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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에게 가족 잃은 그들... 참전군인에게 손 내밀다

[미리보는 영화] <기억의 전쟁>,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에 대해

20.02.22 18:08최종업데이트20.02.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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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 포스터 ⓒ 시네마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말엔 양면성이 있다. 극단의 분노가 종종 망각과 체념으로 이어지듯,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라는 태도에선 아주 희박하더라도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제 갓 30대 초입에 들어선 이길보라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1960년부터 15년간 이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의 '우방국'이란 이유로 온갖 명분을 내세운 채 젊은 한국군인들이 베트남 땅을 밟았고, 전쟁 후 민간인 학살의 주체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인정이나 사과는커녕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 또한 이뤄진 게 없다.

영화의 시선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방향과는 좀 다르다. 학살자와 피해자의 대립, 진실의 탐색과 각종 사료를 통한 결론 제시에 이를 것 같지만 오히려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감독은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영화적 태도를 굳힌 걸로 보인다.

전쟁의 상처가 온몸에 남아 있는 응우옌 티 탄, 청각을 잃어버린 딘 껌, 마찬가지로 전후 2세대이자 파편으로 시력을 잃은 응우옌 럽 등. 피해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내가 봤어. 분명 한국군이었어"라는 격정적 목소리부터, "됐어. 이제 와서 누가 그 죄를 대신 갚을 수 있겠어"라는 체념의 목소리, "한국 단체에게 돈 받고 과거의 일을 들추는 거 아냐"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이웃 주민의 목소리가 영화에 어우러져 있다.

제목 그대로 서로 다른 기억과 태도가 엉켜 또 다른 파열음을 낸다. 관객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의 투쟁과 갈등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말이다. 영화 제목은 베트남 전쟁 등 다양한 관련 책을 써온 김현아 작가의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 돋보이는 건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를 둔 감독의 문제 제기법이다. 현지 스태프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장애인 출연자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해낼 수 있었던 감독은 여성 피해자, 유후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두루 접하며 관객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묵직한 진실 추적이나 충격적 이미지 제시보단 다소 지루해 보일지언정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다.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 시네마달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연출자인 이길보라 감독은 참전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침묵과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피해자 할머니의 환대를 경험하며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영화에도 한국을 탓하는 이와 피해자임에도 한국의 발전을 위해 기도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는데 왜 국가는 베트남의 눈치를 보느냐. 우리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며 시위하는 참전군인들도 나온다.

벌벌 떨면서도 그 군인들에게 "나와서 내 손을 잡고 사과하라"고 말하는 응우옌 티 탄의 태도는 곧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사과하는 마음보다 위대하고 용기 있는 태도는 이렇게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 아닐지.

월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던 당시 중앙정보부는 민주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정원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침묵 중이다. 국가 역시 베트남과 공동 조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영화와 함께 모두가 기억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다.

한 줄 평: 똑바로 기억하기 위한 작지만 위대한 여정
평점: ★★★☆(3.5/5)

 
영화 <기억의 전쟁> 관련 정보

감독: 이길보라
프로듀서: 서새롬, 조소나
제작: 영화사 고래
배급: 시네마달
러닝타임: 79분
상영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2월 27일
 
기억의 전쟁 베트남 월남전 한국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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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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