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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선생의 '김개남장군 평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7회] "그의 비타협적 의지는 전봉준의 근왕주의적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등록 2020.02.26 21:21수정 2020.02.2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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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 장군 ⓒ 박도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새는 언제나 나뭇가지에 내려와 앉는다
 하늘로 들어가는 문을 몰라
 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

                   - 「텃새」의 일부, 김종해.

그는 한 마리 텃새였다. 조선의 텃새였다. 하늘로 들어가는 길을 몰랐을 리 없고, 하늘로 들어가는 문을 모르지 않았을 그는, 마땅히 이땅의 텃새들인 농민과 천민들과 함께 살고 죽고자 했던 한 마리 텃새였다.

비참한 죽음이었지만, 그의 삶과 투쟁과 죽임은 이 땅에서 수탈당하고 탄압받고 소외된 민초들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이후, 의병→독립군→3ㆍ1혁명→임시정부→의열단→광복군→4ㆍ19혁명→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족사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저항의 마그나'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근현대 민족운동사의 뿌리, 그 원맥(元脈)은 동학농민혁명에서 기원한다. 광제창생ㆍ보국안민ㆍ반봉건ㆍ척왜척양의 동학(과 농민혁명)에서 근원한다.

그 중심에 김개남 장군이 있었고, 시대정신에 충실한 첨병이었던 그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고 목이 잘렸지만, 늦게나마 눈 밝은 사람들이 있어서, 앞에서 인용한대로 연구가 진행되고 새로운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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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산성 성벽 이곳이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팻말을 누군가 세워두었습니다. ⓒ 서부원

 
그의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전봉준, 손화중, 손병희로 이어지던 동학의 사상적 흐름 역시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정신만은 아직 온전히 남아 흐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후 남원에는 농민군을 격퇴한 것을 기리는 운봉토호박봉양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조선 전역에 이름을 떨쳤던 김개남의 흔적은 오랜 세월 동안 지워지고 말았다. 그가 역사 속에 묻혀 버린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국문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온전히 남아 있는 전봉준과 달리 즉결 처형되었기때문이다.

둘째, 한 사람을 영웅시하는 시대적 풍조로 인해 동학의 대표였던 전봉준의 그늘에 가려진 탓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급진주의자 내지는 강경한 혁명주의자로 만든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의 가족들은 족보에서도 이름이 지워지고 성마져 바꾼 채 어렵게 살아야 했고, 지금도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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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개남장(開南丈)'의 일부 혁명가 김개남에 대한 지금까지의 역사적 평가가 부족하고 잘못돼 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 서부원

 
김개남 장군의 재조명, 재평가 작업은 역사학계가 아닌 재야사학자들과 민족사상가 신영복 선생이 테이프를 끊었다. 그 자신 치열하게 민족운동에 나섰다가 독재자에 묶여 20년 20일 동안의 옥고를 치루고 나와서 '역사의 변방'을 찾았다. 감옥에서 일군 사색과 탐구의 결실이었다. 그가 찾은 변방의 하나가 김개남 장군의 추모비가 있는 전주 덕진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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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영복 선생 고 신영복 선생이 생전인 지난 2011년 9월 30일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김철관

 
'시대의 양심'으로 불린 고 신영복 선생의 글을 통해 '시대의 선각' 김개남 장군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본다.

전봉준과 김개남의 현실 인식에 있어서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봉준이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여 반봉건 투쟁을 일단 유보하고 항일ㆍ반제 투쟁에 주력하는 이를테면 주요 모순 우선 노선임에 비하여, 김개남은 어디까지나 계급 모순을 중심에 두는 기본 모순 우선 노선이다. 그래서 이름도 개남(開南)으로 바꾸어 남쪽에 새로운 나라를 연다는 뜻을 담았다.

남원부사를 비롯하여 순천부사, 고부군수 등을 차례로 처단하는 등 그의 비타협적 의지는 전봉준의 근왕주의적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 역시 부정적 평가의 근거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패전 이후 최후까지 끈질기게 항쟁의 맥을 이어간 부대가 바로 김개남 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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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신영복 교수의 〈변방을 찾아서〉 ⓒ 돌베개

 
비록 패배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갑오농민혁명은 그 후 의병전쟁, 3ㆍ1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4ㆍ19혁명 그리고 광주민중항쟁과 6월항쟁 등 역사의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논란과 쟁점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 좌우, 진보, 개혁, NL, PD, FTA 그리고 답보하고 있는 연대와 통합에 이르기까지 그 끈질긴 역사적 연루를 재확인하게 된다. (주석 2)


주석
1> 신정일, 앞의 책, 258쪽.
2> 신영복,『변방을 찾아서』, 117~118쪽, 돌베개, 2012.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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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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