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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3회] 아버지 김형철과 어머니 사이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등록 2020.04.26 17:02수정 2020.04.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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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읍 이문동 김재규 생가 안채 ⓒ 박도

김재규는 1926년 3월 6일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이문동 687번지에서 아버지 김형철(金炯哲)과 어머니 권유금(權有今) 사이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때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악스럽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조선총독부가 남산 기슭의 구통감부 건물에서 경복궁의 새청사로 이전하면서 한껏 기세를 올렸다. 매국노 이완용이 죽었고(2월 11일),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이 간행되었으며, 6ㆍ10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발표되고, 이를 게재한 잡지 『개벽』이 폐간되었다.(6월)

암울했던 시기에 김재규는 아버지의 노력으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선대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18대 후손이다.

김문기는 1456년 성삼문ㆍ박팽년 등이 주도한 단종복위 계획이 김질에 의해 밀고 되어 모두 주살당할 때, 그도 능지처살 당하였다. 그뒤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 6인의 절의를 들어 '사육신'이라 하였는데, 이 사육신의 사실은 남효온(南孝溫)이 쓴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 성삼문ㆍ박팽년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ㆍ하위지 등 6인이 실리면서 김문기는 여기에서 빠졌다.

그뒤 1691년(숙종 17)에는 조정에서 공인하여 6신을 복관시키고, 이어 1731년(영조 7) 김문기도 복관되었으며, 1757년 충의(忠毅)란 시호가 내려졌다. 김재규의 문중에서는 선대 할아버지 김문기의 절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김재규도 사석에서는 가끔 충의공에 대한 얘기를 하였다고 한다.

백촌은 김알지 후손으로 당대에는 본관을 김해(金海)로 사용하였으나, 후손들은 김수로왕의 후손인 김해김씨와 구별하기 위하여 금녕(金寧) 김씨와 경주(慶州) 김씨로 사용하는 두 파로 갈렸다. 그래서 김재규의 선대들은 금녕김씨로 불려왔다.

김재규의 할아버지는 선산면 독동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 사망 후 아버지가 이문동으로 이주하여 이곳에 자리잡았다.


친족들의 증언을 종합, 재구성해 본 그의 부친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김형철은 친척이 외상으로 마련해준 논 다섯마지기를 기반으로 살림을 시작했는데, 어릴 때부터 진취적이었던 그는 17세 때 부인과 누이동생을 데리고 일본에 건너가 고생 끝에 살림의 기초를 다졌다.

당시 제사공장 감독으로 일하던 친척의 후임으로 일본생활을 시작한 김형철은 무식한 일본사람보다 더 잘 한다고 소문난 일본어 실력과 근면성으로 귀국하기 전에 벌써 이문동에 작은 집과 약간의 토지를 마련했다. 김재규가 태어난 이 이문동집은 후에 도로 확장으로 없어졌고 지금은 작은 공터만 남아 있다. (주석 1)


김재규의 아버지는 16세에 결혼하고, 결혼한 지 1년 만에 부친이 사망하면서 어머니와 일곱 동생을 봉양하는 소년 가장이 되었다. 그래서 일거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형철은 정직하고 근실해서 뒤에 공장 감독이 되었고, 이때 번 돈으로 귀국해서 선산에서 토미업(벼를 사서 현미를 뽑는 일종의 정미업으로서 토미를 일본에 수출했음)을 했다. 토미업이 날로 번창해 가면서, 김형철은 누에고치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누에고치실을 풀어서 일본에 수출하는 사업이 왕성해지자, 양(兩) 사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토지를 크게 구입했다. 김형철이 소유했던 전답의 규모는 한때 논이 100마지기, 밭이 50마지기(해방 후 이승만 정권 때 토지개혁으로 최고 한도인 50마지기만 소유하게 됐음)에 이르러 당시 선산군에서 몇째 가는 부농이었다. (주석 2)

김형철은 대단히 배포가 큰 인물이었다. 마을에 대지 600평, 건평 80평 짜리 집을 짓고, 그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집안에 목욕탕을 만들었다.


주석
1> 김대곤, 『10ㆍ26과 김재규』, 111쪽, 이삭, 1985.
2> 오성현, 『비운의 장군 김재규』, 13~14쪽, 낙원사, 1995.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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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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