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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직장 후배가 어려울까

[유리천장 안에서 살아남기] 착각과 경험의 충돌... 그렇게 우리는 선배가 된다

등록 2020.05.15 16:31수정 2020.05.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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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입사한 이후로 한 직장에서만 근무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부술 성별·학벌·인맥은 없지만, 그곳에서 끈질기게 출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40대 여성 직장인의 이야기입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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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인사고과를 좌우하는 팀장의 자리에 오르면 권력에 순응하기라도 하지만,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되면 권력은 없고 리더십이라는 책임감만 주어진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팀장 혹은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 unsplash

 
사원 시절에는 상사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렸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아랫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아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거나, 혹은 요즘 세대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인사고과를 좌우하는 팀장의 자리에 오르면 권력에 순응하기라도 하지만,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되면 권력은 없고 리더십이라는 책임감만 주어진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팀장 혹은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후배 직원들과 마찰이 자주 일어나는 지점이며,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인다는 말이 나오는 직급이기도 하다.


나 또한 모든 중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직장 상사보다 후배 직원과의 관계가 참 어려웠다.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후배 육성이라는 덕목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후배가 가끔은 나보다 뛰어나고, 가끔은 하극상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는 것.

세상에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보다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아쉽게도 후배 직원은 후자인 경우가 많다. 상사는 대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라 공감대가 형성되지만, 후배 직원은 나와 1:1의 관계다. 후배 직원과 마찰이 생기면 홀로 고민하게 된다.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고독한 이유이다. 

후배 직원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
     
지금까지 경험을 비추어보건대 후배를 대할 때는 다른 인간관계 스킬이 필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직장 내 후배 관계는 편한 것을 포기하는 편이 좋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까마득한 선배가 편했던 적은 별로 없다. 

언젠가 회사에서 후배 사원 멘토링을 하라고 해서 사원 7~8명과 함께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직장생활로 힘든 점이나 이야기하며 그냥 편안하게 수다나 하려고 했다. 그런데 후배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대화를 해야 하는데, 서로 잘 몰랐고, 이야기도 할 것이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궁금해서 물었다. 원래 사원들끼리 있어도 이렇게 조용하냐고. 동기들끼리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법인카드다!


그래서 내 법인카드를 주고 나왔다. 1인당 얼마씩 지원되니 그 한도 내에서 쓰라고. 그때 카페 문을 나서며 깨달았다. 직장생활만 15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 무슨 이야기를 편하게 하겠나.

또한, 후배에게 섣불리 조언 같은 걸 해서는 안 된다. 업무상 필요한 가이드는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밖에 직장생활에 대해서 일 이외의 다른 면에 대해서 충고나 조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준비된 사람은 조언을 받아들이고 노력하지만, 잔소리를 받은 사람과는 관계만 상할 뿐이다.

차라리 침묵을 하는 것이 더 낫다. 대신 업무상 가이드나 일을 시킬 때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이전의 실수나 개인의 감정을 업무에 얹어 버리면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오니 주의해야 한다.

후배 직원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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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직원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착각과 나의 경험이 충돌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unsplash

 
사실, 후배 직원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착각과 나의 경험이 충돌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창 일이 무르익고 체력이 좋을 나이, 그들은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가 높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요즘 많은 젊은 신입사원의 특징은 스펙이 좋다. '엄마가 만들어준 스펙'이라는 말도 회자되곤 하는데, 내가 본 후배 직원들은 대부분 애티튜드와 인성도 좋았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입사하던 때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재원들이니까.

그러나 조금 일에 익숙해지면 착각을 하는 직원들이 생겨난다. 내가 일을 좀 하는 것 같고,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일이 눈에 보이고, 쓸데없는 회사의 프로세스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혁신이 생기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사고를 불러올 수도 있다. 회사의 프로세스가 하루아침에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까. 

그들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을 낼 때, 나는 일단 들어준다. 처음에는 '왜 시키는 대로 안 하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가만히 들어보면 수긍되는 면도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피드백 해주는 후배들이 일도 더 잘했다. 대신에 아닌 것 같으면 대안을 가져오라고 한다.

오히려 같이 일하기 어려운 후배들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뭐가 문제예요?' 'OO 과장님이 시켜서 이렇게 했는데요?'라고 말하는 유형이다. 즉, 자신의 생각 없이, 업무에 대한 고민 없이 일하는 경우인데, 자기 생각 없이 일하려면 회사가 로봇을 쓰지 왜 인간을 고용하겠는가. 이런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해야 한다. 회사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항상 좋은 말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이 거대한 사회라는 조직은 어떻게든 개인을 깎고 깎는다.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사람은 보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모두 선배가 된다

글을 쓰면서 내가 후배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사원 시절, 같은 팀에 워킹맘 선배가 있었다. 아이가 둘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 미취학 아이가 있었고, 수시로 아이 때문에 전화 통화를 했으며, 매일 칼퇴근을 했다.

야근에 주말근무가 당연하던 시절에 그렇게 칼퇴근을 하며 과장까지 올랐던 워킹맘 선배가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을 두고 한두 달씩 해외 출장까지 다녀왔던 그 선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팀장님은 그 선배를 곱게 보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팀장님은 그 선배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공공연히 했다. 일의 성과 여부를 떠나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팀원의 흉을 보는 게 더 나쁜 행위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후 6시에 칼퇴근하는 선배를 그 팀장님과 같은 시선으로 보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일 좀 한다고 칭찬만 받는 사원이었고, 미혼이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하는 충실한 직원이었다. 회사에서 싫어할 리가 없는 사원이었고, 그것이 오래도록 유지될 거라고 착각했다. 그 워킹맘 선배는 얼마 되지 않아 결국 퇴사를 했다.  

시간이 흘러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워킹맘이 되어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 선배가 많이 생각났다. 아마도 미안함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때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미안해서. 그 사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고, 근무여건이 좀 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직급이 올라가면서 더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명 위로 치이고, 아래로 치이다 보니 그 선배가 더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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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차피 모두 '선배'가 되니까. ⓒ unsplash

 
요즘 후배 직원들을 보면 회사가 전부인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오히려 이런 트렌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회사에 '올인'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직장생활을 오래 버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가끔, 후배가 하극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할 때, 너무 흥분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회사 일이니까, 인간적으로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아직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성숙하지 못한 그들에게는 나처럼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시기를 거쳐온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우리는 어차피 모두 '선배'가 되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직장생활 #유리천장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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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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