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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보험료는 내는데... 화재 나면 권리 인정 못받는 아파트 임차인

보험사, 집주인 아닌 제3자라며 구상권 청구소송

등록 2020.02.20 09:39수정 2020.02.2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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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말 전기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조리하던 것을 깜빡 잊고 방에 들어간 경기도 이천의 정해경(51)씨. 잠시후 이상한 소리가 나 황급히 방에서 나와 보니 가열된 콩기름이 튀어 배기후드에 불이 붙어 있었다.

급히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기레인지의 누전차단기를 내린 뒤 소화기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현관 옆 소방전을 열고 방화호스를 꺼내려다 역부족으로 실패했다. 이에 급하게 경비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방화호스를 꺼냈으나 이미 집에 들어갈 수 없을만큼 연기가 가득 들어차 119에 화재신고를 한 뒤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당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이 난 아파트가 20층 꼭대기라 119 출동 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며 화재가 외부로 번지는 것을 사전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정씨는 자비 2300만원을 들여 집을 복구하며 아파트 화재 보험을 청구해 화재 발생 2개월 후 L손해보험에서 1715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보험료를 받은지 6개월 뒤 보험사로부터 아파트 화재 복구비를 모두 환수하겠다는 청천벽력같은 구상권 청구서를 받으면서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보험사 측이 아파트 건물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내온 정씨가 집주인이 아닌 전세입자라는 점에서 이번 보험의 제3자라고 보고 보상금을 다시 회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된 건물보험료를 제가 계속 낸 것은 집에 불이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것인데 전세를 산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도로 내놓으라니 기가 막힌다"며 보험사에 항의했지만 소용 없었다.

'아파트 관리규약'에 사용자의 자격은 주택전세권 및 임차권 등을 취득한 때에 발생하고 입주자에게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감사 등에 관한 선거권·피선거권·해임권이 있다고 돼 있다는 점에서 전세입자도 집주인처럼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고 호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L손해보험 측은 정씨가 방호조치 등의 의무를 제대로 다하지 않았고, 보험계약을 맺은 대상이 입주자대표회의여서 통상 집주인이 아닌 전세입자는 제3자로 규정하고 구상권을 청구한다며 서울중앙지법에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 담당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계약을 맺는 이는 집주인으로 임차인이 아니다"며 "안타깝지만 임차인은 건물주가 아니라 불이 나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임차인은 집주인을 상대로 매달 750원의 보험료를 대신 낸 것에 대해 보험료 반환청구를 할 수는 있으나 몇 푼 받자고 소송하면 소송비가 더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임차인인 정씨는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압하기 위한 방법을 모두 썼고 아파트 관리비에 있는 건물보험료를 세입자인 제가 다 냈다"며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보험 계약자는 집주인 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있다고 해석이 된다"고 반박했다.

정씨는 이어 "금융감독원이나 손해보험협회나 이런 억울한 일에는 좀 나서줘야 하는데 '잘못된 것은 알겠지만 현행법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이어서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파트 #화재 #임차인 #보험사 #구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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