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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세습 논란, 오욕이 되어버린 삼성 승계작업

[진단] 에버랜드부터 삼성바이오까지... 이번 수사가 '최종판'

등록 2020.05.13 13:39수정 2020.05.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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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사문화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삼성은 늘 '승계'가 문제였다.

지난 6일 대국민 사과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스스로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 경영권 승계 문제로 그는 다시 한 번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국정농단에 이어 또 다시 '피고인 이재용'으로 법정에 설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가 승계작업은 이제 20년도 더 된 일이다. 1996년 10월 에버랜드 이사회는 전환사채(CB) 발행을 결의했다. 기존 주주들은 대부분 인수를 포기했다.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만 달랐고, 그들은 대주주가 된다. 3년 후, 이번에는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또 이건희 회장의 특수관계인들이 인수에 나섰다. 경영권 승계논란의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에서야 삼성 특별검사팀이 출범, 수사를 본격화했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을 기소했지만 결과는 찜찜했다. 법원은 에버랜드 사건을 무죄, SDS 사건을 유죄로 판단했다. 삼성이 편법과 불법을 쓰며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실행한 '죗값'은 이건희 회장에게 내려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에 그쳤다. 그렇게 경영권 승계논란도 마무리되나 싶었다.

20년 넘게... 이재용은 아직 '승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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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4월 4일 오후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권 불법승계 고소고발 사건을 포함 비자금 사건, 정관계·법조계 로비사건 등 3대 의혹사건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 남소연

     
2017년 7월 14일, 이재용 부회장 뇌물사건 1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에버랜드 사건을 승계작업의 기승전결 중 첫 단계라고 표현했다. 이어 "많은 국민이 이 과정으로 승계가 마무리된 것 아니냐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별 다른 작업이 진전되지 못하다 2013~2015년 '기'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소하는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게 '승'에 해당한다"며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합병하고, 출자구조 문제 등을 해결하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까지 나아갔다"고 설명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가 불거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이 회사는 삼성물산 합병의 가장 중요한 논거, 시너지 효과 입증에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삼성바이오는 단기적으로는 합병의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 입증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진도는 딱 여기까지였다. 특검은 1(제일모직)대 0.35(삼성물산)란 합병비율에 의문을 제기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 합병의 시너지 효과라는 불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했다고 기소했다. 하지만 특검은 합병의 불법성까지 파헤칠 여력이 없었다.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은 크게 삼성이 어떻게 삼성물산의 몸값을 떨어뜨리고, 제일모직은 부풀렸는지 추적해왔다. 수사의 출발점은 김상조 위원장이 예고했던 삼성바이오 문제였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을 처음 제기한 참여연대는 합병 당시 삼성이 삼성바이오의 콜옵션 부채 등을 감춰 '에피스 고평가 → 삼성바이오 고평가 → 제일모직 고평가 →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 계산'을 했다고 본다. 또 합병 후 콜옵션 부채 누락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또 다시 회계장부에 손을 댔다고 주장한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여기서 회계부정 자체만 문제삼아 2018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삼성바이오 등을 고발했다.

검찰은 국토교통부의 수사 의뢰건도 살펴보고 있다. 2015년 제일모직이 보유한 에버랜드 부동산 7개 표준지 중 6곳은 1년 사이에 공시지가가 최대 370% 폭등했다. 이 숫자는 당시 증권사들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근거로 쓰였다. 2018년 국토부는 자체 조사 결과 "외부의 청탁이나 지시에 따라 에버랜드 표준지 공시지가를 큰 폭으로 상향시켰을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와 반대로 삼성물산의 가치가 저평가된 정황도 수사 대상이다. 2015년 1월 2일~5월 22일 주요 건설사들의 주가는 대체로 상승했다. 홀로 제자리였던 삼성물산은 4월 중순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주가가 떨어졌다. 이 기간 삼성물산은 2조원대 해외 공사 수주 등 '호재'가 있었지만, 합병 뒤에야 공개했다. 서울고법은 옛 삼성물산 주주, 일성신약이 합병 당시 주가를 문제 삼아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당시 삼성물산이 일부러 실적을 부진하게 했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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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이재용 부회장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의 공동정범으로 추가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9.12.12 ⓒ 연합뉴스

 
이 모든 의혹은 결국 20년 넘게 이어진 삼성 경영권 문제로 모인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일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 만큼, 이번 수사는 경영권 논란의 최종판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2017년 7월 14일, 김상조 위원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구조는 5년 이상 지탱 불가능하다"며 '전'에 해당하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경영권 승계는 지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총수의 경영능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 완전한 3세로서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3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은 여전히 '승' 삼성물산 합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과연 그는 불법과 편법 논란이 덕지덕지 붙은 합병 문제를 피해 승계작업을 완성할 수 있을까. 검찰은 삼성 총수 일가의 승계작업을 둘러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수사팀은 곧 이재용 부회장을 조사한 뒤 5월 중으로 수사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이재용 #이건희 #삼성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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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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