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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래빗'이 전한 웃음... 알고 보면 눈물이 난다

[리뷰] '나치즘', 그 끔찍한 폭력에서 서로를 지킨 사람들

20.03.05 16:30최종업데이트20.03.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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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조 래빗> 관련 사진 ⓒ TSG엔터테인먼트


유대인은 끔찍한 존재고 세상에서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한 소년이 있다. 이제 갓 10살, 나치즘을 외치기엔 너무도 연약하고 어린 이 소년은 히틀러의 호위무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소년 나치즘 교육을 받는다. 

개봉 전부터 영화 <기생충>과 아카데미 시상식 경쟁작으로 알려진 <조조 래빗>이 코로나19 여파를 뚫고 상영 중이다. 국내 극장가가 침체한 마당이라 관객 수 자체가 적긴 하지만 영화를 본 관람객 사이에선 칭찬 일색의 입소문이 나며 꾸준한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장르로 구분하면 '블랙 코미디'로 표기돼있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해당 장르에 가둘 수만은 없다. 2차 세계 대전, 나치즘이 몰락하던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깔면서 해당 사상을 끝까지 품으려 했던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제3의 가능성

세상을 향한 호기심도 많고 질문도 많을 나이에 다른 가능성과 다양한 사고를 못하도록 막는 주입 교육을 받은 아이들. 경직된 표정과 절제된 몸짓은 타인에겐 낯섦과 이질감마저 들게 하기 충분하다. 

<조조 래빗>은 바로 우리의 갇힌 상상력을 좀 더 자극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인공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와 그의 절친한 친구 요키(아치 예이츠)는 훌륭한 나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그 나이 또래들이 가질 법한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유대인 혐오를 비롯해 여러 군사 훈련을 받지만 그 자체에 함몰되진 않는다.

'하일 히틀러'를 외치면서도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천진한 모습을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이런 섬세한 묘사로 영화는 관객에게 보다 현실에 가까우면서도 영화적 경험을 체험하게 한다.
   

영화 <조조 래빗> 관련 사진 ⓒ TSG엔터테인먼트

 
시대적 비극과 동심의 대비 구도 혹은 그 비극에 파괴된 동심 묘사에 그치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하겠다. 적당히 타협을 봐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조조 래빗>은 오히려 코믹성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 스스로 캐릭터와 이야기 곳곳에 숨은 의미를 탐험하게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더욱 슬프고 짠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칫 <조조 래빗>이 비판받을 여지도 있다. 나치즘을 너무 동화적으로 묘사했다거나 그 나치즘을 추종한 사람들을 미화했다는 등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를 댄다면 분명 약점이 있어 보인다. 다만 현실성, 그러니까 나치즘이 지배했던 독일이든 1인 권력 독재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이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모만큼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곧 리얼리티가 <조조 래빗>을 향한 이런 비판에 좋은 변론이 될 것이다. 

소년은 이후 어떤 삶을 살까

<조조 래빗>은 이야기와 캐릭터의 밀도와 호흡이 매우 좋은 작품이다. 헐겁게 소년의 감정만을 쫓지 않고, 그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 심지어는 교육담당 장교와 게슈타포까지 다룬다. 단순히 이 영화를 조조의 성장기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일찌감치 전쟁에 나갔다는 아버지를 조조는 늘 궁금해한다. 그런 조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씩씩하게 아들을 대하며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제대로 표현한다. 아버지의 부재를 채운 건 조조가 스스로 만들어 낸 가상의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 <조조 래빗> 감독)다. 어떤 행동과 선택의 기로에서 늘 나치즘의 관점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상상의 히틀러는 그 모습과 태도가 우스꽝스러워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조조가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버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조조 래빗> 관련 사진 ⓒ TSG엔터테인먼트

 
로지는 아들을 그런 교육대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그 자체에 오염되지 않는 정서적 방어막을 놓지 않는다. 요키 역시 훌륭한 나치가 되기 보단 당장 옆에 있는 친구 조조가 좋고, 부모님의 사랑이 고픈 아이다. 청소년 나치 교육의 책임자인 클렌젠도프 대위(샘 록웰)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강한 남성성을 과시하지만 동시에 아이들마저 전쟁터로 내보내는 현실에서 나치즘보단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택한다.

이 모든 게 마땅히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정상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결과다. 매우 자연스럽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전쟁이라는, 그리고 가상의 공간을 빌려와 전하는 것이다. 나치즘과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있었다. 그중 <조조 래빗>은 아마도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픈 영화로 기억되기 충분할 것이다.

한 줄 평: 웃다가 나도 모르게 흘리는 진심 어린 눈물
평점: ★★★★☆(4.5/5)

 
영화 <조조 래빗> 관련 정보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스칼렛 요한슨,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타이카 와이티티, 레벨 윌슨 등
러닝타임: 108분
관람등급: 12세
 
조조 래빗 기생충 아카데미 나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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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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