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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죽음, '김재규'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24)]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⑨

등록 2020.03.30 14:15수정 2020.04.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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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자료사진

  
1979년 10월 26일 저녁.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자신의 권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 절명케 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그는 아래와 같은 최후 진술을 남겼다. 사형 집행 전날 유서도 남겼다고 한다.

김재규의 최후 진술과 유서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이요,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 1심 최후 진술 중에서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리 한 것이었다. 아무런 야심도, 어떠한 욕심도 없었다." -계엄군법회의 최후진술 중에서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 1980년 5월 23일, 사형집행이 내려지기 전날 유서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자료사진

   
선산과 구미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구미 금오산(金烏山) 사람으로 동향인이다. 하지만 같은 고향사람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는 구미 사람이고, 김재규는 이웃 선산 사람이다.

'선산(善山)'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 일선주(一善州)라는 큰 고을이었다. 고려 때는 도호부(都護府)로, 조선조에는 현(縣)으로, 내륙의 이름난 고장이기도 했다.

이에 견줘 '구미(龜尾)'는 신라시대부터 2000여 년 동안 선산 관할에 속한 조그마한 고을에 지나지 않았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경부선 철도가 구미를 지나게 됐다. 그러자 개화문명과 행정·교통 편의에 따라 선산은 점차 구미에 밀리게 됐다. 그러다가 5.16 쿠데타 이후 구미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선산은 구미의 그늘에 가려지게 됐다.

지금의 행정상 명칭은 구미시 선산읍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이었다. 5.16 쿠데타 이태 후는 선산군 구미읍으로, 1978년에는 구미가 시로 승격해 선산군에서 분리 독립됐다. 1995년 구미시가 선산읍을 흡수 통합하자, 그때부터 구미는 자기를 키워준 선산을 거느린 셈이 됐다.

선대부터 선산에 뿌리를 둔 이들은 유서 깊은 선산이 신흥 구미에 흡수 통합된 꼴에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선산읍 이문동 출신인 김재규에게도 그런 마음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을 것이다.

내가 구미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 선산군 군내 체육대회가 열렸을 때다. 대부분 종목의 결승전은 선산과 구미가 맞붙어 자웅을 겨루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두 지역 간 경쟁의식이 매우 치열했다. 마치 신구간 대결인양.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 선산은 구미에 추월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와 김재규, 두 사람은 같은 일군 출신으로 해방 후 같은 열차를 타고 군에 입대한 동기생(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이다. 그 이후에도 박정희는 김재규를 특별히 신임해 3군단장, 유정회 의원, 중앙정보부차장,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요직을 맡겼다. 그렇다면 왜 김재규는 박정희 가슴에 총을 겨눴을까.

궁정동 최후의 만찬, 그 진실의 실체는 많은 세월이 더 흐른 후에 더 확실히 드러날 것이다. 아니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김재규 마음속의 밑바닥에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이 고장의 충절 정신과 가문의 전통도 작용했으리라고 나름대로 추리해 본다.
  

선산읍 이문동 김재규 생가 안채 ⓒ 박도

 
김재규 생가

나는 구미에서 태어났지만 선대가 살았던 곳은 도개면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선산(先山)도, 선영도 있는지라 10여 년 전까지는 해마다 벌초를 다녔다(이즈음은 조상 산소를 오대산 월정사 수목장으로 천장했다).

2003년 가을 벌초 후 선산읍 삼거리에서 김천 쪽으로 조금 더 가자 곧 이문동 김재규 부장 생가가 나왔다. 내가 김 부장 집 앞을 서성이자 60대 초반의 한 부인이 나왔다.

"어데서 왔능교?"
"구미서 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불쑥 그렇게 대답했다.

"구미사람이 또 불 지를라고 왔능교?"
"네에?"
"그때(1979. 10. 26) 구미사람들이 이 집에 불 지른다면서 몰려왔다 아입니까?"


그 부인은 집주인과 먼 인척으로 김 부장 가까운 친척은 모두 먼 곳에 살기에 당신 내외(천씨)가 그 집을 지킨다고 설명했다. 내가 구미사람이지만 지금은 서울사람으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제야 부인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면서 사진 촬영도 허락해줬다.

주인을 잃은 집은 덩그렇게 쓸쓸하기 그지없다. 해방 후 두 사람은 구미역에서 서울행 열차를 타고 같이 갔다. 그 두 사람이 30년 뒤 가슴에 총을 쏘는 사이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잠시 사진 촬영을 마친 뒤 곧장 그곳을 떠나왔다.

"잘 가이소."
"예, 실례 많았습니다."


멀리 남쪽 하늘에 우뚝 솟은 금오산은 두 사람의 깊은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길재 사당에서 바라본 금오산 ⓒ 박도

 
Decapitate

내가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여러 자료를 구하는 가운데 입수한 것으로, 재미언론인 기호열(한국일보 미주본사 사회부) 기자의 저서 < CIA 박정희 암살공작 > 책머리 일부다.

"세계에서 가장 베일에 쌓여있는 북한의 실상과 신비의 인물로 손꼽히는 김일성의 목 뒤에 생긴 손톱만한 혹의 병명까지 그의 주치의보다 먼저 낱낱이 파악하고 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이 거대한 조직은 포니자동차의 엔진도 자체 생산하지 못했던 당시 어수룩한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국익만을 위한 엄청난 공작을 수행하고 있었다.

미국이 이 조그마한 한반도에, 그나마 반쪽으로 잘려있는 한국에 대해 그토록 애착을 갖고 간섭하려 든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쉬운 점은 역사적인 이 미스터리를 풀어 줘야 할 두 명의 당사자들이 한 명은 반역죄로 교수대에서, 다른 한 명은 교통사고로 이미 오래전에 갖가지 추측만 남긴 채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역사적인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나는 최근 전 국정원장 이종찬 회고록 <숲은 고요하지 않다>를 읽었다. 그분은 당시 중앙정보부 중견 간부였다. 10.26 사태 당시 기록 일부를 옮겨본다.

"이런 긴장된 시점에서 나에게 또 하나의 외국 문건이 들어왔다. 한국의 정세가 마치 4․19 혁명 직전과도 같이 혼미한 상황에서 미국의 한국 전문가인 랠프 클러프 박사가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거(Decapitate)'될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지를 분석한 글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물러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글이 미국 조야는 물론 한국 내에서 은밀하게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글 가운데 특히 나의 눈길을 끈 대목은 클러프가 'Decapitat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목을 자른다'는 뜻의 이 말은 그냥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타율적으로 물러난다는 함의가 강했다. 즉, 그 글은 박 대통령이 강제로 물러날 수도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었다." - 위의 책 1권 318쪽

 

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 박도

   
암살의 세계 ABC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10여 년 추적한 권중희 선생과 6개월간 같이 지내면서 암살자에 관한 여러 정보와 행동 규범 등을 들었다. 그리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서 암살 배후 문서를 찾아 본 적이 있었다. 그 세계, 곧 암살 세계는 점조직이 기본이고, 직접 지시는 있을 수 없다. 대체로 이심전심의 비법을 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암살 지령자가 하수인 앞에서 한두 마디 한다.


"그 친구 때문에 머리가 아파."
"그 자식, 왜 하필이면 외국에 나가서 시끄럽게 굴어."


그러면 하수인은 그 말의 진의를 금세 알아채고 곧 행동에 옮기다는 것이다. 

아무튼 지난 세기에 약소국의 지도자들은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암살당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 이후 미군 철수 때를 대비해 핵개발을 서두르는 동시에 '자주국방'을 매우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실세들과 무기업자들의 역린을 거슬리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 자기나라 대통령 존 F. 케네디조차도 암살했다. 하지만 그 진실 규명은 미국도 쉽지 않았다. 그것을 파헤치는 자는 자칫 다치기 마련일 것이다.

필리핀 아키노를 암살한 하수인도, 케네디를 암살한 하수인도, 그 자리에서 저격당했다. 또,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의 예를 보듯이 중간 전달자나 하수인들은 무덤에까지 그 비밀을 안고 갔다. 그래야 남은 가족들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암살 세계의 불문율'이란 걸 나는 돈과 시간 그리고 열정을 들여 체득한 바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0.26의 진실을...

(*다음 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호열 지음 <박정희 암살공작> / 이종찬 지음 <숲은 고요하지 않다> / 조갑제 지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박도 지음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러 고향사람들의 증언으로 쓴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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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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