자료 속에도 존재한다. 2019년 3월과 코로나19가 발생한 올 3월을 비교한 '20대 산업별 취업자 증감표'를 살펴보면 20대 여성노동자는 교육서비스업(299천명), 숙박 및 음식점업(201천명), 도매 및 소매업(152천명), 제조업(146천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36천명)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재난을 겪으면서 제조업(-43천명), 교육서비스업(-27천명), 숙박 및 음식점업(-21천명), 보건업 및 사회복지(-13천명) 현장에서 20대 여성노동자들은 사라져 갔다. 코로나19 속에서 자신의 재난을 차마 이야기하지 못한 채, 앞이 보이지 않는 고용단절의 터널 앞에 서게 되었다.

일터에서 여성노동자에게 요구하는 것

화장품 제조회사는 강희씨의 두 번째 직장이었다. 첫 직장을 그만 두고 쉬면서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일자리가 별로 없었다.


"여러 군데 면접을 많이 보러 갔는데 거의 다 떨어졌어요. 부산까지 가서 면접도 보고. 첫 취업을 준비할 때보다 더 많은 원서를 넣었는데도 어려운 거예요. 취업사이트를 보면서 혹시 경북에는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 찾아보다가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저에게는 도전이었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일한다는 게."

강희씨는 이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두 번 봤다, 마지막 면접은 대표와 일대일 면접이었는데, 업무와 상관없는 '부모님은 뭐하시냐, 피부가 참 좋다, 쌍꺼풀은 수술한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황했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카톡으로 술을 마신 대표가 자기가 요즘 많이 힘들다며 개인 상담을 해달라고 하거나, 업무 시간 후에도 "회사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하는 사원이 있으면 자기에게 이야기해라, 그것도 업무다" 라는 카톡을 보내 온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대표는 다른 여성 직원들에게도 업무톡, 개인톡을 한다고 했다.

일터에서는 여성노동자에게 꾸밈과 감정, 돌봄노동을 무제한으로 요구한다. 가부장제에서 작동하는 성역할을 차별 아닌 '여성성' 또는 '능력'으로 포장하며, 그것을 더욱 권장하고 강화시키려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한 20대도 예외일 수 없다.

"출근하면 대표 방에 들어가 책상을 닦고 정리해요. 그리고 매일 대표 구두 닦아오는 것도 했어요. 제가 오기 전에는 회계 담당하는 주임님이 했대요. 또 주임님이 하던 엑셀 업무, 탕비실 청소, 간식 나눔도 제 일이 되었어요. 한번은 새로운 헤어제품이 나와서 써봐야 된다면서, 대표가 자기 머리에 테스트해보라 해서 대표 머리 감기는 것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현타가 좀. 굳이 이런 거까지 왜 해야 되지?"
 

<2019년 제3회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시STOP 조기퇴근시위> 참여자들의 퍼포먼스. 한 참여자가 일하면서 겪었던 외모평가를 피켓에 적어 발표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생각했던 일이 아니었다. 경력 없는 20대 여자여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자기 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채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며 잡일을 하는 마음은 늘 불안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발생하니 역시나 강희 씨부터 해고가 되었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도 가장 먼저 작동하는 성차별

강희씨는 대부분의 경력 없는 20대들은 어디를 가도 잡일밖에 할 수 없고, 그래서 그만큼의 임금만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단절 이전의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김창환, 오병돈, 2019)에서 대졸 20대 청년층의 졸업 직후 2년 이내 소득을 비교해 본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19.8%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30대가 되면 남성의 임금은 증가하지만 여성의 임금은 완화되거나 감소하여 격차가 더 심해진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격차는 남성은 관리직, 전문직에, 여성은 판매, 교육, 복지 등의 서비스직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 구조에서 더욱 심화된다.

일상에서의 성차별은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는 특히 대인서비스가 주로 이루어지는 숙박, 음식점, 교육 서비스업종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 업종에서 일하는 대다수는 여성노동자들이다. 일방적으로 강요되어지는 연차휴가 또는 무급휴가, 또한 생계비를 감당하기에 부족한 휴업․휴직수당, 근무시간 감소, 직무의 변경 및 전가(돌봄 위주 업무로), 급기야 해고에 이르기까지 '노동재난 종합세트'를 한꺼번에 받고 있다. 이 '재난 세트'는 경력과 근속년수가 짧고, 업무 중요도와 비중이 적은 직무에 있는 여성노동자, 특히 20대들이 우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구조화되어 있는 성차별의 민낯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시스템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상실이 사회적 돌봄의 공백을 가져오는 걸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재난에, 성차별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버린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긴급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그에 온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구조에서 여성이 온전한 생계부양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성평등한 구조로의 전환을 요구해야 할 때이다.

* [상담] 코로나19 관련 여성 노동상담 :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tel.1670-1611(전국공통) /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담전화 tel. 1644-1884(전국공통)

* [참여] '코로나19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 https://bit.ly/2020womenworker
#코로나19 #꾸밈노동 #성차별 #20대 여성 #임금차별타파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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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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