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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밤새워 일해도 급여는 '정액제'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로 산다는 것 ①]

등록 2020.03.27 16:12수정 2020.04.0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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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에는 4년 차부터 22년 차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가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고 방송사 내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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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 중계중인 보도국 자막CG팀 ⓒ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내 나이 29살. 올해로 방송일을 시작한 지 7년 차다.

22살, 첫 직장은 서울의 한 프로덕션이었고 연출일을 했다. 2013년 방송일을 처음 시작할 당시 첫 월급으로 90만 원을 받았다. 일주일 중 이틀은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강도 높은 업무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라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땐 몰랐다. 어리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이 그저 행복했고... 그리고 그때의 나는 그 돈을 받고 일을 할 만큼 방송 일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방송국이라는 후광은 눈이 부시게 빛났지만, 그 큰 후광 속에 꾹꾹 눌러 담긴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는 매우 열악했다. 방송계 종사자로 살아온 경력 7년, 그중 5년 이상을 지금의 회사에서 보냈다. 작은 프로덕션 회사에서 일하다 대구MBC로 왔을 때, 그나마 내가 느꼈던 큰 회사의 좋은 점은 자주 밀리던 급여가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야근수당 없고 아프면 무급 휴가

나는 TV주조정실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부서의 주된 업무는 사람들이 보는 TV 화면을 송출하는 일이다. 특히 요즘 같은 재난 상황은 늘 비상이다. 최근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진 만큼, 대구 자체 뉴스특보도 많아졌다. 거기다 재난 상황에서 편성도 자주 바뀐다. 우리 업무 중 제일 중요한 일은 재난방송 흘림 자막을 송출하는 것. 단시간에 송출하지 않으면 방송국이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재난방송 요청 공문이 언제 올지 모르니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도 부담스럽다.

24시간 내내 화면을 송출해야 하니까 명절, 주말 할 것 없이 3교대로 오롯이 회사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 밤을 새워 야간근무를 하지만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정액제'라고 명시된 급여를 받는다. 한 팀원이 회사에 급여명세서를 요구하자 돌아온 답변, "프리랜서니까 급여명세서를 발급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하지 않는다." 야간근무수당을 묻는 말에 돌아온 답변, "지금 주는 급여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아플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퇴사한 우리 팀의 막내였던 친구는 근무 중에 허리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고 약 한 달 입원했고, 대체인력이 없던 우리는 남아있는 팀원들이 돌아가며 막내의 몫까지 일했다. 막내는 사실상 무급휴가였다.

갑자기 사내 비정규직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 모든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도급직'으로 바꾼다는 얘기였다. 우리 팀에도 자회사 계열사와 계약을 하는 대신 '4대 보험, 퇴직금'을 준다는 조건을 내밀었다. 그러나 도급직으로 변경하겠다던 말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그 때 같은 부서에 있던 남자 프리랜서들은 모두 도급직으로 변경되었다. 우리팀은 모두 여성이었다. 그렇게 의도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도급직이라는 조건을 부서 남자 프리랜서들에게만 적용했다는 사실이 분했다. 그 때는 그게 더 좋은 조건인 줄 알았다. 비정규직은 '도급직'이나, '프리랜서'나 그게 그 처지인데. 어쨌든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설움이 터졌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나서주었으면

그리고 비정규직을 위한 노동조합이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회사랑 개인으로 더이상 처우개선 이야기를 나누기가 싫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나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회사에 이미 다른 선배들이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 준비중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팀에서 그나마 일면식이 있던 보도국 자막 CG, 회사에서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선배들에게 회사가 모든 비정규직을 도급직으로 변경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인 내가, 선배에게 월급을 묻고, 지위를 묻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다. 보도국 CG 선배들은 우리보다 평균 연차 5년이 더 높은 선배들이었다. 선배는 조용히 나에게 따라 나오라고 했다. 한참을 둘이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끝에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서의 팀들도 모두 열악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급으로 1주일에 1회, 그렇게 한달에 4번, 5번. 제작비에서 인건비를 대체하기 때문에 '바우처'라는 이름으로 업무 한건 한건에 가격을 매겨 보수로 지급하는 부서도 있었다. 보도국 선배들은 이미 비정규직 노조설립을 준비중이었고, 우리 팀이 함께 해 노동조합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노조설립 의견에 우리팀의 의견도 분분했다. 팀의 최고참인 나는 우리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다들 지쳐있었다. 회사의 계약 번복과, 야간에 일을 하는데도 이런 대우를 받고 일한다는 현실이 갑갑했다. 그래도 우리 팀은 노동조합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내 의견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 날 이후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사내 비정규직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들과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말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설렜고 또 한편으로는 더 힘이 빠졌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은 여성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훗날 결국 그렇게 모인 우리 분회의 조합원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거듭된 만남으로, 노조설립에 관해 모두 호의적인 의견을 냈다. 임금 인상을 늘 내가 먼저 이야기하고, 거절당하고, 혼자 고민 하고... 그동안 겪은 부당한 일이 모두 나 혼자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준비는 순조로웠고, 우리는 여러 도움을 받고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라는 정식 명칭을 지었다. 다온이라는 이름은 '좋은 일이 다 온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다 오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2019년 1월 31일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우리는 소모품이 아닌 노동자다!' '우리가 뉴스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다온분회 설립총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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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창립 총회장 ⓒ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우리를 위협하는 일이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 줄이야

1년 전부터 노조설립 준비를 하던 선배가 분회장이 되었고, 나는 부분회장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회사에서 대단한 시도를 한 것이고, 노동조합이 생긴다고 해서 상황이 한번에 바뀌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일이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지 몰랐다. 분회가 생긴 지 보름 만에, 사무국장인 동지가 계약 해지를 통보 받았다. 이유는 부서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무국장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냈다. 우리는 선뜻 그녀에게 투쟁하자고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힘들게 투쟁을 해 이 회사에 다시 남는다 한들, 무슨 복지를 누릴 수 있겠는가? 근무하던 사무국장이 떠나자 같은 부서에 남은 다른 조합원이 오롯이 사무국장이 처리하던 일까지 맡게 되었다. 매일 같이 일하던 동지를 잃은 그녀는 퇴사를 결심했고 결국 그렇게 퇴사했다.

우리는 회사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협의하기로 했다. 급한 일이 끝나는 대로 협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측의 일정을 기다리던 지난 2월 사측은 일방적으로 조합원 두 명에게 '앞으로는 프로그램별로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프리랜서라는 호칭에 걸맞게 프리랜서처럼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바우처 지급계획 폐지'와 다온분회를 교섭상대로 인정하고 교섭에 응하라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자기 치부 빼고 논하는 저널리즘, 무슨 의미 있나

최근 청주방송에서 형식상 '프리랜서 PD'로 근무했던 이재학 PD가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는 유서를 남기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1년 6개월여간 법적다툼을 벌였지만 청주지법은 그의 손이 아닌 청주방송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가 기나긴 법정싸움을 택한 이유는 본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고 이재학 PD의 이야기도 많은 곳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비정규직에 관한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언론은 서로 앞다투어 보도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했다' '사측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갑질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근무하다 사망했다' 라는 것들. 그러나 '방송계 비정규직'에 관한 부당함을 꼬집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비정규직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로서, 본인들의 치부를 만연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고, 공공연하게 모든 곳에 치부같은 비정규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알권리라며 다른 비리들을 파헤치는 모든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빼고 논하는 저널리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언론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부디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들에게도 한 줄기 빛이 생기길 바란다. 우리는 투쟁으로 오늘 한 발자국 더 전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한혜원 기자는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부분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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