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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방의 역사, 계속되어서는 곤란하다

등록 2020.03.20 14:34수정 2020.03.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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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래된 빌라 현관에 부착된 호소문에 가까운 안내문 ⓒ 신부범

 
겨울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2월의 어느 날 어둠이 걷히지 않는 새벽 출근길이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지 않는 으슥한 골목길을 지날 때 쯤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지은 지 수십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낡고 허름한 어느 빌라 현관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변기에 쓰레기 및 담배꽁초 버리지 마세요! 변기에서 담배꽁초 및 쓰레기가 올라와서 막히고 오물이 올라옵니다"

인간의 기본적 생리현상을 해결해 주는 변기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심적 고충을 겪었으면 호소문에 가까운 안내문을 붙였을까. 문구의 내용으로 보아 안내문을 붙인 당사자는 아마도 그 빌라 지하방에 거주하신 분은 아닐까라는 추측이 들었다.

나는 사회 생활 초년기 시절, 경제적 문제로 오래된 빌라 반지하방 생활하면서 심적 고통이 컸다.

당시 나는 지방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지만 그때 역시도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유행했다. 서울로 가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도 많이 벌고 출세도 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생활, 지금은 개발되어 그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가파른 언덕을 수백 미터 올라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을 정도로 그야말로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어느 달동네였다.

하고 많은 곳 중에 왜 하필 그곳에 둥지를 트려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돈 문제였다. 그런 나에게 오래 되고 허름한 빌라의 반지하방도 감지덕지했다. 하지만 반지하방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주거공간이라는 사실을 오래 가지 못해 깨달았다.

지면보다 낮은 지하방이기에 대낮에도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것쯤이야 당연하다고 여겼다. 여름 장마철이면 유독 심해지는 눅눅한 습기와 벽지 여기저기에 까맣게 피어오른 불쾌한 냄새의 곰팡이꽃에도 반지하방이니까 그러려니 참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위층에서 버린 생활하수가 제대로 배수되지 않아 지하방으로 역류할 경우였다. 이보다도 위층의 일부 세대에서 양변기에 버린 음식물 쓰레기로 오수배관이 막히고 이로 인해 지하방 양변기가 역류해 집안이 온통 역겨운 똥냄새로 진동했을 때는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그러한 생활이 약 2년 정도였으니 반지하방 하면 나에게 유쾌한 추억보다 불쾌한 추억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반지하방은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 1호가 된 지도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반지하방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서민의 주거공간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으로 실질적인 선진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빈곤과 양극화의 상징이면서 비인간적인 반지하 주거 공간은 그대로인 채 겉으로 드러난 경제지표만으로 선진국이라 말하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반지하방을 계속 놔둬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반지하방의 실상을 통렬하게 묘사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결국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났던 영화 <기생충>이 그것을 뼈아프게 지적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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