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연재코로나192461화

미국에서 왔습니다, 'K방역'이 성공한 이유가 이거군요

자가격리 중인 해외입국자가 한-미 오가며 느낀 것... 양국의 코로나19 대처는 초기부터 달랐다

등록 2020.05.24 11:33수정 2020.05.24 11:33
1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자가격리 8일차(5월 22일 기준)인 해외입국자다.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심각한 미국에서 왔다. 웬만하면 한국행을 미뤄야 했지만,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다리 부상으로 수술하게 되어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

입국하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하고 2주간 자가격리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가격리를 어디서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는데, 어머니가 수술 후 입원하실 테니 어머니 집에서 혼자 지내기로 했다. 주거지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숙소 등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5분도 안 걸리는 출국 절차... 텅 빈 시애틀 공항
 

시애틀 공항 출국심사대 가는 길 평소 같으면 이 줄에 꽉 차있는 사람들 속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렸지만 이날은 줄 설 필요가 없었다. ⓒ 김미현

    

셔터 내린 식당 공항내 식당은 모두 문을 닫고 셔터를 내렸다. ⓒ 김미현


3월 중순부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한국 국적기가 시애틀 공항 운항을 중지해서 델타항공을 이용했다. 평소 같으면 짐 부치고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기까지 뱀처럼 구불구불 늘어선 줄에 서서 한 시간 가까이 차례를 기다려야 하지만 이번에는 이 과정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공항은 텅 비어 있었다. 공항 내 식당들은 당연히 문을 닫았고, 커피 전문점 정도만 문을 열고 있었는데 손님은 거의 없었다.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들은 스스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모두 마스크는 기본이었다. 방역복을 입거나 고글을 쓴 사람도 보였다. 중국인 승객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던 평소와 달리 승객은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그중 절반은 학생들로 보였다.

탑승시각이 가까워지자 공항 직원들이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열을 잰 뒤 탑승 절차에 들어갔다.


승객 수는 좌석의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비행기 내부에서는 감염을 걱정하는 승객들의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한국까지 비행시간은 11시간 남짓. 사람들은 식사 시간과 음료 마시는 시간에만 잠깐 마스크를 벗곤 재빠르게 다시 썼다. 수시로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화장실 사용을 자제했다. 내 앞에 앉은 승객은 비행시간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음식 서비스할 때 보니 이런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승무원들도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 서비스하고 쓰레기를 수시로 수거해 갔다.
 

입국심사 받으러 가는 길 비행기 탑승객들은 마스크를 모두 착용했고 방호복이나 비옷을 입고 타기도 했다. ⓒ 김미현

  

인천공항 입국심사 자가격리앱 설치 확인, 발열체크 후 입국심사대에 설 수 있고, 통과하면 보호자 연락처 확인과 자가격리 동의서 제출, 교통편 확인 등 또다른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다. ⓒ 김미현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직원들이 발열체크를 하고 자가격리앱을 깔았는지 또다시 여러 차례 확인했다. 인적사항에 적은 비상연락처로 직접 전화를 걸어 소통이 확실히 되는지 점검한 뒤 자가격리 동의서를 작성한 뒤에야 입국 수속이 끝났다.

그렇다고 집으로 곧장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도시로 갈 것인지 확인해 교통수단을 연결해준다. 나는 택시를 선택해 집으로 가기 전에 관할 보건소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 들러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았다. 검사받은 뒤 소독제와 체온계, 쓰레기봉투 등이 들어 있는 패키지를 수령한 다음 공항에서 탑승한 택시를 다시 타고 집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받아온 소독제로 가방을 소독하고 내가 만진 손잡이들을 닦아낸 뒤 옷을 모두 벗어서 세탁했다.
     
다음 날 관할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오전 10시와 오후 8시에 자가진단서를 작성해 앱으로 제출하라고 했다. 오후 3시에는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올 것이며, 자가격리 중 매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구청 복지지원과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격리기간에 먹을 식품을 배송해 주거나 10만 원을 보내주니 선택하라고 했다. 곧이어 격리기간 중 나에게 매일 전화를 걸 담당자하고도 통화했다. 이로써 자가격리 시스템이 모두 완성됐다.

은근 신경 쓰이던 검사 결과도 음성이라고 통지가 왔다. 혹시 나도 모르는 새 코로나19에 감염돼 전파하고 다닌 건 아닐까 두려웠던 마음이 그제서야 안심됐다. 긴장 속에서 이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귀국에 수고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고, '국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

사실 나는 미국에서도 자가격리를 한 적이 있다.

지난 1월 13일 한국의 가족과 함께 설을 지내기 위해 남편, 아들과 함께 귀국했었다. 그때도 어머니가 무릎 부상으로 깁스를 하는 바람에 나만 체류기간을 한 달 더 연장해 3월 12일까지 머물렀다. 그 기간은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되던 시기였다.

내가 돌아갈 즈음엔 한국발 여행금지국이 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내가 예약했던 미국 비행편도 없어졌다. 남편의 미국 회사에서는 한국 상황을 고려해 2월 말부터 일찌감치 '네 배우자가 미국으로 들어오면 넌 집에서 2주간 재택근무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워싱턴주에서 2월 29일 코로나19 사망자가 처음 나오더니 3월 들어 사망자 수가 두 자릿수에 육박했고 급기야 남편 회사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확진자가 발생한 당일인 3월 4일, 회사는 곧바로 수만 명이 넘는 전 직원에게 강제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이렇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내가 귀국한 3월 13일 시애틀 공항에서는 따로 발열 체크조차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2주간 자가격리했는데 그것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귀국한 날 바로 마켓이나 식당에 가도 누가 제지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a

미국 뉴욕 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자택대피령을 내림에 따라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 타임스스퀘어가 3월 23일(현지시간) 아침 거의 텅 빈 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내가 미국에서 자가격리하는 동안 워싱턴주에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증했고, 급기야 3월 16일 마켓이나 주유소 같은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락다운(Lock down, 이동제한)에 돌입했다. 25일부터는 주민 전체에 대한 외출자제령(Stay at home)이 내려졌다. 이처럼 주 전체를 봉쇄하는 초강력 조치를 시행하긴 했지만 한국 정부처럼 생활방역수칙에 대한 홍보를 활발히 한다거나, 확진자 동선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았다.

2주간의 자발적 자가격리가 끝난 3월 24일, 마켓에 생필품을 구입하러 갔을 때 마스크를 쓴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드물었다. 물론 4월과 5월을 지나면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증가하자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고 지금은 마스크 하지 않으면 입장시키지 않는 매장까지 생겨나긴 했다. 시중에서 물과 휴지가 동나고 밀가루와 쌀 같은 식품도 사재기로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사태가 오래가면 일어나게 될 폭동에 대비해 총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 과정을 접하며, 한국에서 코로나19 발병이 급증하던 시기에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 생겨났다.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만나는 이가 안전한 사람인지, 심지어 나는 안전한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워 불안했다. 검사를 받고 싶어도 비싼 진단비와 치료비를 감수하기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감염 위험이 높기에 타이레놀을 먹으며 증세 완화를 기다린다는 반응도 많았다.  

안전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불편쯤이야
 

미국의 락다운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미용실에 가지 못해 머리가 지저분해졌다고, 주부들은 식구들 삼시 세끼를 직접 만들어 먹이느라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일상의 불편은 약과다. 일자리 잃은 사람들이 겪는 생존의 위협은 심각했다. 일례로 식당이 식사공간을 폐쇄하고 배달이나 방문 포장만 허용하니 매출이 줄어든 업주는 당장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종업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 와중에 인터넷 상거래와 배달량이 증가하면서 '아마존' 주가는 폭등했다. 락다운이 되어도 IT 업종은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경제적 피해가 덜했다. 부의 편중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코로나19 위험이 감소되지 않았는데도 락다운을 해제하라는 시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병으로 죽나 굶어 죽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마치고 받은 패키지 공항에서 집으로 오기 전 관할 보건소에 들러 코로나19 진단 검사 후 받은 패키지 ⓒ 김미현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코로나19 정책이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부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등의 지침을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를 서로 잘 지키면 나머지는 정부가 철저한 방역과 치료대책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줬다. 국민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지침을 더 잘 따르게 되어 락다운이라는 극한 상황은 피하게 된 것 아닐까.

미국은 초기에 이런 일을 하지 못해 지역감염으로 확산됐다. 서둘러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 대책을 내놨지만 확산을 막기 쉽지 않았다.

행정명령에 따라 외출을 자제해도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없고, 생필품은 구입해야 하니 한 달에 한두 번 외출할 때엔 그야말로 중무장해야 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 알코올 스프레이를 챙겨 마켓에 가 보면 사람들은 한 술 더 떠 장갑을 낀 채로 물건을 고르고, 구입한 물건을 차에 싣기 전 락스 페이퍼로 일일이 표면을 닦기도 했다. 택배 물건 역시 알코올 스프레이로 박스를 소독한 뒤 밖에 일정 시간 두었다가 들여왔다.

한국에 온 지금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배달 물건을 일일이 소독하지는 않는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귀국 일주일이 넘도록 부모·형제와 전화통화밖에 하지 못했고, 매일 세 차례씩 체온을 기록하고, 별 이상 없음을 전화로 보고하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지역사회 안전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참아내고 있다. 지역사회가 안전하지 않았을 때 지역주민의 일상이 얼마나 고달파지는지 지난주까지 생생하게 겪고 왔기 때문이다.
#자가격리 #해외입국자 #미국 #워싱턴주
댓글1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