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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투쟁 끝에 정규직 첫 출근 요금수납원 "기쁘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479명 전국 지사 배치... 2019년 7월 1일 집단해고

등록 2020.05.14 09:36수정 2020.05.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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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투쟁하다 정규직 첫 출근하는 요금수납원들이 5월 14일 한국도로공사 산청지사 앞에서 동료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 이낭근

 
"좋다. 무엇보다 정규직이 되어 출근하니 기쁘다. 그런데 우리가 해왔고 잘하는 요금징수가 아니라 다른 업무를 하게 되어 아쉽다."

14일 아침,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영업소(톨게이트) 옆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산청지사로 출근한 전서정(54)씨가 한 말이다. 한국도로공사 소속의 정규직 첫 출근이다.

(대)법원 판결에다 한국도로공사와 합의에 따라 이날 전씨를 포함한 전국 478명의 요금수납원들이 정규직 신분으로 배치를 받아 각 지사에 첫 출근했다.

이번에 정규직으로 출근하게 된 요금수납원들은 2019년 7월 1일, 도로공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전환시키자 이를 거부하고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9년 8월 29일 "요금수납원은 불법파견으로,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은 정규직을 외치며 지난 7개월 동안 '처절하게' 투쟁해 왔다. 이들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옥상(캐노피)에 올라가 고공농성하기도 하고,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또 이들은 청와대 앞 집회에 이어 삼보일배 등 온갖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집단해고(2019년 7월 1일)된 지 317일만에, 대법원 판결 기준 해고 259일만에 직접고용 출근을 한 것이다.

이날 아침 정규직으로 첫 출근하는 이들한테 민주노총 조합원 등 동료들이 꽃다발을 전달하며 축하를 해주기도 했다.


지난해 6월까지 비정규직으로 경남 함안 칠서영업소에서 요금징수 업무를 해왔던 전서정씨는 산청지사로 배정을 받았다. 전씨처럼 상당수 많은 노동자들이 집이나 이전 일터에서 먼 거리에 배정된 것이다.

전서정씨는 "우리가 투쟁하지 않았으면 이것도 못 얻었을 것이고, 자회사로 가서 여전히 고용불안 등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투쟁을 얻은 정규직이라 기쁘다"고 했다.

그는 "정규직 사원증을 받기 위한 자료를 어제까지 준비했다. 마음이 설렜다. 우리가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요금수납원 모두 자회사로 넘어갔을 것"이라며 "힘들었지만 투쟁한 보람이 있다"고 했다.

아쉬움도 있다. 도로공사 정규직이 된 요금수납원들은 이전에 해오던 업무를 하지 못한다. 이미 고속도로 요금수납 업무는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이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정규직으로 출근한 요금수납원들은 앞으로 전국 각 지사에 배치되어 졸음쉼터와 화장실을 비롯해 고속도로 주변 청소 업무를 주로 하게 된다.

전서정씨는 "우리는 요금징수하는 일을 오래 해왔고 잘하는데, 그 일이 아니라 청소 위주의 업무를 한다고 하니 속이 상한다"며 "출근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좋기는 하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업무를 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또 먼 거리 배치도 부담이다. 전씨는 "집과 거리가 멀다. 어떻게 출퇴근을 할지 걱정이다. 이곳에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컨테이너를 임시숙소로 갖다 놓은 지사도 있다고 하는데,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2015년 이후 입사자들은 같은 날 '임시직' 배치를 받았다. 이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 여부의 법원 판결이 5월 15일에 나온다.

전서정씨는 "그동안 요금수납원을 정규직 전환하라는 법원과 대법원의 판결이 여러 차례 나왔다"며 "2015년 이후 입사자들도 이번에 같이 정규직 배치가 되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했다.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된 요금수납원들은 대부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민주연합노조, 일반노조 등) 등 소속이다.

민주일반연맹은 "대법원 판결 직후 모두 직접고용 했다면 317일, 259일이란 시간은 겪지 않아도 될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상식과 법의 판결을 무시하고 집단해고의 칼을 휘두른 정부와 공기업의 무법적 형태가 얼마나 혹독하게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었는지를 확인한 잔인한 1년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14일 첫 출근이 마냥 설레고 기쁘지 않다"며 "도로공사가 뒤늦게 직접고용을 이행한다고 하지만 공정성은 물론 최소한의 형평성도 없고, 법의 판결도 여전히 지키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은커녕 여전히 짓뭉개는 조치를 일방통행으로 자행하면서 온전한 직접고용이 아난 무늬만 직접고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십수년 일해 왔던 요금수납원 일자리는 자회사로 빼앗겼고, 근무지는 그동안 일해 왔던 곳도, 내가 사는 지역도 아닌, 같은 조건에 있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과의 동일한 기준 적용도 하지 않은 채 원거리 타지로 배치다"고 했다.

이어 "고령, 장애, 여성, 생계부담 조건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부당한 원거리 매치는 도로공사가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만 불필요하게 발생할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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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투쟁하다 정규직 첫 출근하는 요금수납원들이 5월 14일 한국도로공사 산청지사 앞에서 동료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 이낭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정규직 #민주일반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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