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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하고 절절하게 그려낸 '화양연화', 왜 공허할까

[TV 리뷰] <화양연화>와 <부부의 세계>, 불륜을 묘사하는 서로 다른 접근 방식

20.05.04 13:24최종업데이트20.05.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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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의 한 장면 ⓒ tvN

 
tvN 주말드라마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은 젊은 시절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오던 두 남녀가 40대가 되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감성 멜로물이다.

제목인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극중에서 남녀주인공에게 순수했던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청춘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면,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덧 많은 것이 변해버린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온 사랑의 감정은 생의 '두 번째 화양연화'라고 할수 있다. 영화팬들이라면 중화권 스타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하고 왕가위 감독이 연출했던 동명의 영화 제목으로도 친숙할 것이다.

첫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이미 대중문화에서 숱하게 많았다. 어린 시절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하며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서사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익숙한 클리셰로 꼽힐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변주되는건 누구나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 판타지'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내딸 서영이>의 이보영처럼 청춘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과 중년의 우아한 성숙함이 공존하는 이미지의 '멜로 전문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은 이 작품이 가고자하는 방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유지태가 연기하는 한재현은 젊은 시절 학생 운동에 투신했던 정의감넘치는 청춘이었으나 현재는 재벌가의 사위로서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기업가로 변해버린 인물이다. 이보영이 맡은 윤지수는 이혼후 아들과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정리해고를 일삼는 기업과 싸우기 위해 거리로 나가 투쟁을 외치는 억척스러운 중년 여성이 됐다.

각자의 삶의 무게로 고단해하던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식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운명처럼 다시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청춘 시절의 순수함, 자신들의 지나온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는 먼저 불편한 지점을 통과해야한다. 극중에서는 이들의 사랑이 애틋한 첫사랑 혹은 순애보처럼 포장되고 있어도 객관적인 현실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명백한 불륜이라는 사실이다. 한재현에게는 비록 사랑 없는 결혼생활이지만 엄연히 아내인 장서경(박서연)이 있다.

드라마는 재벌가의 사위로서 겉보기에 화려한 조건과 지위에도 가족으로서 진심으로 존중 받지 못하는 한재현의 현실, 먼저 외도를 일삼고 패악질을 서슴지 않는 장서경의 모습을 통하여 한재현의 불륜에 정당성을 부과한다. 최근 방송된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같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결혼생활이 먼저 '배우자의 결함'이나 '결혼생활의 구조적인 문제'로 비롯되었다는 명분을 제시하며 주인공들의 일탈을 합리화하는 것은 어떻게보면 '불륜 미화물'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왕가위 감독의 동명 영화 <화양연화>도 내러티브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맞바람', 즉 불륜이었다. 한 주택에 부부끼리 세들어 살던 양조위와 장만옥은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같은 상처와 비밀을 공유하다가 어느새 점점 가까워진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대사, 배우들의 우아한 여기에 가려졌을뿐 설정 자체는 국내의 치정극이나 막장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부부의 세계>의 한 장면 ⓒ JTBC


재미있는 점은 <화양연화>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부부의 세계>식으로 풀어내면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몰이중인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 역시 불륜을 주된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접근방식은 전혀 다르다. 장르적으로 '치정스릴러'에 가까운 드라마에서 극중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애증, 집착으로 얽혀있으면서 인간 내면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부 장면에서 폭력과 노출 등 지나치게 선정적인 연출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적어도 등장인물들의 위선이나 불륜 자체를 미화하지는 않는다.

<부부의 세계>의 '불륜 빌런'으로 꼽히는 이태오(박해준)은 자신의 불륜을 '사랑'이라고 주장하여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조강지처 지선우(김희애)와 불륜녀 여다경(한소희)를 향한 마음이 모두 진심이라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는 지선우 역시 복수를 명분으로 친구의 남편을 유혹한다거나, 이태오에 대한 애증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모순된 캐릭터이라는 점에서 역시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다.

<화양연화>의 한재현도 사랑을 언급한다. 지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한재현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 추억 팔이 같은 건 안 해. 넌 한 번도 추억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심장에 매달린 돌덩이고, 목에 걸린 가시인데 그게 어떻게 추억이 돼"라며 달달한 사랑의 고백을 날린다.

만일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였다면 뻔뻔한 위선이자 느끼한 작업멘트처럼 들렸을 대사가 <화양연화>에서는 심장을 울리는 애틋한 순애보로 포장된다. 유지태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떼어내고 극중 한재현이라는 캐릭터가 걸어온 행적 자체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놓고봤을 때 어딘지 모르게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기도 하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미지와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재현은 윤지수와의 재회를 통하여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한다. "계속 생각해봤는데 우리 옛날에 답이 있었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그들의 빛나는 청춘 시절의 신념과 세상 전부이자 꿈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들이 정말로 그리워했던 것은 첫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인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첫사랑 판타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판타지는 판타지이고 불륜은 불륜일 뿐이다. 불륜이 그려낸 판타지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화양연화로 묘사하는 드라마의 애틋함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공허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화양연화 불륜 부부의세계 첫사랑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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