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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령 사는 '그집'이 1970년대 스페인과 닮은 이유

[리뷰] 1970년대 스페인 사회를 은유한 호러 영화 <그집>

20.05.20 16:39최종업데이트20.05.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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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집> 영화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1976년 스페인. 마놀로(이반 마르코스 분)와 아내 칸델라(베아 세구라 분)는 성공을 꿈꾸며 고향을 떠나 가족과 함께 마드리드로 상경한다. 마놀로의 가족은 전에 살던 주인이 죽은 후 몇 년간 비어있던 말라사냐 32번가에 위치한 집에 싼 값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사한 집에서 가족들은 기이한 일을 겪는다.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 페르민(호세 루이스 데 마디리아가 분)이 집에 누군가 있다고 말한다. 딸 암파로(베고냐 바르가스 분) 역시 정체 모를 할머니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한다. 급기야 막내 라파엘(이반 레네도 분)이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맏아들 페페(세르지오 카스텔라노스 분)은 건너편 건물에 사는 여인으로부터 라파엘은 잘 있다는 쪽지를 받는다.
 

▲ <그집> 영화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스페인 호러물이 사랑받는 이유

스페인에서 만든 스릴러, 호러는 장르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 2000년대 이후 스페인의 스릴러, 호러를 대표하는 감독으론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2007)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더 바디>(2012)의 오리올 파울로, <슬립타이트>의 자움 발라구에로, <알.이.씨>(2007)의 파코 플라자, <리턴드>(2013)의 마누엘 카르발로, <마마>(2013)의 안드레스 무시에티, <줄리아의 눈>(2010)의 기옘 모랄레스, <이머고>(2011)의 카를레스 토렌스가 유명하다. 스페인의 스릴러, 호러의 거장인 <야수의 날>(1995)의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떼시스>(1996)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스페인산 스릴러, 호러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할리우드와 다른 신선함이다. 좀비로 가득한 건물에 갇힌 상황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담은 <알.이.씨>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둘째, 인물들의 심리와 분위기를 활용하는 작품이 많다. 슬래셔 장르를 가져와 인물간의 심리전으로 변주한 <캄포스>(2016)가 좋은 사례다. 셋째, 시대 배경을 통해 관객의 무의식을 건드리곤 한다. 스페인 내전 상황을 서사에 녹인 <악마의 등뼈>(2001)처럼 말이다.
 

▲ <그집> 영화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마드리드 실제 건물과 거리에서 '아이디어'

영화 <그집>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실제 건물과 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페인 광장에 인접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한 건물은 치매와 저장강박증을 앓던 상속인이 소유권을 미궁으로 남겨놓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의 역사는 영화 <그집>에서 벌어지는 여러 기이한 사건들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연출은 <신을 죽여라>(2017)로 제55회 시체스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경쟁부문에 오르고 단편 <R.I.P>로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던 알베르토 핀토 감독이 맡았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포를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그집>의 연출 의도를 전한다.

아늑한 보금자리가 공포의 무대로 바뀌는 '하우스 호러'는 <아미티빌의 저주>(1979), <폴터가이스트>(1982)부터 최근 <디 아더스>(2001), <컨저링>(2013)에서도 꾸준히 다룬 소재다. 그렇다면 <그집>은 앞선 하우스 호러 영화들과 무엇이 다를까? 1970년대 스페인의 사회상, 바로 시대를 투영했다는 점이다.

<그집>은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라 불리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사망 직후인 1976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스페인은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들어서기 전의 과도기를 겪는 중이었다.
 

▲ <그집> 영화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


영화는 안과 바깥(공간), 시골과 도시(상황), 남성과 여성(정체성), 이해와 편견(감정), 임신과 낙태(가치관) 등 두 가지가 맞서는 화법을 활용하여 오랜 독재 정치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염원하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았던 1970년대 스페인 사회를 은유한다.

영화는 근사한 호러 장면 연출도 보여준다. 페페가 맞은편 건물에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과 쪽지를 주고받는 장면의 연출은 상당히 멋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라파엘이 TV를 보는 장면이다. 마치 <폴터가이스트>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이 장면은 TV 속 여자 인형을 이용하여 보는 이를 오싹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이런 장면들 외에 대부분 공포 효과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스케어'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화면 트릭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컷 대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공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는 감독의 바람이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집>은 볼만한 호러 영화는 될지언정 주목할 만한 호러 영화로 남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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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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