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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겸손ㆍ당당한 법정태도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39회] 조금도 주저하거나 위축됨이 없이 더더욱 소신껏 진술하였고

등록 2020.06.01 17:40수정 2020.06.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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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재판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혹자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후 ‘육본’이 아닌 ‘남산’ 중앙정보부로 갔으면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2020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했다.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 이야기는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그때 그 사람들>(한석규와 백윤식 주연)이라는 영화로 제작해서 개봉한 바 있다. ⓒ 국가기록원

 
재판은 초장부터 검찰과 변호인단의 팽팽한 대결 속에 진행되었다.

변호인단은 먼저 10월 27일 4시를 기해 선포된 비상계엄은 헌법과 계엄법에 명기된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비상계엄선포가 유효함을 전제로 설치된 계엄군법회의에서 피고인 김재규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과, 김재규는 군인(또는 군속)이 아니며 또한 그에 대한 공소 사실은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엄선포 이전의 민간인 행위에 대해 군법회의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변호인단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재판정에는 비밀 녹화장치가 되어 건건마다 합수부의 지침에 따라 진행되었다. 심지어 변호인들의 '김재규 장군'이란 호칭도 법무사가 나서 "경고한다"고 으름장을 놓을만큼 '기울어진 법정'이었다.

재판 자체도 보안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의 지침에 따라 진행됐다. 군사법정의 진행상황은 유신체제 아래서 중정에 파견됐던 공안검사들에 의해 면밀히 청취되고 시나리오가 짜여졌다. 이들이 재판정의 막사 뒤에서 그때 그때 지침을 적은 쪽지를 보냈다. 그래서 이 군사재판에 대해 '쪽지재판'이라는 비아냥이 나돌기도 했다.

이는 10ㆍ26사건의 군사재판이 구체제 타도자에 대한 체제수호세력의 단죄를 위한 각본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증거였다. 역사적 전환기를 가져온 사건의 원인과 의미를 가리는 순수한 재판이 될 수가 없었다. (주석 5)


김재규는 검찰의 무례한 언사나 재판부의 고압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시종 차분하고 당당하게 진술했다. 처음에는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되었다가 김재규의 담당변호인으로 10ㆍ26 사건의 역사적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안동일 변호사의 목격담이다.

4차 공판에 이르기까지 김재규의 법정 태도는 매우 차분하고 겸손하면서도 무척 당당하게 보였다. 모든 진술에 있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논리적이고 장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검찰관과 재판부로부터 한쪽으로만 몰아붙이는 듯한 신문을 받아도 자세 한 번 흩트리지 않고, 용어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준비된 설교처럼 대응하였다. 특히 범행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위축됨이 없이 더더욱 소신껏 진술하였고,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어느 것이나 우리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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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1979년 12월 12일 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튿날 동아일보 호외. 반란군의 하극상을 보도해야할 신문이 합수부의 발표에 따라 정승화 총장 연행사실만을 보도하고 있다. ⓒ 이정근

 
기울어진 재판정에서 1심재판이 진행중이던 12월 12일 '박정희의 사생아'로 불리는 전두환 일당이 군의 하극상사태를 일으키고 군권을 장악했다.


박정희 정권 시대에 청와대 경호실, 보안사, 수경사, 특전단 등 수도권 핵심 부서에서 독재자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워온 육사 11기 출신의 '정치군인'들은 10ㆍ26사태 이후 군부 일각에서 "차제에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곧바로 수도권지역 군부 주요 지휘관을 자파 세력으로 개편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국군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소장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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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사진은 1980년 3월 11일 오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관련 구형 공판에서 검찰관의 논고가 계속되는 동안 이마의 땀을 닦으며 경청하는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모습. ⓒ 연합뉴스

 
전두환 중심의 '하나회' 출신인 이들 정치군인들은 11월 14일 전두환이 공석 중이던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해 내각에 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쿠데타를 모의하는 한편, 그 전 단계로 12월 12일 정승화를 체포함으로써 군권을 장악했다.

12ㆍ12 하극상을 통해 군권을 탈취한 신군부 세력은 13일 새벽부터 국방부, 육군본부, 수경사 등 국방 중추부를 차례로 장악하고, 각 방송국, 신문사ㆍ통신사를 점거해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었다. 이들은 정승화를 비롯, 그의 추종 세력인 3군사령관 이건영,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등을 1980년 1월 20일자로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에게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은 거칠 것이 없었다.


주석
5> 김재홍, 앞의 책, 29쪽.
6> 안동일, 앞의 책, 35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재규 #김재규장군평전 #하나회 #12.12쿠데타 #전두환신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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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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