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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을 피해자의 시선에서 본다면

[인터뷰] 신진희 성범죄피해자 국선변호사

등록 2020.05.05 14:33수정 2020.05.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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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성폭력 피해자 국선전담 변호사 ⓒ 참여사회

 
신진희(49·사법연수원 40기) 변호사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으로 8년째 성폭력 피해자 국선전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해 돈을 받고 유포한, 이른바 'n번방' 사건 보도에서도 그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4월 2일, 신 변호사를 피해자 법률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국선변호사로 선정했다. 신 변호사는 개명이나 주민등록번호 변경, 2차 피해 방지 등을 위한 피해자 법률지원을 맡고 있다. 2013년 시행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성폭력·아동학대 범죄 피해자를 위해 국선변호사를 선정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 전문적 법률지원을 하는 제도다. 

누군가에게는 '조주빈'으로 각인됐을 이 사건에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누구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는지 문제다. 지난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에서 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불안해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오히려 코로나19 국면에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며 "피해자들은 이전에는 마스크를 낀 채 다른 사람 눈만 봐도 날 알아보면 어떨까 두려움이 컸다. 지금은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그나마 불안감이 덜하다"고 밝혔다.

"온라인이나 SNS 등 사이버공간에서 자신의 동영상이 어떻게든 편집·가공돼 유포될 것이란 생각을 하면 잠을 이룰 수 없죠." 

-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건가?
"검찰수사 단계에서 n번방 피해자들을 위한 국선변호사로 선정되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선정되는 방식은 1대1로 국선변호사가 선정되는 경우도 있고, 여러 명의 피해자를 한 명의 변호사가 대리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일정 조율문제, 보안문제 등 특수한 경우에는 후자의 방식이 선택되는데, n번방 사건은 후자에 해당되는 경우이고 제가 2012년부터 오랫동안 많은 피해자들을 지원해 와서 선정된 것 같다.

피해자 몇 분의 경우 (여성단체들이 구성한) 공동대책위에서 사선변호사를 선임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 포괄적 대리권을 갖고 있다. 즉 법률상담, 진술동석, 증인출석동행을 지원하고, 수사단계 및 재판에서의 의견진술, 의견서 제출, 합의 등 형사소송절차에서 필요한 행위를 대리할 수 있다.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의 개인정보유출 등 2차 피해를 막는 것도 피해자 변호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검찰이 피해의 심각성을 이유로 피해자들의 개명과 주민등록번호 변경까지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범죄피해자들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생계비, 학자금, 치료비 등 경제적 지원을 신청하기 위하여 직접 방문하거나 통화해야 한다. 현재 피해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서 제가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신청하고 있다."

- 조주빈은 어떤 혐의로 구속기소 됐는지 설명해달라.
"검찰은 조주빈의 죄명 자체가 14개라고 발표했다. 가장 중한 형에 해당하는 죄부터 나열하는 게 원칙인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11조 1항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이 가장 첫 번째 죄로 나열됐다. 배포, 소지 등을 금지한 처벌 조항에도 해당한다. 피해자로 하여금 스스로 몸을 촬영하게 한 행위도 '제작'에 해당하지만, 그와 동시에 피해자로 하여금 신체 일부를 노출하게 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하는 행위는 '강제추행'에도 해당한다. 또 신체 일부에 다른 신체나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는 '유사 성행위'에 해당한다. 그 대상자가 아동·청소년이면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서 '강제추행'이 성립된다. 이 밖에도 여러 혐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음란물 제작·유포다."

- 검찰이 조주빈과 공범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지 검토한다고 알렸다.
"검찰에서 적극적으로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조주빈과 공범들, 추가로 피해자에 대한 조사까지 한 뒤 이 혐의를 적용할지 깊은 논의를 하는 것으로 안다. 형법 114조 범죄단체조직죄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물론 단서 조항에 따라 감경할 수 있지만, 조주빈과 공범들을 함께 처벌할 수 있게 된다. 공동 이익을 갖고 통솔 체계가 있는 단체를 조직해 수익도 배분하는 구조 등이 입증돼야 한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적용하는 조항인데 적용한다면 디지털 성범죄에 새로운 선례가 되는 것이다."

- 'n번방', '박사방'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 피의자 상당수는 10대다. 미성년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 및 신상정보를 두고도 논쟁이 있다.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언제든 (가해자가) 찾아와서 보복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특히 초등 저학년 대상의 성범죄가 정말 많은데 범죄자가 성인이면 유죄 판결도 선고되고 처벌도 되지만, 가해자가 미성년자면 소년법 적용을 받는다. 만 14세 미만이면 처벌하지 않고 가정법원 등에서 보호처분 대상이 된다. 피해자와 그 부모는 가해자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궁금할 텐데 소년법에 따라 비공개대상이고, 따라서 가해자가 찾아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미성년 가해자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보호가 미흡한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처음 검거된 어린 미성년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그들의 성장에 바람직한 도움이 되느냐, 재범 예방 효과가 있는가 이런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 미성년 성범죄자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고 느끼나? 그렇다면 왜 그럴까.
"물론이다. 그만큼 정보 접근권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정보를 취득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소통한다. 나이 든 사람보다 어린아이들이 온라인에 익숙하고 잘 접근한다. 범죄에 연루되거나 유혹당하거나 가담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이유다. 기술 발전으로 범죄가 조직화, 지능화하기 쉬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상 공간에 사진이나 영상이 전송되는 것이 강간 사건과 같은 정도의 심각한 범죄가 아닌 ‘야동’ 정도로 치부하거나 어느 정도는 허용된다는 문화가 뿌리 깊다. ⓒ 이미지투데이

 

- 디지털 성범죄 부문에서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큰 것 같다. 
"수사관들 인식이 중요한데 천차만별이다. 일단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가상 공간에 사진이나 영상이 전송되는 것이 강간 사건과 같은 정도의 심각한 범죄가 아닌 '야동' 정도로 치부하거나 어느 정도는 허용된다는 문화가 뿌리 깊다. n번방 사건 피해자가 신고했더니 경찰이 '못 잡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텔레그램의 보안성이 높아서 검거가 어려워서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만, 피해자가 듣고 싶은 건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이다. 국가와 경찰이 나를 도와주고 있구나, 라는 믿음을 얻고 싶은 것이다. 그런 피해자들에게 '그냥 잊고 살아라'는 식의 말을 수사기관이 한다면 큰 문제다."

- 그래도 경찰 조직에도 변화가 있지 않나?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강의를 많이 진행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모든 사이버 수사대 경찰들이 들었는데, 현재 가장 큰 범죄는 아동청소년음란물 제작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많은 경찰들이 관심을 보였고, 질문도 쏟아졌다. 특히 딸 자녀를 둔 40대 아빠 경찰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수사기관에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한 것 같다. 과거보다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인식이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n번방' 사건을 맡은 오덕식 부장판사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과거 성인지감수성이 결여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인데 결국 스스로 재판부 변경을 요청했다. 어떻게 지켜봤나?
"어려운 문제다. 판사의 판결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 오로지 개인 양심만 믿고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를 거를 수 있는 건 결국 3심제 말고는 없다. 판사와 재판 과정은 건전한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다만 판사 개인을 파면하라는 등의 요구로 나아가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해치는 것이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재판 과정 전체를 면밀하게 다 보고 말한다면 모르지만, 그게 아닐 경우 조심해야 한다."

-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몇 년 전 한 로스쿨 학생이 4시간 동안 시내에서 여성 126명 치마 속을 촬영한 사건이 있었다. 126명 가운데 딱 한 분이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신고해서 잡힌 사건이었다. 피해자분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찍힌 촬영 동영상을 증거조사 등에서 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고 하셨다. 제가 문제를 제기하니까 재판부가 증거조사를 굉장히 간이로 했다. 처음 시작과 끝만 필요 최소한도로만 했고, 법원의 실무관도 고개 숙이고 문제의 장면들을 안 보려 했다. 이번 n번방 사건도 각종 증거들이 사진 첨부돼 있을 텐데…. 

다행히 작년부터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증거기록, 재판기록에 피해자의 개인정보 기재 부분을 검은색 보안 테이프로 가린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재판 때 기자들이 50여 명 앉아 있었는데, CCTV 영상 캡처 사진 등에 피해자의 얼굴 등이 그대로 현출될 수 있어서 공개재판으로 증거조사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자들을 내보낸 상태에서 비공개로 증거조사를 했다. 이런 것을 말해주고 지적하지 않으면 일반 형사사건 증거조사 방식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증거조사 전에는 판사들이 증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성범죄사건의 경우에는 일반 형사사건에서 보다 좀 더 피해자의 2차 피해방지를 위한 노력과 필요최소한의 증거조사 방식, 필요불가결한 증거조사에 대해서도 피해자 측에 이해와 동의를 구하려는 재판부의 세심한 배려조치가 필요하다."

 

"국가와 경찰이 나를 도와주고 있구나, 라는 믿음을 얻고 싶은 것이다.?그런 피해자들에게 ‘그냥 잊고 살아라’는 식의 말을 수사기관이 한다면 큰 문제다." ⓒ 참여사회

   
- 법조계 내 성인지감수성은 어느 수준인가?
"사법연수원에서 매년 1박 2일 성범죄전담재판부 법관연수를 진행한다. 2014년부터 매년 제가 강의를 나갔다. 그때 한 사례를 말씀드렸는데, 공개재판으로 진행된 강제추행치상 사건 항소심 증거조사하는 과정에서 스크린에 피해자 얼굴과 가슴 사진 등이 그대로 현출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본 다음 재판장님이 저에게 '피해자 뭐 하시는 분이냐'고 직업을 물었다.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이 피해자의 얼굴과 가슴을 보게 된 것도 충격인데, 직업이 뭐냐는 판사의 질문은 아직까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례를 (연수 받는) 판사들에게 말했더니 엄청 놀라더라. 다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반응이었다. 과거보다는 판사들도 교육, 매스컴, 성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성인지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 피해자 국선변호사 규모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안다. 
"작년 기준으로 전국 21명이다. 올해 두 분 더 선발했다고 하니 23명이다. 2013년 11명으로 시작했는데 그새 2배가 됐다.(웃음)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전담변호사의 인원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한 달에 신건 16건, 1년이면 약 200건이 선정된다. 사건 수 산정은 수사와 공판이 나뉘어 있다.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면 항고와 재정신청까지 가는 절차가 '1건'으로 분류한다. 공판이 시작되면 1~3심 합쳐서 1건이다. 이번 n번방 사건은 조주빈 같은 가해자 한 명이 다수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건인데, 피해자 1명당 0.5건으로 처리된다. 피해자 2명을 맡으면 1건이 되는 것이다. 사건 수로 계산하면 1년 200건 정도 맡는 것이지만 200명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형식적으로는 1년에 200건 정도를 담당하지만, 실제 피해자 수나 심급으로 따지면 3~4배 이상의 사건을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면?
"피해자 지원을 통해서 2차 피해가 방지되었을 때, 가해자가 적절한 형량을 받아 죗값을 치르게 되었을 때,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해서 최소한이라도 보상을 받았을 때,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피해자들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 보람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피해자보호에 대한 인식이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느낄 때 전담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 언론에 하고 싶은 말씀은. 
"n번방 사건을 '성착취 사건'이라는 표현을 써서 사건의 본질에 부합되게 보도하는 것을 보고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생각됐다. 언론이 '성착취 사건'이라고 보도하여 국민들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여론이라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 관련 처벌 조항이 개선될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려준 측면에서는 언론에 박수를 치고 싶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사건의 본질과 관련 없는 피해자 신상정보를 캐거나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보도로 사건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느냐다. 디지털성범죄가 없어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도연 님은 <미디어오늘> 기자입니다. 사진은 <월간참여사회> 편집팀이 촬영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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