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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행사 갔더니... '보통사람' 100명 속인 사연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40)]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①

등록 2020.05.30 15:06수정 2020.05.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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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선서를 하는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 국가기록원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재임 순서는 제10대 최규하, 제11·12대 전두환, 제13대 노태우다. 기록자로서 그들의 얘기를 근원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생가부터 답사하는 게 옳을 것 같아 미리 전두환·노태우 생가 답사를 계획했다.

요즘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전직 대통령 생가 주소는 물론 지도 그리고 길 안내까지 자세하게 나온다. 역임 순서상은 전두환·노태우지만 지리와 접근 편의상 노태우·전두환 순으로 답사하기로 했다.

열차여행

답사자는 길 안내인을 잘 만나야 한다. 그래야 시간과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답사 현지도 제대로 보고 배경 얘기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옛 친구(중학교 동창) 대구대 김병하 명예교수에게 사정을 말하자 쾌히 응해줬다. 친구와 덥석 약속을 한 뒤 버스시각을 알아보자 분명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원주고속터미널과 원주시외터미널 두 곳을 직접 찾아갔다. 그러자 두 곳 모두 코로나19 사태로 당분간 대구행 및 진주행은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버스시간표 옆에 붙어 있었다. 

낙심하다가 고심 끝에 떠오른 묘안은 중앙선을 타고 영천역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영천역과 노태우 생가 팔공산 기슭은 지리상 가까웠다. 친구에게 그런 사정을 말하고 영천역 대합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침내 4월 25일 오전 8시 55분 원주역에서 출발하는 부전행 무궁화호에 올랐다. 나는 이즈음 몸과 마음이 피곤하거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열차여행 겸 경북 풍기온천에 자주 간다. 그러면 대체로 두 가지 다 해결됐다.

열차여행 중 차창 밖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열차여행은 KTX와 같은 고속열차보다 무궁화와 같은 저속열차가 내겐 더 좋다. 저속열차에는 그 지방 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기에 그곳의 말씨나 인정, 풍물에 대한 얘기를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오전 8시 55분에 출발한 열차는 얼마 뒤 원주 금대리 똬리터널을 지나 제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상상의 나래는 자연스럽게 역대 대통령에게로 옮아갔다. 나는 역대 대통령 열두 분 가운데 다섯 분과는 이런저런 연유로 한두 번 악수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은 서로 현직일 때 만났다.
 

대구 팔공산 기슭에 있는 노태우 생가 ⓒ 박도

 

노태우 대통령 부부가 투표하는 장면 ⓒ 국가기록원

 
노태우를 만나다


1988년 5월 하순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이대부고 교사였다. 마침 대한교련의 기관지 <새한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었다. 그때는 이즈음처럼 메일이 보편화되지 않아 필자는 200자 원고지에 원고를 또박또박 쓴 뒤 우편 혹은 직접 편집부에 가져다 줬다.

나는 그 달 마지막 주 원고를 쓴 뒤 퇴근길에 당시 광화문 신문로에 있던 교총회관 내 새한신문사 편집부로 원고를 전하러 갔다. 그때 담당 김강자 편집기자가 반겨 맞았다. 

그는 6월 초 노태우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일에 대통령과 각계각층 '보통사람 100인과의 대화'라는 행사가 있다고 했다. 청와대 측에서 교총으로 '보통교사' 한 분 추천을 의뢰받았는데, 나를 '보통교사' 초청 대상자로 내정했단다. 그러면서 수락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6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현직 대통령을 만나기에 몸단장도 신경을 썼다. 약속시각에 맞춰 행사장인 서울 시민회관 소강당으로 가자 전국에서 온 각계각층의 100인들이 모여 있었다. 여성 대표도 상당수였는데 그분들은 화사한 한복차림으로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노태우 대통령과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 유학성 안기부장이 주빈석에 나타나 그날 참석한 100인의 보통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노태우 대통령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노태우입니다."

TV에서 자주 보던 말투 그대로 의례적이고 익숙한 인사였다. 그날 노태우 대통령은 참석자 보통사람 100인과 악수를 나눈 뒤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취임 100일 기념 '100인의 보통사람과 대화'는 대화조차 없이 그렇게 끝났다. 단지 보여주기만을 위한 행사로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만 터진 채 끝났다. 그날 참석자들은 모두가 '닭 쫓던 개'처럼 차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씁쓸한 표정으로 시민회관 소강당을 벗어났다.

나는 예삿때처럼 교보문고 앞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귀가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치 똥을 밟은 기분이었다. 그가 대통령 후보시절 유세나 방송연설 때마다 부르짖던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말은 허구로 꼬박 속은 기분이었다. 그의 6.29 선언마저도 '속이구'라고 했던 일부 정치인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에 현혹되다
 

3당 합당 주역 3인 김종필(완쪽), 노태우(중앙). 김영삼(오른쪽) ⓒ 자료사진


일반 시민들은 그의 '보통사람'이라는 말에 현혹되고, 대한한공(KAL)기 폭파사건의 충격에 놀라 그에게 표를 몰아줬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가 보통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진실되지 않았다. 

내게 그는 보통사람이 아닌, 대단히 교활하고 음흉한 사람으로 비쳤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지위를 이용해 딸의 혼수로 SK에 이동통신 영업권을 넘겨줬다(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SK가 노태우 정부 때 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된 건 맞지만 특혜설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했고, 김영삼 정부 때 한국통신 민영화 과정에서 SK가 공개입찰로 주식을 매입해 특혜가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을 펴기도 한다. - 편집자주).

또한 청와대 영빈관마저도 딸의 혼인 예식장으로 썼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퇴임 후에도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꽁쳐 두다가 탄로 나서 끝내 뇌물 수수 및 12.12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구속된 사람이었다.

나는 이 글을 쓰고자 그의 회고록과 여타 문헌을 자세히 읽어봤다. 행간 속의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그저 해바라기형 정치군인일 뿐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서도 돈에 눈이 어두웠다. 또한 지도자의 첫째 덕목인 '경천애민'(敬天愛民)이라는 말의 뜻도 모른 채 대통령이 됐다. 나는 그가 시민들을 한낱 졸(卒)로 본다고 생각한다.

정직하고, 청렴하고, 소박하고, 인격이 튼실한,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중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거룩한 대통령은 왜 보이지 않을까?

"그 나라 지도자는 백성들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왜 전직 대통령은 청빈하게 살면 안 되나? 왜 그들은 평범하게 살지 못한 채 교도소에 가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나. 이는 대한민국의 비극으로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법정에 선 노태우 전두환 전직 대통령 ⓒ 자료사진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노태우 #보통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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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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