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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 리가... 육지에서 들어온 날엔 잠 못 잔다"

[세월호 6년, 생존자 인터뷰 ⑥] 화물기사 고성태씨

등록 2020.05.28 13:57수정 2020.05.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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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세월호 생존자 24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월호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안고 매일같이 안정제와 수면제로 잠을 청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를 타고, 화물차를 끌며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이들은 오늘도 세월호의 악몽을 꾸며 살아갑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년, 아직도 그날의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실어보려 합니다.[편집자말]
고성태씨는 79년생 화물기사로 기사들 중에서는 젊은 편이었다. 인터뷰는 '제생지'(제주세월호생존자와그들을지지하는모임) 사무실이 있는 '수상한집'에서 이루어졌다.

- 화물운전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2009년 6월 8일에 시작했으니 딱 만 11년 되었네요."

- 제주 화물기사들과는 평소 잘 알고 계셨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내 차 가지고 화물 일거리 들어올 때마다 일을 했어요. 그래도 다른 화물기사들과는 오가면서 친해지게 되었죠."

- 다른 분들 경우에는 세월호에 예정 없이 타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 역시 원래는 그날 타는 게 아니었는데 친한 형들과 배를 같이 타고 가려고 하다 보니 세월호를 타게 된 거죠. 화물기사들 중 영대 형, 동수 형, 그리고 나랑 이렇게 셋이 평소에 엄청 친하게 지냈어요. 서로 화물차 하면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배 탈 때도 같은 배 타려고 할 정도로 친했으니까요.

제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날 화물차 선배인 영대 형이 그 배(세월호)에 타기로 되어 있어서 동수 형에게 '우리도 인천배로 가자'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동수 형이랑 내가 짐을 먼저 싣고서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해서 먼저 뭔가 사 먹으며 영대 형을 기다렸다가 같이 배에 탔죠."

예정 없이 타게 된 세월호... 그날은 조금 달랐다
 

세월호에서 건진 고성태 씨의 화물차 ⓒ 변상철

  
- 출항하던 날 안개가 짙었다고요.
"그래서 급한 사람들은 차 돌려서 목포 쪽으로 운전해 내려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는 직접 짐 전달하는 쪽이랑 연결되었기 때문에 일정 조정을 할 수가 있었거든요. 굳이 힘들게 내려갈 필요가 없었어요."

- 제주로 내려오던 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음... 평소에는 제가 인천에서 배를 타면 제주까지 항해가 오래 걸리니까 차를 싣고 나면 술도 한두 잔하고 그러는데 그날따라 술도 안 먹었어요. 그리고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 아침밥을 안 먹는 편인데 그날따라 동수 형이 아침에 밥 먹자며 깨우더라고요. 그때가 7시 조금 넘었나. 그렇게 아침밥을 먹고 갑판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데 평소보다 바다가 너무 잔잔한 거예요. 강물같이. 파도 하나 없이. 그렇게 담배 피우고 침대에 가서 누워서 TV보려고 하는 순간 침대 있는 몸이 저절로 스윽 일어나지더라고요. 배가 기운 거지."

- 배가 기운 직후에는 어떻게 하셨나요?
"우선 다급한 마음이 들었죠. 배가 이상해지자마자 기사 방 앞에 복도가 있는데 문을 열어 복도 밖이 보이게 두고 복도에 기대서 상황을 지켜봤죠. 그렇게 한참 있던 것 같아요. 배가 딱 기우니까 여럿이 119에 신고하고. 저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해경이 구하러 오겠지 하고요. 그래서 영대 형, 동수 형, 나, 이렇게 셋이 있다가 동수 형은 사람들 구한다고 밖으로 나갔고. 나랑 영대 형은 우리 쪽에 있던 학생들 구명조끼 안 입고 있어서 얼른 구명조끼 입히고 그랬죠."

- 어떻게 탈출하셨나요?
"처음에는 계속 지켜만 봤어요. 배가 기울긴 했어도 급하게 기울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나는 뒤쪽에 차량 드나드는 램프는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었죠. 거기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면 빨리 가라앉는 거니까요. 그때 선창 밖으로 어선들이 세월호 주변에 다가와 있는 걸 봤어요. 그런데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제가 계속 주시하고 있던 램프 틈 사이로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들어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서야 '아 나가야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난간을 사다리 삼아 내려와서 주변에서 세월호 승객을 구하고 있던 어선에 옮겨 탔죠. 옮겨 타고 출발해서 조금 가니까 섬과 섬을 오가는 쾌속선이 보이더라고요. 우리는 다시 그 쾌속선으로 탔는데 그때 (같이 있던)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뒤돌아보니 세월호가 뒤집혔더라고요."

- 쾌속선에 타신 후에는 어디로 이동하셨나요?
"먼저 서거차도로 갔어요. 거기가 제일 가까웠다는 이야기도 있고. 세월호 구조에 참여한 어선은 여러 배였는데, 나중에 쾌속선에 옮겨 탈 때 보니 그 어선들이 거의 다 한 곳으로 모이더라고요. 쾌속선 자체는 세월호 주변으로 접근하지 못해 일단 어선으로 구조했다가 쾌속선으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 서거차도에 있다가 팽목항으로 이동하신 후에는 어떠셨나요?
"기사들끼리는 모두 무사한지 서로 확인했어요. 다들 친하니까. 무사한 것이 확인된 다음에는 빨리 제주로 돌아가자고 입을 모았죠. 우리가 제주로 간다고 하니까 고맙게도 진도군에서 우수영 항 근처까지 버스로 태워다 주고 그쪽에 숙소까지 잡아 주었어요. 그곳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제주로 갔죠."

- 그때 마음은 괜찮으셨나요?
"그땐 돌아볼 경황이 없었죠. 내 몸뚱아리 생각보다는 내 차 어떡하지 이 생각밖에 없었어요. 차가 사실상 전 재산이었으니까. 결국 한참 나중에 제 차를 중고차로 살 수 있는 비용을 보전 받았어요."

"내 몸을 생각하기엔 삶이 너무 바쁘다"
 

여전히 그는 화물기사이다. 그러나 배를 타는 일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 변상철

- 이후에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제주에 돌아온 뒤 병원에 약 3일가량 있다가 퇴원해서 한동안 술만 먹었어요. 바로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온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사고 나고 7월에 차 다시 뽑아서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한동안은 '너 차 없어서 우리 짐 못 옮긴다' 고 너스레 떠는 전화를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어요. (웃음)"

- 지금도 화물차로 육지를 오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 없죠. 오늘도 육지에서 들어왔는데 이런 날에는 잠 못 자는 거예요. 처음에 일 다시 시작했을 때는 그런 게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그런 게 생기네요. 잠 못 자는 게. 오늘도 잠 설치다 차에서 설핏 잠들었는데 제주도 다 와 가니까 파도가 쳐서 배가 꿀렁하더라고요. 얼른 내려가서 갑판이나 대합실로 도망갔지. 특히 차가 배 아래 지하에 들어가 있으면 불안해요. 그런 날은 웬만하면 배 안 타려고 합니다. 

 - 세월호 사건 이후에 무엇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한동안 개인 자격으로 화물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배를 못 탔어요. 해수부에서 몇 번 나와서 이야기를 해줘야 태워주고 그랬어요. 그런 상태가 한 2년 계속됐나. 지금은 상황이 좀 풀려서 태워주긴 하는데. 그래도 화물기사 개인이 무슨 항의도 못하고 답답했죠."

- 답답하셨겠어요. 마음을 돌보는 지원을 받으셨나요.
"사고 난 직후 초반에 대학병원에 심리 상담을 하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저를 반기지 않는 눈치였어요. 어디를 가도 다 그렇더라고요. 정신과에 가도 내 이야기를 충분히 잘 들어주는 것 같지 않고요. 그래서 딱 한 달 다니고 가지 않게 되더라고요. 먹고 살려니 갈 시간도 없었고요."

- 돌봄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않으셔요?
"사실 내 몸이 어떻다, 이런 생각하기에는 삶이 너무 바빠요. 혼자 있을 때가 돼서야 그런 생각을 하죠. 어쨌거나 우리 같은 경우에는 새벽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달해 짐 싣거나 내리면 할 게 없으니까 갑자기 착잡한 마음이 밀려들죠.

배 많이 흔들리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게 되고. 한 번은 옆좌석에 사람 둔 채로 그냥 도망 나오기도 했어요. 나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차에 있다가 덜컥 갑판 위로 나와서 바닥에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해줘서 알았어요. 기억도 못 할 정도로 몸이 반응을 한 것이죠. 처음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죠.

그럴 때는 다른 사람들 있는 곁에 가야 좀 편해져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찾는 거죠. 무슨 일을 겪더라도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굉장히 다르니까요. 사고 나고 나서 처음에는 술 많이 마셨어요. 술로 잊으려고 했죠. 막상 일하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술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관심을 가진들 뭐하냐는 마음이 있어요. 내 삶이 워낙 괴로우니까요. 더 꺼내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간신히 잊었던 걸 끄집어내서 생각해야 하니까 마음이 편치 않은 거죠. 주변에서 가끔 물어보면 말 안 하고 그 당시 찍힌 사진이나 보여주고 그래요."

"사실도 아닌 걸 자꾸... 진절머리 난다"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았던 고성태 씨의 화물차 ⓒ 변상철

 
- 화가 나실 때도 있으시겠어요.
"제일 열 받는 건 '돈 얼마 받았냐?' 같은 질문이에요. 제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집을 구했는데 그거 가지고 '너 세월호 돈 받아 가지고 집 샀냐?' 하니까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그전까지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집 장만한 걸 가지고 마치 보상받아서 산 것처럼 이야기하니까요. 그런 왜곡된 시선이 너무 싫어요.

처음 차 새로 가져 왔을 때 보상금으로 사니 마니 하는 이야기들을 식당 같은 곳에서 너무 많이 하니까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어요. 어딜 가든 너희 돈 많이 받았다더라. 누구는 몇 억 받았다는데 넌 얼마 받았냐 하는 통에. 사실도 아닌 걸 사람들은 사실로 믿고 묻곤 하는 거예요. 정말 진절머리 나요."

- 사실이 아닌 정보를 가지고 사람들이 계속 물으니 더 그러시겠네요.
"제가 그래서 뉴스를 안 봐요.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뉴스를 거의 안 봤어요. 사람들이 근거 없이 떠들고 다니는 게 힘들어서."

- 2월 22일부터 '제주세월호생존자와그들을지지하는모임'이 생겼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원체 나서서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모임에 나가는 건 힘들어요. 그래도 용선 형님이나 동수 형이 나오라 하면 이렇게 나오기도 하는 거죠.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어요. 주목받는 걸 싫어해요.(웃음) 이제는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오해하지 않고 우리 같은 생존자를 왜곡되지 않고 봐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한 세월호에서 24명 제주도민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제주로 돌아온 그들의 삶은 이미 이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무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슴 속 아픔은 깊어져만 가고 세월호 진실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제주세월호생존자와그들을지지하는모임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https://bit.ly/3fGn1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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