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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국 막자'는 주장이 위험한 이유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신종 코로나 대처, 국제협력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때

등록 2020.02.02 15:08수정 2020.02.0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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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방법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처하자는 주장이 있다.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향후 벌어질 유사 상황에 대한 대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사스, 신종 인플루엔자, 에볼라, 지카 바이러스, 메르스 등이 우리 귓전에 아직 생생히 남아 있는 데서 느낄 수 있듯이, 전 세계를 휩쓰는 감염병들이 몇 년을 멀다 하고 인류의 삶을 빈번히 위협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2009년 1차례, 2014년 2차례, 2016년·2019년 각각 1차례에 이어 이번  여섯 번째다.

11년 사이에 비상사태가 6번이나 선포된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제는 병원균과의 전쟁이 몇 년마다 벌어지는 일상사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의 대처 역시 장기적 관점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아버리고 이번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동종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심모원려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국제협력이 문제 해결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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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홈페이지에 올라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발생에 관한 국제보건규정(2005) 긴급위원회 제2차 회의에 관한 성명서' ⓒ WHO

 
중국에서 들어오는 교통수단을 차단하는 것과 중국인의 입국만을 차단하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다. 중국인만 골라내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국제협력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인종차별 논란까지 야기할 수 있는 중대 문제다. 동시에 이것은 유사한 감염병들에 대한 인류의 대응 능력을 떨어트릴 뿐이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국제적 긴급사태를 발표하기 전에, WHO는 스위스 제네바의 본부에서 자문기구인 긴급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의 결과를 요약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발생에 관한 국제보건규정(2005) 긴급위원회 제2차 회의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n the second meeting of the 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s(2005) Emergency Committee regarding the outbreak of novel coronavirus(2019-nCoV)'가 WHO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성명서에서 WHO는 세계 인류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것이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이며, 유사한 바이러스들의 경우에 정기적인 정보 공유 및 연구를 가능케 하기 위해 실질적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이 나타났으므로, 지구 공동체(global community)는 국제보건규정(2005) 제44조에 따라 이 새로운 바이러스 근원의 식별,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이될 가능성, 사례의 잠재적 활용에 관한 준비(preparedness for potential importation of cases), 필요한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상호 지원하는 연대와 협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신종 코로나 같은 국제적 감염병이 발생할수록 나라와 나라의 장벽을 높여야 한다고 하지 않고 나라와 나라의 연대 및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인류 보건에 관해 가장 권위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WHO 역시 이 문제의 해법을 국제협력 증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협력이 긴요하다는 점은, 중국과 대립하는 차이잉원 타이완(대만) 총통의 태도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의 국시인 '하나의 중국'에 맞서 타이완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차이잉원은 '이번 기회에 중국과 단절하자'는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중국과의 협력을 공개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그는 "앞으로도 모든 채널을 활용해 중국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타이완인들이 중국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니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소통을 강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타이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어쩔 수 없음'은 타이완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무역을 비롯한 제반 사항에서 중국과 엮어 있는 국제사회로서는, 질병의 확산을 막고 자국민을 보호하자면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모든 나라가 다 '어쩔 수 없이' 중국과 협력해야만 한다.

장벽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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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국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5번째, 7번째 확진 환자가 입원 중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0.1.31 ⓒ 연합뉴스

 
또 어느 한 나라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협력이 더욱더 긴요하다. 훗날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든 국제협력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전쟁은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지만, 감염병 사태는 인류와 병원균의 대결이다. 그래서 인류와 외계인의 대결에서처럼, 감염병 사태에서도 인류 내부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런 사태에서만큼은 인류 전체가 같은 편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국제협력 정신은 감염병 자체를 억제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 점은 이미 실증적으로 증명된 사안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각국 정부들이 국제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A가 유행했던 2009년에 한국정치정보학회의 <정치정보연구> 제12권 제2호에 실린 이상환 한국외대 교수의 논문 '갈등과 협력의 국제보건 관계: 최근 전염병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초기 대응을 중심으로'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제사회는 사스 사례보다는 조류독감(조류 인플루엔자) 사례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초기 대응을 하였으며, 이어 조류독감(조류인플루엔자) 사례보다는 신종플루 사례에 있어서 보다 능동적인 초기 대응을 한 바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국제사회 내 보건협력이 보다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각국이 병원균 앞에서 그 같은 상호 단결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이 논문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세계화의 심화로 국내 방역만으로 전염병을 퇴치할 수 없다는 점과 현대 의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변종 바이러스가 있다는 점이 현실적 한계로 부각되면서, 국가 간 협력이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이러한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협력의 틀을 다져가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각국이 이런 사안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꼭 고상한 이념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애 때문에도 그렇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각국이 협력하지 않고는 병원균에 맞서 싸울 길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입각한 것이다.

유럽 휩쓴 흑사병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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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교류촉진위원회 관계자들이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및 대책에 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인의 입국금지를 촉구하는 시위자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신속한 대처와 구호 조치를 촉구했다. ⓒ 연합뉴스

 
위 논문의 표현처럼 세계화 이후로 병원균에 대한 인류의 공동 대응이 한층 강화되고 있지만, 이런 노력은 세계화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멸망 2년 전의 청나라도 1910년에 국제협력에 힘입어 대형 감염병에 대처한 사례가 있다.

조선왕조가 멸망한 지 2개월 뒤인 1910년 10월, 청나라와 러시아의 국경 지역에서 폐 페스트가 발생했다. 페스트균이 인간 폐에 침입해서 일으키는 이 질병이 만주는 물론 북중국까지 확산돼, 몇 달 사이에 5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때 청나라는 국제사회에 손을 내미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한국재난정보학회 논문집> 제13권 제2호에 실린 리용쯔(李勇植) 연변대 교수의 논문 '북동아시아 페스트 발생 중 두만강 유역 전염병 예방과 국제협력'은 당시의 국제협력을 아래와 같은 문장들로 설명한다.
 
"청 정부는 적극적인 방역 조치를 취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들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특히 페스트가 끝나지 않은 시기에 국제페스트회의를 소집하였다. 바로 1911년 4월 3일 봉천(현재 선양)에서 11개 나라에서 온 수십여 명의 의사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하였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국제페스트회의였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국제 과학회의였다."

"연변 지방정부는 방역기간 중 연변 지구의 서의(西醫, 양의)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외국인 의사를 초빙하였으며 연변 지역의 방역을 협조하게 하였다. 예를 들면, 연길 방역국에서 중의(中醫)를 초빙한 동시에 아주 높은 노임으로 일본인 서의를 초빙한 점이다."
 
러시아와도 유사한 국제협력이 있었다. 감염자 수용소를 만들고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분야에서 러시아도 청나라에 협조했다. 당시 청나라와 러시아·일본 사이에는 상호 긴장관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페스트와의 전쟁에서만큼은 '인류 연합전선'을 결성했던 것이다.

보건 분야에서 국제협력이 얼마나 절실한가는 14세기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서도 증명된다. 유럽 인구의 30~60%인 2500~5000만 명을 희생시키고 유럽의 정치·경제 체제를 바꿔버린 흑사병은 중국에서 비단길을 거쳐 유럽에 전파됐다.

이 길은 사막길이라 말이 달릴 수 없다. 낙타가 걷는 속도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런 속도로 중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동안에 병원균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 시스템이 작동됐다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이 그 같은 타격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응을 위해 연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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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발 입국자들이 2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건강상태 질문서를 작성한 뒤 이동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이날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고자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의 '건강상태 질문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 연합뉴스

 
오늘날은 물론 과거 사례들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대규모 감염병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때는 필요에 따라 사람과 교통수단을 통제할 수는 있어도 국제협력만큼은 절대로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 인류가 상대하는 적은 일국의 힘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협력을 해하는 조치를 내놓는 순간, 그것은 병원균 앞에서 적전분열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승전을 포기하는 조치인 것이다.

중국에서 오는 비행기나 선박을 막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중국인만 골라서 막는 일은 국제협력을 위협하는 일이다. 이것은 민족감정을 유발해 병원균에 대한 인류의 연합전선을 해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병원균과의 싸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앞으로 발생할 유사 사태에 대한 우리의 대응 능력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중국인 입국을 금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위험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폐렴 #감염병 #전염병 #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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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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