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질문의 해답, 이제야 찾다

[창간 20주년 공모- 나의 스무살] 스무 살로의 시간 여행

등록 2020.02.25 08:24수정 2020.02.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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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이혼할 예정입니다'라는 웹소설을 보았다. 스물아홉 살의 여주인공이 비행기 사고를 당해 저승사자와 계약을 맺고 십년 전으로 돌아가는 설정이다. 십년동안 살아온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 그녀는 매사에 자신만만 여유롭다. 나는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문득 그 나이의 나로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대학에 막 들어간 새내기인 나는 설레는 나날을 보낸다. 교복을 벗고 아침마다 이런 저런 옷들을(나 새내기예요라고 말하듯 촌스럽게) 골라 입고, 어설픈 화장을 하고 등교한다. 친구와 같이 가입한 동아리에서는 수업보다 더 열심히 활동한다. 계절이 지나고 대학에서 처음 맞는 축제는 고등학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이런 게 축제구나'라고 느껴진다. 동아리 엠티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소풍(현장학습)과 수학여행'과는 다른 차원의 어른들의 세계였다.

이런 신나는 기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진다. 남자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지루해진 일상에서는 시간이 남아돈다. 역시 남자친구가 없는 동기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옷가게, 도서대여점 등을 거쳐서 우리는 한 퓨전음식점(같은 규모가 큰 분식집)에 정착했다.

그 음식점의 주인은 40대 후반 정도의 여성이었다. 스무 살의 나와 동기에게 그 여사장은 대단해 보였다. 자신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니고 또 외모도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그 사장님이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가끔씩 일이 끝나고 사장님은 간식을 사주곤 했다. 그런 날은 내가 몇 번의 술자리 후 내게 족쇄처럼 생긴 통금시간을 넘겨도 되는 날이다. 통금시간을 넘겨서 밖에 있는 시간은 짜릿하다. 우리(나와 동기, 다른 아르바이트생)는 신이나 있고 사장님은 차분하다. 그 당시에는 그 모습도 멋있어 보였다.

집이 가장 멀었던 나는 사장님과 제일 마지막까지 차를 탄다. 어느 날 그녀는 "왜 여자는 남자의 그늘에만 있어야 할까?"라고 물었다. 물론 그녀는 나에게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던 나는 어색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바로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빛나는 스무 살을 떠올리던 내가 그 질문에서 생각을 멈추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역시 어떤 대답을 요구하거나 해결을 해야만 하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생긴 남자친구나 짝사랑하던 선배가 군대를 간 커다란 사건들을 제치고 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스무 살을 떠올리던 나는 숙제 하나를 얻었다.

얼마 전 읽은 책 <엄마의 20년>에서 오소희는 이렇게 말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나서는 거죠. '나'를 찾은 엄마는 자신만의 가치(저는 이것을 'THE 가치'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전 세대 엄마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부터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보다 더 발전한 것이어야 한다."


그 당시 내가 사장님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많이 없었다. 또한 그녀의 남편이나 다른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전무했다. 당시의 그녀와 비슷한 나이가 된 나는 조심스레 추측해 볼 뿐이다.

'매사에 완벽하고 여유로운 그녀의 모습 뒤에는 더 커다란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사회의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스무 살의 나를 되짚어 보던 나는 답을 찾은 것 같다. 이 답은 나를 비롯해 내 주변의 다른 엄마들에게도 힘을 준다. 지금 당장 무엇이 해결되거나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희망을 줄 순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스무 살로 돌아가거나 그 때의 나를 만나더라도 나는 같은 삶을 살 것이다. 스무 살은 이해 못하는 삶의 연륜을 마흔이 넘은 나는 깨달을 수 있다. 스무 살은 스무 살의 풋풋함으로 기억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간다.
#스무살 #엄마의 20년 #THE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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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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