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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세계관에 흠뻑 빠졌다" 안재홍이 영화 찍으며 신난 이유

[인터뷰] "SF 장르 아닌 성장담"... 영화 <사냥의 시간> 장호 역 맡은 안재홍

20.04.27 14:32최종업데이트20.04.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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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장호 역을 맡은 배우 안재홍. ⓒ 넷플릭스

 

짧고 탈색된 스포츠머리, 천식 때문인지 흡입기를 달고 사는 장호는 <사냥의 시간>에서 가장 유약한 캐릭터다.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이 붕괴한 나머지 화폐가치는 없어지다시피 한 2030년대 말을 살아가는 장호에겐 준석(이제훈)과 기훈(최우식)은 뗄 수 없는 친구들. 

영화는 출구 없는 인생에 지친 나머지 도박장을 털기로 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중 안재홍이 연기한 장호는 이야기 흐름에서 일종의 불안요소를 제공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관객에 따라 감정 이입이 쉬울 수도 있는 인물이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고루 경험한 안재홍은 이 캐릭터를 꽤 입체감 있게 살려냈다.

상처입은 청춘들의 성장담

안재홍은 <사냥의 시간>을 '성장기'로 정의했다. 근미래 배경에 다소 생경한 모양의 자동차, 건물과 거리가 등장하기에 SF 장르로 보기 쉽지만 그의 입장에선 영화는 시스템 외부로 튕겨나간 상처 입은 청춘들의 성장담이었다.
 
"영화 초반엔 희망 없는 청춘들이 어떤 의지를 갖게 되고 후반부엔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제가 생각한 장호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아 상처가 깊게 남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폭력에 노출돼 있었고, 외로움도 클 거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준석이가 장호를 끌어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준석과 기훈과의 관계는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는 거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잘 접하지 못해서 <사냥의 시간>이 더 반갑고 재밌었다. 한국에서 이런 가상 세계관을 그린 작품을 접하긴 쉽지 않은데 다들 너무 준비를 잘해주셔서 그 공간 안에 흠뻑 빠져 뛰놀았던 것 같다. 신났던 시간이었다. 연기자 입장에선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맡았을 때 신난다. 장호가 저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도 아니고, 툭툭 말을 내뱉고 소리도 치다 보니 하면서도 재밌었다. 후반부엔 관객분들이 어떤 페이소스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잘 해내고 싶었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총기를 다루지 못하는 장호는 종종 준석과 기훈이 대화하는 걸 자는 척하면서 엿듣는다. 위기 순간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느낄 땐 다른 캐릭터보다 더 과하게 분노하기도 한다. 안재홍은 "이 모든 게 장호의 트라우마가 담긴 설정"이라고 설명하며 윤성현 감독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준석이 이야기를 운반하는 캐릭터라면 장호는 정서를 운반하는 캐릭터면 좋겠다고 하셨다. 장호가 되게 거칠고 범죄도 저지르지만 그 이유와 동기가 분명하다. 후반부엔 결국 관객분들이 이 인물을 지지했으면 싶었다. 총기를 못 다룬다는 설정도 시나리오에 이미 있던 거다. 감독님이 장호에게 일종의 핸디캡을 부여하려 했던 것 같다. 

군대에서 처음 총을 쏠 때 사격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듣고 느낀 공포감이 있다. 그런 걸 표현해보려 했다. 근데 전 실제로 총을 굉장히 잘 쏜다. 사격게임장 가면 인형이든 뭐든 꼭 상품을 타는 스타일이다(웃음). 차량 탈취 신에선 유리를 깨다 제가 손목을 삐끗하기도 했는데 제가 직접 운전하면서 연기했다. 이건 자랑이다(웃음)."


청춘 배우들의 만남

<사냥의 시간>은 또래 배우들, 특히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에서 두루 활약해 온 청춘 배우들이 뭉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훈과 박정민은 <파수꾼>(2011)에서 이미 윤성현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관객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우식 역시 <기생충>으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다. 안재홍은 대학로에서 연극 <청춘예찬>(2016) 공연 당시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 합류한 경우였다. 

"그때 제가 삭발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감독님이 장호에 어울린다 생각하신 것 같다. 저도 동의했다. 애쉬 컬러로 염색해야 했기에 탈색을 세 번 정도 했다. 짧은 머리라 두피에 바로 약이 닿아 엄청 쓰리더라. 두피에서 광이 날 정도였다." 
 

영화 <사냥의 시간>에서 장호 역을 맡은 배우 안재홍. ⓒ 넷플릭스

  
이제훈, 박정민, 최우식 등 또래 배우들과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지만 안재홍은 "따로 친밀감을 쌓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믿어주고 친해졌다"며 동료와 함께한 좋은 기억을 전했다. 특히 올해 2월 베를린영화제 상영 때의 일을 그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극장에서 상영됐다. 1600석 넘는 대극장이었는데 전석 매진이더라. 관객 분들이 자리하고 우리가 객석에 내려가는데 한 명씩 조명을 비춰주셨다. 공교롭게 제가 첫 번째라 내려가는데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시더라. 저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 같다. 우식이가 이때 함께 못해서 굉장히 아쉽다. 베를린영화제 관객분들이 되게 냉정하셔서 취향에 안 맞으면 상영 중 많이들 나가신다고 들었는데 끝까지 남아 있어서 너무 감동이었다."

국제영화제 경험, 그리고 최근 <킹덤2>와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로 단독 공개되며 전 세계 관객과 만나고 있는 그다. 여기에 JTBC 여행 예능 프로 <트레블러>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안재홍은 "아르헨티나 남쪽 마을에 갔는데 방송엔 안 나왔지만 한 펍에서 직원분이 넷플릭스에서 절 봤다며 인사해주시더라"고 말했다. 그만큼 세계적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에게 실제로 2030년 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이렇게 답했다.

"19년 후일 텐데 그럼 제가 50대 초중반? 아마 건강하겠지(웃음). 한창 나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는 일이 지금처럼 많았으면 좋겠다."
안재홍 사냥의 시간 이제훈 최우식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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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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