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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때 노무현처럼, 지금은 중국에 손 내밀 때

[15년 중국 근무 교수의 주장] 입국 금지라니... 어려울 때 배척하면 우리도 배척당한다

등록 2020.01.29 18:30수정 2020.01.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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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15년 동안 살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중국 우한(武汉)에 소재한 중남민족대학(中南民族大学)에서 3년간 근무했고, 지금은 난징(南京)에 소재한 난징이공대학(南京理工大学)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방학이라 잠시 귀국했는데, 출국을 앞두고 갑자기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터졌다.

한국의 지인들은 "출국하지 마라"고 권유하고, 중국인 지인들도 당분간 한국에서 "돌아오지 마라"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국민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으며, 갑자기 대두된 반중(反中)·혐중(嫌中) 정서를 지켜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 중국 체류 기간 한-중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 두 사건을 언급하라면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 도입으로 인한 한한령(한류금지령)과 이번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꼽을 수 있다. 사드 도입은 치명적이었다. 이로 인해 롯데는 물론 최근까지 한한령으로 인하여 우리 문화콘텐츠 업계와 관광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나도 당시 한 외교포럼에서 사드 문제로 한국을 비난하던 중국 정부 관료와 학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근무하던 중남민족대학을 떠나야 했다.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 같이 근무하던 법학원의 교수들 상당수가 나와서 작별인사를 하며 "사드 사태가 잠잠해지면 꼭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서 "손 교수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했다.

지난 12월 22일은 중남민족대학 법학원 60주년 기념식이었다. 법학원 원장인 친한 옛 동료 교수가 꼭 참석해 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바쁜 일정으로 인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만약 그때 참석을 했다면 나도 '재수없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 감염병은 어쩌다 정말 재수가 없어 감염될 수 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도 있다. 감염병에 걸린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들은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 문제의 핵심은 빠른 치료와 추가적인 감염방지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다.

감염병에 걸린 사람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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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는 가운데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공항 입국장에서 중국발 승객들이 검역대를 통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대하는 한국 정치권과 한국의 일부 시민들의 태도에 심히 유감이다. 중국과 중국인은 우리의 이웃 국가이자 이웃 나라의 국민이다. 지난 수천 년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다. 그동안 촛불혁명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 세계에 보여준 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포용이 아닌 배척의 정치와 시민의식으로 중국과 중국인을 바라보고 있다. 처지를 바꿔 우리나라에 감염병이 창궐해서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중국으로 잠시 피난을 갔는데, 중국 정부가 입국을 금지하고 이미 입국한 우리 국민을 송환하는 결정을 하면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심정일까?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이 올라왔으며, 닷새 만에 이미 50만 이상이 동의했다. 중국인의 입국 금지, 나아가 이미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을 송환하자는 주장이 그동안 어렵게 쌓아 올린 한중 관계의 근본을 흔들까봐 염려된다.

문득 과거 중남민족대학에 근무하던 중 만났던 많은 조선족 학생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한국인 교수인 나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이 한국 사람은 동포인 조선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나쁜 사람들이니 항상 조심하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최근 "중국 동포 있는 어린이집 결석률 80%... 영등포·구로 슬픈 풍경", "성형외과, 호텔, 택시도 '중국 손님 안 받아요", "배달의 민족 노조 '중국인 밀집지역' 배달금지 해달라", "'노 차이나' 포스터가 공유되며 노골적인 반중 혐중 정서를 표출" 등의 기사를 접하면서 왜 한국에서 생활하거나 또는 생활한 적 있는 중국인이 우리를 싫어하는지 약간은 이해가 갔다.

위기는 곧 기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중국 우한 출신 또는 후베이성 출신들, 심지어 모든 중국인이 중국 국내는 물론 한국과 외국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현재 전 세계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직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인의 국내 입국을 막아서는 안되며, 이미 입국한 중국인을 송환해서도 안된다. 현재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중국 중부 최대 도시인 우한시를 폐쇄할 정도로 이번 사태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거대한 대륙과 14억에 가까운 인민을 통치하는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들이 움직이면 시간은 조금 걸릴지라도 곧 사태가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이번에 우리가 먼저 중국 정부와 중국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후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해 중국인으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한중 관계는 사드 도입 이전까지 승승장구 발전했다. 그 결과 우리는 1인당 GDP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 정부가 중국인 입국 금지 결정 혹은 송환 결정을 내리면 아마 중국과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특히 중국인은 더 이상 우리를 이웃 국가의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제품 불매운동과 한한령으로 인하여 우리 경제는 지난 사드 도입 때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중국에서 생활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우리 교민들은 중국 내 보금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아무리 현재를 살고 가까운 미래조차 예상하지 못한다고 한들, 왜 작금의 반중·혐중 정서와 같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끝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와서 언젠가는 중국 등 타국에서 우리도 차별 당하고 배척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할까?

마스크와 의료진 보내며 중국 적극 도와야 

그래서 다음과 같이 건의하고 싶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와 적극 공조해야 한다. 마스크는 물론 필요한 의약품을 제공해 주고 필요하면 우리 의료진도 파견하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소방 국면에 진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선제조치'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최선이다.

중국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한다. 혹 한국에서 감염이 확인된 중국인이라도 정성껏 치료해서 중국으로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중국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혹시 모를 감염병으로 병원에 가더라도 중국 정부와 시민이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 타인의 아픔을 모른 척하면 끝내는 내가 아플 때 주위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인지상정이다.

언론은 유언비어 등 가짜뉴스가 아닌지 심사숙고해서 보도를 해야 하며, 방송통신위원회는 사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루머에 적극 대응 및 감독해야 한다. 항상 이와 같은 감염병이나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면 가짜뉴스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국민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고 정상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마비시킨다. 무엇보다 성숙한 언론 의식과 시민의식이 필요할 때다. 

특정 지역을 폄훼하거나 차별할 수 있는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에 부합하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문득 다음과 같은 중국 말이 생각난다. "중국에서는 먼저 친구가 되고 그 다음 사업을 논의한다"(先做朋友,后做生意). 즉, 중국에서는 상호 간의 '신뢰'가 중요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를 진짜 친구'로 생각한다. 중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이 우리가 중국과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또한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다(君子报仇, 十年不晚)"라는 말이 있다. 작금의 반중 및 혐중 정서는 끝내 우리와 중국 및 중국인과의 관계를 회복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중국인들도 피해자다. 역지사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중국 정부와 공조해서 사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우리도 더 성숙하고 포용력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어쩌면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번 사태가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손한기 기자는 중국 난징이공대학 교수입니다.
#중국 #신종 코로라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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