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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경비원 사망, 또 그냥 넘어간다면..."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 자살 추모 기자회견, 주민 항의로 자리 옮겨 진행

등록 2020.05.12 14:25수정 2020.05.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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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폭행과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고,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노총 서울본부,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고용안정권리선언공동사업단 등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경비노동자 이만수열사 추모사업회 김형수 회장)


서울 우이동의 아파트 단지 경비원 최희석씨의 사망에 대해 정당 및 시민단체들은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을 결성하고 12일 오전 아파트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은 가해자를 엄정 처벌하고 정부에 경비노동자 사망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씨의 사망이 "단순히 안타까운 개인의 비관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엄정히 수사하고 노동부는 근로감독을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주민 갑질로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불과 지난 2014년에도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모멸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사망한 경비원 이만수씨와 함께 근무했던 김인준씨가 나와 발언했다.

김인준씨는 "너무 억울하다. 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만드나. 경비가 아무리 약자라고 해도 보호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경비노동자가 다시는 자살하지 않고 경비 일을 했으면 좋겠다. 주민들은 갑질을 하지 말아달라"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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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폭행과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고,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노총 서울본부,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고용안정권리선언공동사업단 등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기자회견 참가자들 "경비노동자의 고용이 안정돼야"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신하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두고 "한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다. 갑질에 대해 경비노동자들이 고통을 토로하는 상담을 상당히 많이 했다. 그동안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고통스러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 변호사는 "경비노동자들이 낮은 처우를 받고 있고 노동자로서 지위가 열악하다 보니 갑질을 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다"며 "단순히 폭력 사건으로 치부되는 게 아니라 근로조건이 어땠는지 알아보고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경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사망한 경비원 이만수씨를 추모하는 추모사업회 김형수 회장도 기자회견에서 "경비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정해 어쩔 수 없이 모멸감을 참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경비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입주민과 고용안정 관련 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지난 8년 동안 경비노동자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모였는데 모두 좋지 않은 경험을 한 번 이상 당했을 정도로 열악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안 센터장은 "아직도 아파트 경비원들은 1개월이나 3개월마다 한 번씩 계약이 되는 형태로 일하고 있어 매달 부당한 해고를 목격한다"며 "장시간 근무와 입주민의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는 경비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간다면 다른 아파트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북지역대책위원회' 최민규씨는 "주민들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갑질이 계속된다면 또 다른 죽음이 일어날 것이다. 다른 아파트에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비노동자 권익을 위해 강북구에 조례를 제정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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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폭행과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고,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노총 서울본부,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고용안정권리선언공동사업단 등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경비실앞에서 열릴 예정인 기자회견이 일부 주민과 관리사무소측의 반대로 결국 아파트 밖에서 열렸다. ⓒ 권우성

 
일부 아파트 주민 항의로 기자회견 시작 전 소동

아파트 주민들은 기자회견에 대해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니까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거센 항의로 기자회견 시작 직전 주최측인 '경비노동자 추모모임'과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왜 주거 공간인데 우리 아파트에 와서 허락도 받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느냐"고 항의했다. 둘러서서 기자회견을 보던 주민들은 "추모하는 의미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는데 왜 그래"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주최 측은 "아파트 주민들만 경비원을 추모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기자회견을 강행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아파트 단지 앞으로 장소를 옮겨 기자회견을 했다.

주최측은 "제대로 된 가해자의 사과와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또 다시 이런 일로 기자회견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원래 이날 기자회견에는 경비원 최씨의 유가족과 아파트 입주민이 발언하기로 예정돼있었으나 이들의 불참으로 발언이 취소됐다.
#경비원사망 #갑질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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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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