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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죽음의 문턱에서 떠올린 다섯사람, 누굴까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20)]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⑤

등록 2020.03.16 17:31수정 2020.04.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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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 ⓒ 박도

 
여순사건
 
"1948년 10월 19일 밤 8시쯤 비상 나팔을 신호로 하여 여수 주둔 14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 14연대는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출동하기 위하여 대기 중이었다. 연대 내의 남로당 조직책인 지창수 상사가 주동이 된 이 날 밤의 반란으로 20여 명의 장교들이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14연대가 여수시를 점령하자 순천에 파견되어 있던 2개 중대도 호응하여 순천을 점령했다. 이 반란으로 여수에서 군인들과 공무원 1천 2백 명이 피살되었고, 순천에서도 4백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 조갑제 지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2권 212쪽

 
 
여순사건이 진압되자 군에서는 대대적인 수사가 펼쳐졌다. 박정희 소령이 군 수사당국에 체포된 것은 1948년 11월 11일로 그날은 육사 7기생 졸업식 날이었다. 당시 육사 교관이었던 박 소령이 연행된 곳은 지금 신라호텔 부근의 남산 기슭에 있었던 헌병대 영창이었다. 그는 입창되자마자 낡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게 됐다. 그 순간부터 피의자 신분이 됐다.

그 무렵 군 수사기관은 신문에 앞서 기선제압으로 우선 피의자의 숨을 죽였다. 사실 박정희는 그런 폭력에 이골이 나 있었다. 1940년 4월, 만주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한 박정희와 김재풍 생도는 1기 선배들로부터 건방져 보인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았다. 기골이 장대한 방원철 선배는 주먹으로 박정희의 따귀를 갈기기 시작했다. 김재풍은 금방 옆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박정희는 달랐다. 박정희는 방원철의 주먹을 맞고 몸이 옆으로 밀렸다가도 금방 원래 자세로 돌아와 딱 버티고 서서 다음 타격을 기다렸다. 박정희의 몸은 용수철 같았다.

방원철은 속으로 '야, 여기 독한 놈 하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세게 때렸다. 그래도 고개를 치켜들고 펀치를 받아내는 박정희가 그에게는 꼭 차돌 같고, 뱀대가리같이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그처럼 박정희는 군내에서 독종으로 정평이 났다. 박정희는 각목으로 두들겨 패도 숨이 죽지 않자 전기고문을 당했다. 

전기고문에는 까무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박정희는 몸부림을 치다가 의식을 잃었다.
  

박정희 대통령 아버지(왼쪽)와 어머니 약목댁(오른쪽). ⓒ 박도

 
어머니

"막내야! 에미다. 니 거기서 죽으면 안 된데이…."

오싹한 찬 기운과 함께 멀리서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가냘프게 들려왔다.

"정희야!"
"……"
"아이고 우야꼬, 야가 죽었나, 아무 대답이 없네. 정희야! 막내야!"

 
'어무이요. 접니다.'

박정희는 어머니의 울부짖는 부름에 대답하려고 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막내야! 내 말이 들리나?"
"……"

"아이고, 우야꼬."

어머니의 목소리가 차츰 가깝게 들려왔다.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싹한 찬 기운과 함께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어머니가 아들 곁으로 다가갔다. 정희는 바람결에 풍기는 냄새로 어머니임을 육감적으로 알았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맡아온 어머니의 냄새였다.

그 순간 박정희는 비몽사몽 간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꿈이었다. 어머니를 생각할수록 불효막심했다. 만주로 갈 때도, 서울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갈 때도 어머니는 구미역까지 따라와 군에 가지 말고 처자와 함께 고향에서 살라고 눈물로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박정희와 장녀 박재옥 씨(오른쪽) ⓒ 자료사진

  
딸 재옥의 울부짖음

이튿날 오전 조카 박재석이 구미에서 면회를 왔다. 할머니는 병석에 누워 있기에 대신 왔다고 했다.

"삼촌요, 할매 말씀 그대로 전합니다. '막내야, 닌 어째든동 살아라' 그 말 뿐입디다."
 

조카가 떠난 그날 밤 또 한 여인이 떠올랐다.

"되련님(도련님), 이 세상을 확 뒤집어 엎으려면 우야든동 살아서 힘을 기르시이소."

맏형 부인인 선산김씨 형수였다. 박정희가 일군 패잔병으로 풀이 죽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어느 날이었다. 뒷산에서 망태에 갈비를 한 짐 지고 내려오는 형수가 눈이 어두워 돌부리에 넘어져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을 봤다. 그 무렵 형수는 영양실조인데다가 가난으로 제때 병원 치료를 한 번 받지 못해 시력을 잃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때 큰 충격을 받고 그 며칠 후 선산에 사는 김재규와 같이 다시 군문에 입대하고자 조선경비사관학교로 찾아갔다.

"아부지! 죽으면 안 돼요. 전 누굴 믿고 살라는 말입니까?"

큰 딸 재옥이의 울먹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 무렵 어린 딸은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아무튼 박정희는 딸에게 못쓸 짓을 했다. 

그 며칠 전 북에서 내려온 만주군관학교 선배 최창륜의 말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이보라우 박 소령! 우리 속담에 '개 꼬리 삼 년을 두어도 황모 못 된다'는 말 들어봐서. 네레 지금은 갸들이 받아주지만 곧 개털이 될 기야."

또 한 사람이 눈에 밟혔다. 그 전 해 춘천 8연대 경리장교 박경원 대위의 결혼식에 갔다가 서로 눈이 맞아서 동거 중인 이현란이라는 이화여대생이었다. 그가 체포되던 그날 아침도 누군가 곧 연행될 거라 귀띔했지만 그 여인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그 다섯사람의 환영(幻影이 박정희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 순간부터 박정희는 수사관들도 놀랄 정도로 남조선노동당 조직체계와 조직책 이름을 낱낱이 다 털어놓았다.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 육군소장 (1951. 8. 13.). ⓒ NARA

 
백선엽
1949년 초 어느 날, 방첩대 김안일 소령이 나에게 박정희 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 말이 있다고 간청하고 있으니 면담을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박 소령이 조사 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 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 사관학교 등, 군내 좌익 조직 수사는 최초 단서를 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면담을 승낙했다. 당시 내 사무실은 국방부와 방첩대 두 곳에 있었다. 내가 박 소령을 만난 곳은 명동 구 증권거래소 건물 3층 정보국장실이었다. 박 소령은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작업복 차림의 그는 초췌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태도는 전혀 비굴하지 않고 시종 의연한 자세였다. 평소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어려운 처지에서도 침착한 그의 태도가 일순 나를 감동시켰다. 그래서였을까.

"도와드리지요."

참으로 무심결에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흘러나왔다.
- 백선엽 지음 <군과 나> 416~417쪽

 
 
그 말은 박정희에게 구명 줄이었다. 이후 박정희는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과 파면, 급료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응준 육군참모총장 확인 과정에서 징역 10년으로 김형되었다. 그 뒤 다시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 이후 백선엽의 배려로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6.25전쟁 발발 후 장도영의 건의로 육군에 다시 복직하게 됐다. 숙군 당시 중형을 받은 군인 가운데 구명된 게이스는 박정희밖에 없었다.

(*다음 회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운현 지음 <군인 박정희> / 백선엽 지음 <군과 나> / 최상천 지음 <알몸 박정희> / 조갑제 지음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 수십 권의 참고도서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쓴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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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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