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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무덤 이장에 왜 아들만?" 이 남자의 의문

[미리보는 영화] <이장>이 그린 우리의 가부장제에 대해

20.02.21 14:01최종업데이트20.02.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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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장> 관련 이미지. ⓒ 인디스토리

 
최근 들어 한국사회 가부장제 비판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상업영화에선 < 82년생 김지영 >이 있었고, 저예산영화에선 <이장>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자가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종의 현실 종합 세트였다면, <이장>은 한 가족을 통해 보다 세밀하게 가부장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들여다 본 영화라 할 수 있다.

아버지 무덤 이장 문제를 놓고 모처럼 모인 네 자매는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 승낙(곽민규)이 잠수를 탔다는 이유로 큰아버지 댁으로 향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들 없이 어떻게 제사를 지내고 이장을 하냐는 큰아버지의 타박 뿐. 하는 수 없이 네 자매는 자취를 감춰버린 막냇동생을 찾아 떠난다. 

영화는 네 자매가 막내를 찾아다니는 전반부와 찾은 이후 완성체인 오남매가 되어 다시 큰아버지를 조우하며 이장까지 진행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사건 대부분은 차 안과 밥상머리에서 벌어진다. 좁고 한정된 공간이기에 가장 가까이 서로 살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오남매는 각자의 어려움과 형제의 속마음을 하나씩 알게 된다. 

보상금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도 형부의 외도 현장을 목격했을 땐 하나가 된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막내를 혼쭐내면서도 그의 여자친구 문제를 두고선 함께 해결책을 고심한다. <이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그래서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알린 정승오 감독은 "어렸을 때 제사를 지내는데 누군가는 절을 못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며 연출 배경을 전했다. 아들로서 누렸던 혜택 이면에 배제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친 셈이다. 

와이프의 형제를 집중취재 해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 말처럼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과 사건으로 구성돼 있다. 등장 캐릭터 대부분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그 모습이 우리네와 너무 닮아 웃음이 나기도 한다. 

 

영화 <이장> 관련 이미지. ⓒ 인디스토리

 
그 현실성을 바탕으로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에 코미디를 섞어 놓은 듯한 모양새다. 물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막내를 뒤로 하고 모인 네 자매를 혼내는 큰아버지를 향해 "딸은 자식 아니에요?"라며 대드는 넷째 혜연(윤금선아)의 모습은 곧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그림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성 감독이 아닌 남성의 손으로 이런 서사가 탄생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가부장제에 대한 주체적 반성까진 아니어도 이런 이야기들은 꾸준히 생산될 필요가 있다. 성별의 다름보단 차별과 암묵적 폭력의 심각성에 얼마나 공감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지. 지난해 <벌새> <우리집> < 82년생 김지영 > 등을 연출해 온 여성 감독의 약진과 함께 이런 서사를 다루려는 남성 감독의 등장이 반갑다. 

<이장>은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받았다. 이후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 날이 풀리는 3월 무렵, 온 가족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한 줄 평: 웃으며 깨닫는 불편한 진실들
평점: ★★★☆(3.5/5)

 
영화 <이장> 관련 정보

감독: 정승오
출연: 장리우, 이선희, 공민정, 윤금선아, 곽민규, 강민준 등
배급 및 제공: 인디스토리
공동제공: 콘텐츠판다
제작: 영화 <이장> 제작위원회
러닝타임: 94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3월 5일
 




  

 
이장 가부장제 제사 공민정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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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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