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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

정국 교수의 책 '섹슈얼 트라우마'를 읽고

등록 2020.02.27 18:34수정 2020.02.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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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꾸준히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들은 피해자에게 얼마만큼 잔혹한 성적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을 유발하고 있을까.

범죄의 예방과 처벌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피해자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성범죄자에 대한 징벌적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조각난 삶을 재건하기란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의 신체 및 정신적 건강권의 보장을 위한 시민들의 인식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이 <섹슈얼 트라우마>다. 성적 트라우마로 삶을 파괴당한 사람들이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약 30년을 바쳐온 정신과 의사 정국이 썼다.
 

지은이 정국. 블루닷. ⓒ 블루닷

 
이 책은 성적 트라우마가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다양하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특히, 성폭력 피해 이후의 삶과 치료의 여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귀중한 책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건 이후 그들의 신체 및 정신적 변화를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물론, 책이 다소 두껍고 내용이 방대하다. 하지만, 전문적 지식이 일반인도 읽기 쉽게끔 풀어서 설명돼 있어 연대의 마음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 매우 좋지 않나 생각된다. 

성적 트라우마는 전염병과도 같다
 

세계적으로, 아동 성학대 및 유년기의 성적 트라우마는 심각한 문제로 분류된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들의 형사상 통계를 볼 때, 전세계 1/3의 인구가 아동 성학대 등의 성적 트라우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추정한다.

어떻게 보면, 성적 트라우마는 빈부의 문제와도 상관없이 수많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퍼질 수 있는 전염병과도 같이 보인다. 

성적 트라우마는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특히, 트라우마 기억은 언제든지 그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균열과도 같기 때문에, 또 다시 삶을 나락에 빠트릴 수 있다. 게다가 빠른 지원과 개입을 받지 못할 경우 치료가 더욱 어려워지고 복잡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자녀 및 가족들이 주변을 항시 경계하고 단속해야 한다는 불안에 불을 지필 수 있다.  그러나, 정국 교수는 사실상 개인적으로 성 학대를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특별한 특징이나 경고 없이 잠입하기 때문에 예방에 어려움이 있고, 일반 관찰자가 피해자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해자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 또한 분별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재적 가해자를 솎아내는 방법에 몰두하기보다, 가해자 형사처벌의 강화와 동시에 국가 또는 단체가 피해자의 치료와 구제 등을 위한 만반의 준비에 열을 올리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성적 트라우마 피해자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상들

피해자를 위한 치료와 지원을 생각하는 첫걸음은 당연히 성적 트라우마 피해자의 삶과 그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고통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가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성적 트라우마가 각각의 환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개별적이므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패턴을 보여준다고 한다. 특히, 그들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행동 이상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과도한 방어적 행동을 보인다면 무엇인가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하게 할 수 있다.
 
"나와 상담하는 도중 켄트는 갑자기 벽을 향해 "꺼져, 네게서 뭘 바라는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몇 주에 걸친 상담기간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었으나, 켄트는 자신이 본 환영의 얼굴, 목소리 ,냄새 그 어떤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회상 환상은 가장 두렵고 혼란스러운 후유증이라고 한다. 알 수 없는 특정 사건이 촉매가 되어 잊어버린 성적 트라우마가 분별할 수 없는 이미지, 소리, 냄새, 통증, 촉감 등을 비롯한 경험으로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공황장애도 피해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증상이다. 갑작스러운 경련, 호흡곤란,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느껴지나 신체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을 경우 이에 해당한다.
 
"내가 겪었던 강간의 경험이 그후 20년간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았아요. 내게 있어 성관계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건조한 행위에요."

성적 친밀감의 상실도 대표적인 증상중 하나이다. 성적 접촉이 과거의 충격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피해자가 더렵혀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아픔은 강력한 사람의 감정을 상실하게 하기도 하는 등의 어려움을 만든다.

이외에도 우울증, 자기학대나 반복적인 자기 파괴행위, 자살충동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피해자를 위해 조심해야 할 행동

위의 상황을 포착했더라도 애정 어린 관심과 마음이 애꿎은 훈수 또는 과도한 동정으로 마무리되기보다, 그들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저자는 그러한 점에서 치료자 또는 주변인들이 경계해야할 중요한 지점을 잘 짚어주었다. 
 
그들에게 간단하고 직접적인 충고를 하거나 증오심을 합리화 시켜 주거나 스스로의 선입견에서 비롯된 잘못된 조언을 해서는 안된다.

대표적으로 한편으로는 가해자를 증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을 용서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환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러한 방법은 진정한 회복을 위해 치료자와 환자 모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즉 가해자를 증오하거나, 또는 용서하는 것은 치료자의 몫이 아닌 피해자의 몫이므로. 치료자는 피해자가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자신의 아픔을 치료하기위해 겪는 기억과 재생, 회복, 치유의 단계가 환자 개개인의 방식으로 해결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러한 어렵고 지루한 과정에서 평범함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새로운 지평과 경계를 트라우마 피해자들이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나하면, 벼랑 끝에 서본 그들은 사회적 우아함과 가식 속에 숨어있는 진리와 사실을 직접 보고, 느끼고,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치유에 실패하여 피해자의 인생이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때로는 성폭행 피해자들은 적절한 인간관계에 필요한 기술인 '사회매너'를 위선과 가식으로 치부하여 외부에 대한 자신만의 벽을 견고히 쌓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적 트라우마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사건 이후의 회복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은 무엇일까.   

성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실제적 조언.

저자는 아동 시기의 성적 트라우마가 향후 삶이나 발달에 제일 치명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반드시 아이들과 지속적이고 원활한 언어, 신체, 감성적 의사소통을 할 것. 그리고, 자녀의 행동을 이해하되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을 것. 조금이라도 트라우마 가능성이 보이면, 즉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것을 추천한다.

피해자들에게도 조금은 수용적인 삶의 태도를 권장한다. 그는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을 이해하면서도, 피해 사실과는 별개로,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 타인에게 저지른 수많은 문제에 대해 면죄부를 받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또한 성적 트라우마 희생자가 자존감을 키워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타인에게 무조건적인 이해를 기대하거나 기존 가치체계를 부정한다고 해서 자존감이 세워지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혼돈과 소외 속에 갇힌 자아중심적인 세계로 침잠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또는 치료자들에게는, 성적 트라우마의 해결책으로 동성애를 옹호하는 입장과 남성에 대한 분노나 남녀간의 유대감을 비하하는 태도가 오히려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남겨진 과제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이 우리 모두를 무력하고, 두렵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 자체와,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 큰 반향을 던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그랬고, 미투운동의 선구자들이 그랬듯이. 

그렇다면,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깨닫고 도움을 받게 된 사람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피해자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품고, 또 그들이 피워낸 불씨를 살리는 것이 아닐까.

섹슈얼 트라우마 - 인류가 숨겨온 가장 불편한 진실

정국 (지은이),
블루닷, 2012


#성폭력 #성폭행 #아동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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