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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격리 2주 만에 밖에 나갔다 생긴 일

약사님의 따듯한 말 한 마디로 내 불안을 돌아보다

등록 2020.04.01 08:58수정 2020.04.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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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덕분에 자체 격리를 시작한 지 2주가 넘었다. 거의 매일 확진자 동선과 주의사항을 담은 재난 안내 문자를 받고 있으려니, 5살 아이와 11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집 밖에 나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었다.

필요한 것들은 모두 온라인 주문으로 샀고, 급하지 않은 것들은 최대한 참았다. 퇴근한 남편은 문 앞으로 뛰어온 아이들을 바로 안아주는 대신 외투를 현관에 걸어두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직행했다. 최대한 바깥과의 접촉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력할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오늘은 우리 지역에 몇 명이 확진을 받았고 몇 명이 사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고 그로 인한 사회적, 인종적 차별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나마 좀비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지인의 문자 메시지에 피식 웃었지만, 집에만 들어앉아 바깥 세상을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는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영화 속 좀비만큼이나 무섭게 다가왔다. 실체 없는 두려움은 현관문을 더욱 꼭꼭 걸어 잠그게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전화를 해서는, 급하게 서류를 떼야 한다며 집 근처 동사무소에 다녀오기를 부탁했다. 이 시국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갈 수 없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꼭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

얼마나 급하면 저럴까 싶어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해주고 아무것이나 만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면서 집을 나섰다.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집 앞 약국 앞에 긴 줄이 서 있는 걸 보니 아이들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너무 힘줘서 끌었을까.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우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 살펴보니 손바닥과 무릎이 까져서 피가 맺혀 있었다. 집에 갈까 했지만 집에 밴드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억나서, 잠시 고민하고는 약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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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으로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한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경계심의 촉을 잔뜩 세우고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의 줄을 지나 약국 문을 열었다. 뉴스에서 보았던, 마스크 판매하느라 목이 쉬고 피곤함에 얼굴이 굳은 약사를 상상했는데, 이럴수가! 평소보다 더 따뜻한 웃음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에게 비타민 사탕을 나눠주고 금방 나을 거라고 인사를 나눠 주셨다.

"고생 많으시죠"라고 어색하게 건넨 나의 인사에 약사님은 "밖에 줄 서 계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아직 날도 찬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아, 결국 여기도 우리가 사는 사회인 것을!' 불안이 불안을 키워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둔 나는 약사 선생님의 따듯한 말 한 마디에 눈가가 뜨끈했졌다. 내 가족을 지킨다며,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마다 날을 세웠던 내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의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고 약국을 나서는데, 문득 영화 <미스트>(2007)가 생각났다.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호러 영화 <미스트>는 주인공이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다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안개 속에서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등장하고 그로인해 마트 안에 갇힌 사람들이 벌이는 사투를 그리고 있다.

가게 안에 갇힌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마트 밖으로 나가고, 몇몇 사람은 공포에 질려 희망을 잃고 나가떨어지고, 몇몇 사람들은 광신도에게 선동 당하기도 한다.

주인공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마트를 탈출하지만 괴물에게 몇몇은 희생되고,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졌을 때가 되어서는 괴물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느니 자결을 하겠다고 결정한다. 주인공은 일행과 아들까지 총으로 쏜 뒤 자신도 자살하겠다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 한 발 부족해서 발사되지 않는다.

울부짖는 그의 눈 앞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군대의 장갑차와 구조된 사람들을 태운 수송 트럭이 지나가는 것으로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이제와 떠올린 영화의 장르는 '호러'다. 어쩌면 <미스트>의 장르가 호러로 분류되는 이유는 괴물 때문이 아니라 마트 안에서 사람들끼리 벌이는 극한의 갈등과 균열일지도.

지독한 불안.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영화 속에서 괴물과 대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았다.

일부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이러스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일부는 공포와 불안에 갇힌다. 일부는 그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고, 또 일부는 그로 인한 이익을 취하려 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우리에게 어떤 것이 선(善)이었는지 구별해 낼 수 있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마스크로 폭리를 취하는 등 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반면, 자신도 힘들고 고통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상황인데도 향하는 방향은 다르다.

결국 이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누가, 무엇이, 어떤 상황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게 될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나의 불안은 지금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내면의 불안에 대해 자문해볼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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