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남의 이야기 같으세요?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生의 命, 農농·革혁·美미·言언 4] 새들생명울배움터 최봉실 대표

등록 2020.02.11 09:05수정 2020.02.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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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배움터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왔습니다. 매해 가을, '교육'(2014), '글쓰기'(2015), '역사'(2016), '마을'(2017), '진실-언론과 정치'(2018)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뜻깊은 배움을 이어온 지난 시간을 발판 삼아 올해도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엽니다.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주제는 '生의 命 - 農농·革혁·美미·言언'입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의 질문 앞에 애타는 목마름으로 그 이유와 길을 묻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김준권 평화나무농장 대표(農농) ·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革혁) · 유순혜 화가(美미) · 최봉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대표(言언). 주제마다 이끌어주실 길잡이 선생님들입니다. 이들을 통해 '生의 命'의 음성을 좀 더 선명히 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9월, 10월, 11월과 1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립니다.[기자말]
지난 가을께 시작한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生의 命 - 農농·革혁·美미·言언'이 어느덧 마지막 '언(言)'의 시간을 맞았다. '언(言)'은 '별 바람 햇살 그리고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새들생명울배움터 최봉실 대표(이하 최 대표)가 강의했다.

지난 1월 31일 특별 공연이 마지막 '언(言)' 강의의 문을 열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이하 배움터경당)의 네 학생들이 나와서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학생들은 머지않아 재개발로 떠날 안양 비산3동 마을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흘러내린다
-작사·작곡: 양의진

흘러내린다 흘러내린다
소리 없던 선홍빛 바람
사락사락 불어대는 파도의 노랫말
따듯했던 바다빛 하늘에 살며시 날아가 웃던 날들
하늘의 넓음을 좋아하는 낮은 지붕 마을
우리의 추억이 뛰논다 으음 바람과 함께 라랄라라라

흘러내린다 흘러내린다
낯설었던 갈색 잎 하나
재잘재잘 노래하는 새들의 안식처
싱그럽고 조용한 숲 속에 살며시 내려가 앉은 그날
숲 속에 자신과 닮은 친구들 (하나 둘) 모여들어
바스락바스락 으음 라랄랄라랄 라랄랄라라

흘러내린다 흘러내린다
소중한 건 영원하지 않아
마음에 (마음에) 꼭 담아야 해
지금을 흘려보내지 마
기억해 (기억해)
마음에 담아

흘러내린다 비가 내린다
그래 사라져 가는 날이 있어

흘러내린다 흘러내린다
낯설었던 갈색 잎 하나
재잘재잘 노래하는 새들의 안식처
싱그럽고 조용한 숲 속에 살며시 내려가 앉은 그날
   

배움터 경당 양의진 학생의 자작곡 <흘러내린다>를 부르고 있는 배움터 경당 친구들. 왼쪽부터 양의진(20), 김고운(20), 이혜인(20), 명다소(17) 학생. ⓒ 새들생명울배움터


소중한 건 영원하지 않으니


배움터경당이 안양 비산동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10년이다. 아이들은 배움터경당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하거나 1년 뒤, 3년 뒤 경당에 결합한 이후로 지금까지 함께해왔다. 대다수 참가자인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 회원들 역시 경당이 마을에 있어온 시간 동안 함께 공부하며 살아왔다. 선홍빛 바람, 재잘재잘 새소리, 하나 둘 모여 놀던 친구들과의 풍경, 낮은 지붕 마을 비산동에서 함께한 시간이 10년이다. 헌데, 이제 비산동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배움터경당 학생들의 노래를 듣고 박수를 치고 있다. 브라보! ⓒ 새들생명울배움터

   
최 대표의 '언(言)' 강의의 핵심은 노래가 말하고 있는 바와 일치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순간, 사건은 우리 인생의 생사와 안녕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그 소중한 것을 간절히 꿈꾸고 붙들어 실현시키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믿고 붙들어야 할 언(言)이 상당히 훼손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믿고 붙들 소중한 사태 자체가 우리 안에 너무 취약합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당찬 패기로 소중한 것을 믿고 붙들기보다 '될까, 가능할까, 두려워'라는 말에 더 크게 지배당합니다. 이는 우리의 본성이라기보다 학습된 결과입니다. 가장 뛰어난 소수만이 걸러지는 패러다임 속에서 다수는 패배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간절히 붙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우리 삶 속에서 '언(言)'의 권위를 가지기보다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언(言)'에 의해 장악되어 살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자 '말씀 언'의 갑골문자. 사진출처: http://chinesewiki.uos.ac.kr/ ⓒ 중국학위키백과


언(言), 하늘을 향해 무언가 구하고 있는 형상의 갑골문자에서 비롯된 글자다. 옛날 사람들은 신에게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言)은 매울 신(辛)과 입 구(口)자로 이루어진 글자다. 신(辛)은 예로부터 문신에 사용하는 침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형벌을 내릴 때 죄인에게 낙인 찍는 벌을 의미했다. 구(口)는 입을 통해 신에게 고한다 하여 맹세의 의미가 담겨있다. 즉, 언(言)은 신에게 맹세하거나 기도하는 일에 허위나 불순한 마음이 있다면 신이 내린 벌을 받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인간 관계에서도 신에게 맹세하는 자세로 서로에게 하는 말이 언(言)이다.

"신 앞에 자신을 걸고 절박하게 말하는 것, 내뱉은 말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언(言)입니다. 신에게뿐만 아니라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도 그 정도의 무게와 가치로 말하는 것이 언(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언(言)의 의미를 얼마나 생각하고 구현하며 살고 있을까요?"

'사회적 약자'? '존재적 약자'?

최 대표는 사회에서 고통이 발생하는 두 축을 살펴보았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며 진행되는 재개발, 차별이나 과중한 노동, 불합리한 근로조건 등은 사회적 불의함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겪게 되는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은 '(불의한) 사회적 강자'에 의해 초래되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반면, 최 대표는 사회의 고통 발생의 또 다른 축으로 '존재적 약자'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존재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성숙하지 못해서, 자기밖에 몰라서 타인에게 고통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불의한 사회적 강자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초래되어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에 비해, 이 존재적 약자들이 타인에게 끼치는 고통은 훨씬 더 일상적이고 보편적이다.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일상적인 고통에서 남모르게 힘겨워하며 살고 있으며, 때론 나의 이기심으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는 것에 무감한 채 살아가고 있기 십상이다. 인간 자체가 존재적 약자일 수밖에 없기에 인생 자체가 고해(苦海)라고 한 불교의 일설이 생소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가 겪는 고통에 비해 존재적 약자가 초래하는 고통은 좀처럼 해결이 쉽지 않다. 존재적 약자는 시야가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자신이 무슨 고통을 가하는지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법칙이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이 '고통을 겪는다'라고 말하는 '약자'이므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 의식이 커갈수록 '존재적 약자'가 '약자'로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 더욱 힘을 얻어 타당한 비판 앞에 서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고통의 해결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최 대표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화두가 바로 이 사회적 약자와 존재적 약자가 혼재되어 있는 사태들의 시시비비를 예술적으로 가려내는 일이라고 했다. 존재적 약자가 고통을 가하는 미묘한 지점을 사회가 면밀히 따져 가릴 수 있는 것, 불의한 사회적 강자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면서도, 사회적 강자와 사회적 약자를 막론하고 불의하게 고통을 가하고 있는 존재적 약자의 행태를 포착해내어 시정하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일상적 분별을 획득하는 일, 개인과 사회 모두가 이러한 성숙으로 나아가는 일이 우리 사회에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라고 최 대표는 강조했다.

최 대표의 지적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최고감독상 수상 후 했던 인터뷰에서 지적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와도 일맥상통한다.
 
기자: 기생충이 한국에서 사회 혁명을 일으키는 시작이라고 봐도 될까요?

봉준호 감독: 혁명, 오히려 혁명으로부터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거 같아요. 세상이. 혁명의 시대가 많이 지나가고 혁명이란 것은 뭔가 부서트려야 할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게 뭔지, 혁명을 통해 깨뜨려야 되는 게 뭔지 파악하기가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생충은 오히려 그런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는 거 같아요.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최고감독상 수상 인터뷰 중 (관련기사:
"기생충이 사회 반란 주도?" 봉준호 감독 통역사가 또 제대로 살렸다)  
  
"봉 감독이 무엇을 깨뜨려야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해졌다고 진단하고 있는 그 사회 현실을 더 잘 풀어내보기 위해 '존재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으로 제가 '언(言)'을 명료하게 해 본 것입니다."

최 대표는 관계에서의 갈등, 마음에서 오는 내면적인 고통, 행복하지만 행복하지만은 않은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언(言)'을 보다 더 잘 세움으로써 제대로 해결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 언(言)의 명료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그냥 '약자'라고만 했을 때는 '존재적 약자'로 고통을 가하고 있는 축은 포착되기 어려운 현실을 의미한다.

사실 존재적 약자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서 다 같이 힘을 모아 서로의 몫을 나눠가며 일하고 있는데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만 하는 모습이라던지,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스스로의 처지를 깎아내리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습, 반대로 부러운 대상을 얄미워하며 배척하고 왕따시키는 모습 등 모두 존재적 약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최 대표가 말해준 존재적 약자의 모습들은 때때로 보이는 내 모습이라고 할 만큼 낯설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존재적 약자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사람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평생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약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약함 때문에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잘못을 했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약한 부분이 어딘지, 그 약한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성찰이 없는 삶은 함께하고 있는 이들을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없고 고통은 신원될 수 없게 됩니다. 꾹꾹 참고 누르며 살 수밖에 없는데, 고통받는 이들은 만연한데, 고통을 가하는 이는 없는 형국이 되니 우울증은 무럭무럭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잘못 할 수 있고,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성찰'이 필수이나, 교육의 장에서 어느 순간 '성찰'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장에 '성찰'의 교육이 시급히 회복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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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실 대표가 사회적 약자와 존재적 약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존재적 약자는 최봉실 대표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최 대표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인식하고, 나로 인한 타인의 고통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불의한 사회적 강자로 인해 초래되는 고통뿐만 아니라 존재적 약자의 불의한 자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도 방치하지 않고 부지런히 해결해갈 수 있도록 모두가 성장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세함 속에 담겨있는 선조들의 마음

아래의 글은 조선시대 인쇄 관련 규정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때와 법, 조상께 제사 드리는 법이다. 참 상세하다.
 
서책을 찍어낼 때 감교관, 창준, 규자장은 인쇄된 책 한 권당 글자 한 자의 착오가 있을 경우 30대의 매를 치고, 한 자가 더 틀렸을 때마다 한 대를 더 때린다.
인출장은 인쇄된 책 한 권당 글자 한 자가 먹이 진하거나 혹은 희미하면 30대의 매에 처하고, 한 자마다 한 등을 더하되 아울러 그 글자 수를 계산하여 죄를 다스린다.
글자 수를 모두 합친 벌로써 관원은 다섯 자 이상이면 파출하고, 창준 이하의 장인은 죄를 논한 뒤 근무 50일을 삭제하여 감봉하며, 이들은 죄가 사면되기 전에는 다시 쓰지 않는다.
-대전후속록 (大典後續錄): 1542년, 경국대전과 대전속록의 속편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국가 법령집.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로 드리되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또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시내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하나에 힌 사분지 일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
-구약성경, 민수기 28:4~7
 
自諸侯達諸士(자제후달제사) 小祥之祭(소상지제)
主人之酢也嚌之(주인지초야제지)
衆賓兄弟則皆啐之(중빈형제칙개쵀지)
大祥(대상) 主人啐之(주인쵀지)
衆賓兄弟皆飮之可也(중빈형제개음지가야)
凡侍祭喪者(범시제상자)
告賓祭薦而不食(고빈제천이불식)

제후로부터 제사에 이르기까지 소상 제사에는
주인에게 잔을 드리면 이를 입에 대고
모든 손님이나 형제들은 모두 이를 맛본다
대상에 주인이 술을 맛보면
모든 손님이나 형제들은 술을 마셔도 좋다
무릇 제사와 초상을 도와서 일하는 자는
손님에게 포해를 들라고 고하지만 손님은 이것을 먹지는 않는다.
-예기禮記第二十一: 잡기하雜記下

조선시대에는 글 자체가 귀했다. 당연히 책도 귀했으며, 종이 같은 물자도 귀했다. 이렇게 책을 만들고 인쇄를 하던 곳을 '주자소'라고 했는데,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인쇄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당시 인쇄 과정 또한 꽤나 복잡했다.

성경의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하셔서 새 땅으로 인도하신다. 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켜야할 것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글은 중국 고대 유가 경전인 '예기:잡기하'편에 나오는 제사 예법이다. 예기에는 모든 예법에 관한 이야기가 망라되어 담겨있다. 특히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예법들이 상세히 적혀있다. 

필자가 이토록 자세히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기록하면서까지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잘하라고요!"

최 대표의 물음에 이재호(37)씨가 답했다.
 
"정답입니다. 잘하라고요. 책을 잘 만들고, 제사를 잘 드렸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그건 기록된 내용을 더 잘 전수 받아 사람들이 더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 정성들여 상세하게 적었을까요."


최 대표는 그 상세함을 찬찬히 살펴보면 자신이 죽더라도 이 가르침만은 남았으면 하는 간절함과 그 가르침을 구현해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한 대비책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자소에서 인쇄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주자소는 조선시대에 활자를 주조해 서적의 인쇄를 담당했던 곳으로, 장인들이 관료의 감독하에 인쇄작업을 하고 있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선조들의 정성과 수고를 따라 상세한 지침들을 몸에 익히고 나면, 스스로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는 때가 옵니다. 과거의 지침이 현재의 새로운 상황을 다 담아낼 수 없어요. 이러한 지침들을 통해 본질을 배워야 하고 배운 본질로 무수한 새로운 상황들을 스스로 해결해가야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어린 아이처럼 잘 모르는 때에는 상세한 지침을 따르고 하나하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입사하면, 주어지는 매뉴얼대로 일을 하면서 몸에 익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하우가 생기고, 매뉴얼 없이도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상세한 지침 자체가 아니라, 지침에 담겨있는 가치 즉, 본질이며, 지침을 따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가치와 본질을 구현하며 사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때가 되면 스스로 그 본질을 분별하고 구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사실 그간 우리에게는 다양한 방법으로 무수한 지침, 즉 언(言)이 주어져왔다. 기독교인에게는 성경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존경하는 스승의 말씀, 오랜 친구의 진심어린 조언, 깨달음을 주었던 책 등 다양하게 주어졌을 것이다. 그 언(言)을 언(言)으로 생각하고 구현하며 살았는지 곱씹어 본다. 주어진 무수한 지침들의 본질을 구현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걸음이 된다.
 
"너와 나의 삶의 고통을 묵히고, 썩히고, 쟁여두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해결하고, 비로소 행복을 누리며 살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법

최 대표는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될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불안과 불신과 걱정은 불의한 사회적 강자에 의해서 우리에게 지워진 고통의 외상이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받은 양육과 사회로부터 받은 교육이 견고하게 굳어져 트라우마가 됐다.

친구들과의 우정보다는 경쟁의식이 팽배하고, 자녀의 성공은 대학과 직업으로 결정되며, 부모는 자신의 막연한 불안을 투영해 자녀의 자유를 저당잡는다. 부모의 틀 속에 있는 안전한 길로 자녀의 무한 생명력을 억압한다. 연인끼리는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사랑하기보다는 조건을 내세워 사랑을 증명하라 강요한다.

사회가 삶의 본질과 중요한 가치를 지키며 살도록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가치들을 내팽개치고 외적 조건만을 추구하고 살도록 억압한다. 스스로조차 '할 수 있다'는 응원보다는 '네 까짓 게'라며 자신을 불가능성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 한가운데 우리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까. 최 대표의 물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강의에 참여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나타났다. 예수다. 예수는 이 땅에서 사는 내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다. 병자들은 항상 예수 뒤를 좇았다. 만나고 또 만나도 끝이 없었다. 심지어 병자의 침상을 들고 나와 고쳐달라고 애걸하는 이들도 있었다. 병자들은 어떻게든 그의 옷깃이라도 만져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손을 뻗고 뻗었던 절박한 존재들은 나음을 입었다. 예수는 병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거라사 지방에 이르자 예수에게 군대 귀신 들린 자가 나아와 자신을 좇아내지 말라고 빌며 차라리 자신을 돼지에게 씌이게 해달라고 한다. 그는 매일 무덤가에서 괴로워하던 광인이었다. 예수는 기꺼이 그의 간청을 들어주었고, 거라사 광인에게 들렸던 귀신은 돼지에게로 들어간다. 그 순간 돼지 2천 마리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를 본 마을주민들은 예수에게 이곳을 떠나 달라고 한다. 수천마리의 돼지를 잃어 입은 경제적 타격에 겁을 먹은 것이다. 예수는 한 마을의 경제적 타격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홀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고통이 더 시급히 해결할 고통의 문제라 보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사회적 강자에 의한 고통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회복시켜내는 과제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내 옆에 사회적 약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최 대표는 더 이상 주변의 어떤 고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존재적 약자인 나 혼자 잘 사는 것을 넘어, 불의한 강자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회복시키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수의 죽음이 수천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다. 고통 받는 이들의 절박함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예수는 자신의 옷깃만 스쳐도 나음을 얻을 수 있는 기적을 행했다. 최 대표는 고통 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신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깃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안에 간절히 소망하는 것, 소중한 것이 무수하겠으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사랑

"정녕 불의와 맞서기 위해서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일상을, 사랑을, 인생을 다 내던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처럼, 무수한 독립운동가 분들처럼 누군가는 삶의 모든 쾌락을 다 내던진 채 불속으로 자신을 내던져야만 안녕이 찾아질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요. 그런 짐을 언제까지 소수에게 지운 채 누군가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우리는 안연히 살아갈까요."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신채호가 생각났다.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 독립운동가 신채호. 그는 3.1운동 이후 간호사 박자혜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신채호는 박자혜에게 가정에 등한할 수밖에 없음을 당부했다. 부부가 같이 산 것은 고작 2년 남짓이었다. 신채호가 체포되자 신채호의 신변을 걱정하며 독립운동가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하는 박자혜의 편지에 신채호는 정 힘들면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라고 답했다. 신채호가 얼마나 독립운동에 매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채호는 평범한 일상을 뒤로하고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사랑도 아내도 자식도 뒤로 해야 했다. 그저 조국과 독립만을 붙들었다. 박자혜 또한 평생을 신채호의 뒷바라지, 옥바라지를 하며 독립운동에 이바지했다. 1936년 2월. 신채호가 위독하다는 비보가 들리고, 신채호는 숨을 거둔다. 박자혜는 모든 희망이 끊어졌다며 이렇게 기록했다.
 
"당신은 뜻을 못 이루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당신의 원통한 고혼은 지금 이국의 광야에서 무엇을 부르짖으며 헤매나이까. 당신의 괴로움과 분함과 설움과 원한을 담은 육체는 작은 성냥 한 개로 재로 변하고 말았다. 가신 영혼이나마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최 대표는 나의 고통, 다른 이의 고통을 해결하는 일을 더 이상 소수에게만 지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걸머져야 할 공통의 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존재적 약자에서 털고 일어나 그 짐을 거뜬히 질 수 있는 성숙함을 획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은 전쟁처럼 치열하고 피곤하겠지만, 이제는 인생의 기쁨과 사랑을 내던져야만 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가 아니겠냐고 했다.

이제 우리 세대는 우리 전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요소들, 불의한 사회적 강자에 대해 싸우는 것 못지않게 우리 자신의 존재적 약함에 대해 치열하게 싸워 성장해가는 그 과정에서 인생의 기쁨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해가자고 했다.

"전쟁을 이기기 위해 사랑의 강도를 더욱 높여가야 합니다. 함께하는 이들 간에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더욱 함께 정의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안과 밖의 불의함과 더욱 잘 싸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연애할 때만 뜨겁지 말고 오래오래 뜨겁게 사랑하고 더욱 간절히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소중한 것, 우리가 붙들어야 할 '언(言)'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강의를 들은 부부. 조진혁 씨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쪽에 앉아있는 남편 조진혁 씨, 마이크를 든 아내 채윤실 씨. ⓒ 새들생명울배움터


언여기인(言如其人), 말은 곧 그 사람이다

강의 전 숙제가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말을 적는 것이었다. (숙제 보러 가기) 참가자들은 책의 한 구절을 적기도 하고, 한 단어를 적기도 했다. 친구가 해준 말, 스승이 해준 말 등 다양한 말을 적었다. 

최 대표는 참가자들이 과거의 말(言)로만 살아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매일매일 무수한 말을 하고 들으며 살아가는데, 인생을 바꾼 말이 몇 십 년 전 그 한마디 말고 근래에는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매일매일 여러분의 삶을 바꿔내는 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안녕을 비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말(言)을 원동력으로 삼아,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언(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 대표의 진심어린 당부를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참가자들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를 카드에 적어 붙여뒀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강의를 마치고 참가자들의 소감을 들었다. 배움터경당 양의진(20) 학생은 최 대표의 강의를 들으며 얼른 내일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하루빨리 듣고 배운 대로 살아가고 싶다며 오늘 배운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겠다고 했다. 조진혁(39)씨는 문제가 있으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며 꼭 해결하고 넘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배움터경당 교사인 권민지(36)씨는 최 대표의 삶이 녹아든 강의라 더욱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가 주신 삶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내일이 기다려진다며, 배운대로 살아내겠다고 소감을 전하는 양의진 학생. ⓒ 새들생명울배움터

   

최봉실 대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권민지 씨. 뒤로 보이는 '생의 명' 현수막이 지난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를 곱씹게 한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生의 命 - 農농·革혁·美미·言언'이 준비한 시간을 모두 마쳤다. 생의 이유를 묻고, 우리 생의 숨이 되는 것을 물었던 지난 시간, 2019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는 무수한 언(言)을 남겼다.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물을 것이다. 생의 명은 무엇인가.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간 가슴에 남은 언(言)이 우리를 인도해주리라 믿는다.
 

2019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모든 시간을 마치고 다같이 마주보고 인사를 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단체사진을 찍을 때는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김-치! ⓒ 최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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