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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신당' 해프닝이 보여준 정치 퇴행

[게릴라칼럼] 낡은 관행에 감염된 백신... 그리고 공약 없는 위성정당 띄운 자유한국당

등록 2020.02.10 18:28수정 2020.02.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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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당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창당준비위원장에 선출된 안철수 전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귀국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주축이 된 당의 이름을 '안철수신당'으로 쓰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불허 때문이다. 안철수 전 대표 측은 '선관위가 헌법과 무관한 과도한 해석으로 정당설립의 자유를 침해했다'면서 정치적 판단이 의심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과거 '친박연대'의 당명과의 형평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결국 안철수 전 대표 측은 당 이름을 '국민당'으로 하기로 했다(공교롭게도 자신이 만든 국민의당에서 '의' 자 하나만 뺐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안철수신당'이라는 이름 자체는 시대정신이나 국민정서와는 너무 동떨어진 발상이다.

'안철수 굿당'임을 보여준 안철수신당 논란

'친박연대'도 그렇지만 '안철수신당'도 특정인의 대중적 지지도를 총선에서 표를 바꾸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당의 비전이나 출마후보의 면면을 내세우기보다는 당 대표 이름이 먼저 사용된 사례다. 

흡사 1인 정당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모양새인데, 흥미로운 건 새로운 정당임을 강조해 '신당'이라 이름 붙인 지점이다. 한 사람의 영향력보다 당원 모두의 의사가 결집되도록 당헌과 규칙을 바꾸는 게 대부분 정당들의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게다가 민의와 투표 결과가 서로 다르지 않게 하기 위해 국회는 선거법을 개정했다. '친박연대'는 되고 '안철수신당'은 왜 안되느냐는 비난은 새로운 정당을 '친박연대'처럼 운영하겠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모두 새로운 정당임을 내세운다. 정당을 'OO신당' 같은 식으로 정하는 것은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제스처 중 하나다. 그러나 '안철수신당'은 새로운 정당의 '신당(新堂)'이 연상되지 않는다. 되레 반신반인의 초상을 벽에 걸어 놓고 복을 기원하는 신당(神堂)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선관위의 불허 결정으로 '안철수 굿당'이란 조롱은 피할 수 있게 됐으니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대를 거스르고 민의를 외면하면서도 오로지 총선 승리에 목을 맨 정당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례한국당이라는 당명 사용이 불허된 자유한국당 위성정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당명으로 지난 5일 창당했다. 당 대표는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선교 의원. 한국당을 탈당하고 미래한국당에 입당하는 현식으로 추대됐다.


그는 "극악무도한 법질서가 무너진 폭거들의 모습을 보며 전의에 떨고 있다, 우리 당원동지 여러분과 함께 정의가 무엇인지 미래한국당의 총선 승리를 통해 분명 보여주겠다"라고 밝혔다.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 당시 비례 위성정당에는 갈 마음이 없다던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 그의 말 바꾸기도 목불인견이지만 선관위의, 비례한국당 당명 불허 결정에 '비례'를 '미래'로 바꾸면서 설립을 강행한 자유한국당의 꼼수는 할 말을 잃게 한다.

유권자 30%가 미래한국당에 투표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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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잠긴 김재원 자유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선관위에서 비례한국당 명칭을 불허한 이유를 살펴보자. '비례'는 사전적 의미만으로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례'라는 단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적 구성 등 일반 현황을 살펴보면 비례한국당과 자유한국당은 구별하기 힘들다. "서로 다른 정당"이라는 설명은 말장난에 불과해 보인다. 비례한국당이든 미래한국당이든 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선관위가 비례한국당 명칭을 불허하자 '다른 당명도 많다'고 응수했던 자유한국당. 법을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법의 빈틈을 파고드는 행태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김재원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미래한국당의 27∼28석 당선을 예상하며, 반민주적 악법인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에 저항하기 위해서 만든 정당이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면 합당하게 된다, 굳이 다른 정책적인 공약을 내걸 필요가 없다, 자유한국당의 공약이 미래한국당의 공약'이라는 주장을 폈다.

망발이다. 통상적으로 자유한국당이 얻었던 정당투표 30%를 미래한국당으로 옮겨 놓으면 27∼28석이 된다는 주장인데, 그럼 유권자의 30%는 자유한국당의 말 한마디에 공약도 없는 미래한국당에 표를 줘야 한다는 것인가. 국민들을 향해 '레밍 같다'는 막말을 퍼부었던 김학철 전 자유한국당 도의원의 인식이나 김재원 의원의 그것이나 피장파장이다.

개인 이름을 당명으로 쓰겠다며 '안철수신당'을 고집했던 국민당. 득표와 총선 승리는 위해 공약도 없는 위성정당을 만든 자유한국당. 누가 뭐래도 정치 퇴행이다. 국회가 선거법을 통과시킨 것은 '민의가 선거결과에 좀 더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게 하자'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선거법에 저항하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든다? 이렇게 당선한 국회의원에게 준법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국회에서 통과된 법조차 부정하는 정당이 다수정당을 넘어서 집권을 꿈꾼다. 이런 집권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대답을 듣고 싶다. 

낡은 관행에 감염된 정당이 백신이 되겠다?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당들이 인재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참신한 인재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낡은 구도의 정당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정말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를 하고 싶다, 딸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느끼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한나라당 입당 시 정치 포부를 밝혔던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 그는 '내가 그렇게 좋아'로 대표되는 성희롱 발언과 당직자에게 한 욕설, 기자 모욕 등 숱한 구설수에 올라왔다. 이 행보는 그가 거쳐온 정당의 자정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격언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낡은 정당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인재영입만으로 새로운 정당이 되겠다는 건 사기에 가깝다. 양머리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 

안철수 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은 우리나라가 세금 도둑질 바이러스, 진영정치 바이러스, 국가정치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됐다면서 국민당이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의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인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다른 바이러스는 잡겠다고 팔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감염된 컴퓨터로 다른 컴퓨터를 치료할 수 없고, 바이러스에 노출된 의사가 그 사실을 모른 채 환자를 돌보겠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안철수 위원장에게 시급한 건 '정당은 내 것'이라는 그릇된 제왕주의 정치철학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안철수신당'이라는 당명을 불허한 선관위를 두고 정치적 판단을 운운하기보다 국민에게 사죄를 먼저했을 텐데 말이다.

부동산 거래에서 부르는 가격과 팔리는 가격은 다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탈법·편법을 동원하고 역사를 되돌리면서까지 몸짓을 불리는 정당들이 있다. 하지만 총선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안철수신당'이나 비례를 위한 위성정당 설립보다 정당이 보여줘야 할 것은 낡은 관행과의 결별이다. 국민은 적폐의 정치권력을 바꾸고 새로운 의회권력의 탄생을 기대한다. 그런데 정작 정당은 철지난 '친박연대'나 만들고 공약 없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이래선 안 될 일이다. 가격만 높이 보이면 비싼 값에 팔릴 거라는 인식 오류의 바이러스, 치료하지 못하면 폭망하기 일쑤다. 자유한국당과 국민당 스스로 바꾸지 못하면 유권자에 의해 바뀐다.
#안철수신당 #국민당 #미래한국당 #자유한국당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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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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