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동학당 근거지 찾아 초절할 것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66회] 일본정부가 학살한 동학농민군은 대체로 30만 명에 이르렀다

등록 2020.02.15 18:22수정 2020.02.15 18:22
1
원고료로 응원
 

관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학농민군들. 황룡전적지 기념탑에 새겨진 부조물이다. ⓒ 이돈삼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의 움직임과 지도자들의 거처를 손바닥처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동학농민군은 적에게 거의 모든 정보를 노출시킨 가운데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다음은 동학군 학살을 위해 파견되는 일본군 대장들에게 인천 주재 일본 병참사령관이 부여하는 훈령이다.

훈령

1. 동학당은 현재 충청도 충주ㆍ괴산 및 청주 지방에 군집해 있고 그 여당은 전라ㆍ충청 양도소재 각지에 출몰한다는 보고가 있으니 그 근거지를 찾아서 이를 초절할 것.

2. 조선정부의 요청에 따라 후비보병 제19대대는 다음 항에서 가리키는 3로로 나누어 진군하고 조선군과 협력해서 연도에 소재하는 동학당의 무리를 격파, 그 화근을 초멸해서 재흥(再興)의 후환을 남기지 않음을 요함. 그리고 그 수령으로 인정되는 자는 포박해서 경성 공사관으로 보내고 더욱이 동학당들의 왕복서류와 거괴들의 왕복서류 또는 정부부내의 관리나 지방관 혹은 유력한 계통에서 동학당과 왕복시킨 서류는 힘을 다해 이를 수집하여 함께 공사관에 보낼 것.

그러나 협박에 못 이겨 따른 자에 대하여서는 그 완급의 정도를 헤아리고 귀순해 오는 자는 이를 관대히 용서하여 굳이 가혹하게 처분하는 것을 피할 것. 단 이번에 동학당 진압을 위해 전후로 파견된 조선군 각 부대의 진퇴와 군수품조달은 모두 우리 사관(士官)의 지휘명령에 복종케 하고 우리 군법을 준수케 할 것이며 만일 위배하는 자가 있으면 군율에 따라 처분될 것이라고 조선정부로부터 조선군 각 부대장에게 시달되어 있다 하니 조선군의 진퇴는 모두 우리 사관들이 지휘 명령할 것.

3. 보병 1개중대는 서로 즉 수원 · 천안 및 공주를 경유해서 전주부가도로 전진하고 그 도로 좌우에 있는 영읍을 정찰할 것이며 특히 은진ㆍ여산ㆍ함열ㆍ부안ㆍ금구ㆍ만경ㆍ 고부ㆍ흥덕 지방을 엄밀히 수색하고 더 전진해서 영광ㆍ장성을 경유해서 남원으로 진출, 그 진로에 있는 좌우의 역읍을 정찰할 것이며 남원 정찰은 각별히 엄밀히 할 것.


보병 1개중대는 동로(우리 군의 병참노선) 즉 가흥ㆍ충주ㆍ문경 및 낙동을 경유해서 대구부 가도를 전진하고 그 진로 좌우에 있는 각 역읍을 정찰할 것이며 특히 음성ㆍ괴산ㆍ원주ㆍ청풍은 수색을 엄밀히 할 것.

각 중대는 될 수 있는 대로 서로 기맥을 통하고 각처에서 가능한 한 합동으로 초절하는 방략을 취해서 함께 그 초절의 실효를 거두도록 할 것.

각 중대는 적의 무리를 초토해서 그 여진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경상도 상주에 집합해서 후명을 기다릴 것. 대대본부는 중로 분견대와 함께 행진 할 것.

4. 각로로 나누어 진군하는 중대는 대략 별지 일정표에 준거할 것이며 동로 중진중대는 약간 먼저 보내서 비도를 동북쪽에서 서남으로, 즉 전라도 방면으로 구축하도록 노력할 것. 만일 비도들이 강원 · 함경도 방면, 즉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지방으로 도주하게 되면 후환을 남기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니 엄히 이를 예방할 것. 단 될 수 있는 한 서로 연락을 취하고 각기 그 소재를 알리도록 꾀할 것.

 

미나미 고시로의 <동학당 정토경력서>(1895) 표지 동학농민군 학살 집행 내역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 ⓒ 박용규

 
5. 각 분진중대에는 조선 조정에서 진무사와 내무관리 등을 따르게 하였음.
진무사는 각지에서 감사와 부사를 독려하고 동학당에 대하여는 순역을 설명해서 이해득실을 일깨워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반성 귀순케 하는 일을 전임으로 함.

내무관리는 각 중대를 수행해서 대장의 명을 받들고 연도 각처에서 양식과 기타 군수품을 조달, 인마의 고용과 숙사 제공 등을 알선해서 각 중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으로 임무를 삼음.

6. 각 중대는 3일분의 양식과 2일분의 휴대 구량(口糧) 및 취사도구 등을 휴대하고 갈 것이며 이를 위해 견마 약간을 따르게 함.

단, 나날의 양식과 여러 물자는 가능한 한 현지에서 조달하고 만일 휴대하고 간 양식과 물자가 소진되었을 때는 힘써서 신속하게 현지의 물자를 사서 보충함이 긴요함.

7. 동학당 진무에 관한 제 보고는 대대장과 각 분진 중대장으로부터 수시로 본관에게 보낼 것 (본관은 인천병참사령부에 있겠음).(주석 9)

 

전남 목포·신안의 중학생 29명이 지난 10일~16일 중국 난징(南京)-항저우(杭州)-상하이(上海)를 찾아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했다. 12일 찾은 난징대학살 기념관 내부에 당시 일본군의 잔혹성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중국인의 목을 베려는 한 일본군 뒤로, 웃고 있는 다른 일본군들이 보인다. ⓒ 소중한

 
몇 해 전 일본은 문부성의 종용으로 개정된 각종 교과서에서, 중국 난징학살을 가볍게 기술하거나 심지어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난징기념관은 '만인갱유지(萬人坑遺址)'에서 발견된 탄피ㆍ포신ㆍ일기ㆍ생존자증언 등 2000여 종에 이르는 새 발굴 사료를 증거로 일제의 난징대학살의 역사적 진실을 증명하였다.

중국군사과학원 뤄환장(羅煥章)교수는 「일본우익과 정계요인은 왜 난징학살을 부인하려하는가」란 논문에서 "난징대학살은 그 규모면에서 전례가 없는 것으로 독일의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능가한 것이다. 일본군은 중국의 수도에서 6주 동안에 30여만 명을 도살하고 대량의 가옥을 파괴하였으며, 10여만 명의 부녀자를 유린하고 창고와 재물을 약탈하였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잔혹행위였다." 고 지적하였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실에서 발견된 동학농민군 지도자 박중진 등 6구의 유골. ‘1906년 9월 20일 전라남도 진도에서 사토 마사지로가 채집했다’는 문서도 함께 들어있었다. ⓒ KBS

 
이보다 못지 않는 일본군의 잔학행위가 한국에서 자행되었다. 일본은 동학군의 학살에 대해 대부분 이를 부인하거나 축소 왜곡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조직적으로 지휘 명령하여 학살한 동학농민군은 대체로 30만 명에 이르렀다.


주석
9>  같은 책, 68~6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학혁명 #김개남장군 #동학혁명_김개남장군 #동학당 #난징대학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멋있는 수필 <멋>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