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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강탈한 조연 '전두혁', 반면교사 될 수 있을까

[김유경의 영화만평] 라스트 씬의 잔상이 강렬한 <남산의 부장들>

20.02.05 08:01최종업데이트20.02.0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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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컷 ⓒ 쇼박스

 
<남산의 부장들>은 '10.26사태'를 빚은 이면사가 줄거리다. 18년 독재정권의 막판에서 문고리 권력을 다지는 충성 경쟁을 조명한다. 캐릭터별 도드라진 특성이 완성도의 관건이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마무리 반전이 강렬하다. 관람 내내 시선 박은 김규평(이병헌 분)의 심리 무늬들을 제치는 잔상이다. 여유작작하게 금고털이 후 박통의 자리를 응시하는 전두혁(서현우 분)의 욕망 서린 눈빛이 그것이다.
 
평온히 감상하다가 마지막에 발부리 채인 거다. 그 탓에 <남산의 부장들>이 공들인 캐릭터들의 존재감은 내게서 사라진다. 대신 전두혁이 일깨운 두 대조에 사로잡힌다. 하나는 거사에 노출된 김규평과 전두혁의 태도 차이다. 김규평은 코너에 몰린 '혁명가'의 양심적 망설임에 휘둘린다. 반면 권력의 근거리에서 판세를 정독한 전두혁은 냉철하게 먹잇감을 낚아챈다. 세속적 승자는 가차없이 잇속을 챙긴 전두혁이다.
 
다른 하나는 관람 중에 연상되는 두 독재자의 용인술 차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박통의 대사,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는 추풍낙엽 대상을 향한 미끼다. 앞서 그걸 덥석 문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분)은 시신조차 행불이고, 김규평은 형장에서 죽는다. 그 대사를 반복해 들려주는 영화가 만든 박통의 레임덕 이미지는 참모들의 인정욕구를 악용하는 물욕의 화신이다.
 
그 화신이 떨쳐 희생양이 된 부장들이 박통을 미 의회에서 고발하거나 궁정동에서 저격한 역사적 사실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위치한다. 박통의 무소불위 행태가 일으킨 두 부장의 회의, "왜 목숨 걸고 혁명했는가"를 키우는 개연성 있는 영상들이 그 사이를 채운다. 반면 내란죄에서 사면된 전두환의 참모들은 지금도 그의 비호 세력으로 남아 있다.
 
뭇 탐사기획 보도들은 전두환 패거리들이 카르텔을 형성한 듯 모임을 꾸리며 떵떵거리고 있음을 전한다. 오지랖 넓은 연상이긴 하지만, 영화가 넌지시 가리키는 전두혁의 야심이 지금 여기에서 반면교사는커녕 롤 모델이 될까 걱정한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을 배반하는 사법부 판결 풍토에 심심찮게 놀라곤 하니 그렇다. 또한 멈칫했던 정파적 색깔론이 다시 활개치고, 그것이 여론에 먹히는 것도 여전하니까.
 
영화의 남산이 지금 여기에선 어디일까. 현 정권의 국가정보원은 전신인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처럼 대세가 아니다. 그러니까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에 깃든 눈먼 충성이나 "각하가 국가"라는 망언을 일삼아 올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시로 직권남용으로 기소되는 현 청와대가 박통이 휘두른 무소불위를 누린다고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여론의 향방은 초미의 관심사다.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분)은 여론을 압도하려 서울 도심에 탱크를 등장시킨다. 야당과 민심에 귀 기울이려는 김규평과 당연히 적대관계다. 박통은 곽상천을 지지한다. 여론 주체인 시민의 눈과 귀를 가짜뉴스와 무력으로 통제하겠다는 압제정치다. 전염성 질병 관련 정보를 정파적으로 왜곡하는 지금 여기의 여론 몰이 행태가 떠오른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며 장사하는 신종 미디어바이러스까지 창궐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정파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승적 차원에서 너나없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있다. 특정 전염성 질병으로 인해 전 세계가 긴장하는 지금이 그렇다. <남산의 부장들>은 인간의 편향된 욕망과 한계를 드러낸 반면교사 캐릭터들을 통해 지금 여기의 여론전을 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35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남산 전두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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