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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6이 남긴 쓰레기 설거지 하고자"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41회] 그는 오로지 자신의 거사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주장했다

등록 2020.06.03 19:24수정 2020.06.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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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 국가기록원

 
김재규는 법정진술에서 고향 선배이며 직속상관인 박정희를 시종 '각하'라고 호칭하고 그의 사생활 관련해서는 일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부하인 박선호가 변호인의 신문을 받고 소행사ㆍ대행사의 내막을 진술하려 하자 이를 제지시켰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거사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주장했다.

이날 오후 6시 반부터 시작한 최후진술에서 "김 피고인은 물을 한 컵 청해 마시고 정성껏 다듬은 문장과도 같은 최후진술을 전개해나갔다. 메모를 준비하지 않은 채 30여 분간 이어진 웅변을 통해 그는 '10ㆍ26혁명'의 의의와 불가피성을 설득력 있게 정리해 놓았다." (주석 8)

다음은 최후진술의 중간 부문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교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그만둘 때 그만둘 줄 알았으나 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희생되더라도 끝까지 방어를 해낼 사람으로 그만둘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도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본인은 이를 알기 때문에 유신체제를 지탱하는 지주(支柱)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지만, 더 이상 국민들이 당하는 불행을 방관할 수가 없어 이 사회의 모든 모순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뒤돌아서서 그 원천을 두드려 부순 것입니다.

저의 10ㆍ26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회복입니다.
둘째는, 국민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셋째는, 궁극적으로 적화방지(赤化防止)에 목적이 있습니다.
넷째는, 혈맹이요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국익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국제적으로 독재국가라는 나쁜 이미지를 씻고 국제사회에 이바지하여 이 나라 국민과 국가의 국제사회에서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10․26 혁명의 결행으로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한마디 확실히 해둘 것은 저는 결코 대통령이 되려는 목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 연합뉴스

 
저는 군인이요, 혁명가입니다. 군인이 정권을 잡으면, 독재자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독재를 마다하고 혁명을 한 사람이 다시 독재의 요인을 만들겠습니까? 각하와의 개인적 의리를 청산하고 혁명했습니다만, 각하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저의 도덕관이 그렇게 타락되지 않았습니다.

혁명의 결행은 성공했습니다만, 혁명 과업을 손대지도 못한 채, 50여 일이 흘렀습니다. 혁명 결행에 못지않게 혁명 과업 수행이 중요합니다. 장장 19년 동안 이 나라에는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찼습니다. 이런 쓰레기를 설거지하지 않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증권파동 등 4대 의혹 사건은 국민을 우롱했으며,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로서 많은 치부를 하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곧 6ㆍ3 사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단장으로 서울에 나와서 사태를 진압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상황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때 치부한 돈 한 푼도 정부에서 환수한 일이 없습니다. 이래가지고도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들을 설거지 하지 않고도 자유민주주의를 출범시켜서 순조롭게 가겠습니까?

지금은 우리나라에 핵심이 없습니다. 각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핵심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이 상태가 가장 어려운 상태이고,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4ㆍ19혁명 이후와 비슷합니다. 주인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 자유민주주의가 출범하게 되면, 힘센 놈이 밀면 또 넘어갑니다.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것을 막는 길은 오로지 민주 회복을 지도한 저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협력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출발시켜놓고, 이것을 보호하는 데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석
8> 앞의 책, 32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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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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