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항쟁 72주년 앞두고 '4·3추가진상보고서' 발간

50명 이상의 '집단학살 사건' 26건과 '165개 마을 피해실태' 밝혀

등록 2020.04.01 09:12수정 2020.04.0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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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 72주년을 앞두고 '제주4·3사건 추가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10월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확정과 노무현대통령의 첫 사과를 한지 16년 만에 <제주4·3사건 추가 진상조사보고서> 제1권이 발간된 것이다.
  

2020년 3월, 16년만에 발간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4·3은 "미국 군사정부 시기인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쪽만의 단독 선거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과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에서 발간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 마을별 피해실태 △ 집단학살 사건 △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 △ 예비검속 피해실태 △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 발굴 △ 교육계 피해실태 △ 군인‧경찰‧우익단체 피해실태 등을 다룬 800여쪽의 방대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이번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4·3 당시 기준으로 12개 읍면 165개 마을(리)의 피해상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희생자로 확정된 1만 4442명(2019년 12월 기준)에 대해 가해자 구분, 피해 형태, 재판유형, 유해수습 여부 등에 따라 모두 18개 유형으로 분류해 기술하였고, 추가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미신고 희생자도 1200여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특히 마을별 피해중 한 장소에서 50명 이상 피해를 당한 '집단학살 사건'이 26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행방불명된 희생자는 4‧3위원회가 확정한 3610명 보다 645명이 많은 4255명에 이르고 있음이 밝혀졌다. 추가진상보고서는 이에 대해 "다수의 유해수습을 하지 못한 희생자가 사망 희생자로 신고되어 처리된 사례가 많았다"고 기술했다.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 2261명에 이르는 수형인 행방불명 피해실태도 중점적으로 규명됐는데 특히 수도권인 경인지역, 호남지역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수형인 행방불명 희생자들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미래에 죄를 지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미리 잡아들임)에 의한 희생자 566명의 신원을 확인했으나 53명의 행적만 확인됐을 뿐 513명의 신원과 행적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계 4·3 피해는 교원 271명, 학생 429명 등 총 700명의 인적피해와 93개 학교의 교육시설 및 학교운영 손실 등의 물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인과 경찰, 그리고 우익단체의 피해는 군인 162명, 경찰 289명, 우익단체원 640명 등 모두 1091명으로 파악됐는데, 이는 2003년의 보고서에서 밝힌 1051명(군인 180명, 경찰 232명, 우익단체 639명)에 비해 군인은 줄어든 반면 경찰 피해자는 다소 늘어났다고 밝혔다.

양조훈 이사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2003년 발간된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총론적 성격의 보고서라면, 이번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각론적 성격으로 구체적 피해실태 파악을 통해 4·3의 진상규명을 심화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녔다. 진상조사보고서가 뼈대라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의해 2012년 추가진상조사단(단장 박찬식 박사)을 구성해 2016년까지 마을별 피해실태와 분야별 피해실태 조사활동을 벌였다. 이어서 2018년 10월 재단 내 조사연구실을 신설하고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집필팀(팀장 양정심 박사)을 구성하여 추가진상조사보고서 제1권을 발간하였고, 감수는 현대사 전문학자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맡아서 진행했다.

한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격려사를 통해 "4‧3평화기념관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뜻을 담은 비문 없는 비석이 있는데, 이번 추가진상보고서가 그 백비를 채워가는 중요한 과정이 되리라 믿고 싶다"고 밝힘으로써, 4·3위원장인 국무총리가 격려사를 통해 '4·3의 정명이 이루지지 못했음을 인정'할 정도로 한계점을 밝히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2003년에 발간된 보고서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이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 한계를 인정한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4·3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70주년시, 그리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규명한 4·3에 대한 정명(正名)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9만 명까지 희생되었음에도 학살자들의 지휘체계를 정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희생자의 85%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죽었고, 13%가 무장대에 의해 희생을 당했다는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고서에도 학살자들의 지휘체계를 외면하였다는 점이다.
 

4.3학살 주범 책임 촉구 집회 4.3관계자들이 2018년 10월 31일 광화문에 있는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책임있는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모습 ⓒ 박진우

 
셋째, 종교계의 피해실태를 반영하지 않았다. 4·3은 특정 종교에 의한 특정 종교의 말살정책이 있었음에도 이를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불교와 개신교의 경우 종단별로 피해실태가 일정 정도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는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넷째, 섬 제주도를 야만의 학살장으로 만든 정치적 주체인 미국에 대해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그간 4·3의 학살에 대해 미국을 비롯 많은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통해 발표가 되었으나 이에 대한 책임있는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4.3학살과 관련한 미국의 해제된 비밀 문서 1949년 1월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라고 극찬한 내용의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 ⓒ 박진우

 
다섯째, 섬 제주 밖의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도 미흡하였다. 일본을 비롯해 섬이나 해안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고서를 통해 밝히지 않았다.
 

2018년 오사카 통구사의 4.3 위령비 제막식 오사카 통국사에서 4.3 당시 희생된 영령들을 추념하기 위해 2018년 11월 19일 위령비를 제막하였다 ⓒ 박진우

 
마지막으로 이번 제주4·3사건 추가 진상조사보고서의 한계가, 제주4·3평화재단의 태생적 한계인지, 아니면 추가진상조사단의 정치적 한계인지 등에 대한 자체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법적 기구인 제주4·3평화재단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과제를 또 미루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4.3항쟁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 #평화재단 #미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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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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