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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화도 영웅화도 없었다, 얼굴에 주목한 '남산의 부장들'

[리뷰] 10.26 발생 40일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나?

20.01.27 16:44최종업데이트20.01.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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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 쇼박스

 
1970년대를 살았던 나의 부모 세대는 10.26 사태가 일어났던 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 궁정동 인근 지역에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다가 그 다음날 거동수상자로 의심을 받았다는 지인의 이야기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한 세기를 통틀어 보아도 초유의 사건이었다. 중앙정보부장이 무소불위 권력의 대통령을 저격했다.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은 18년 독재와 유신 정권이라는 구시대의 종언이자, 한편으로는 또 다른 구시대의 개막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 놓은 소용돌이였다.

이 역사적 대전환의 주체는 결국 불완전하고도, 충동적인 개인이기도 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인물의 얼굴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 날의 '얼굴'에 집중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 쇼박스


10.26 사태가 일어나기까지의 40일을 다룬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하여 거시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번민을 조금씩 쌓아 올리는 서사를 선택했다. 9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우민호 감독의 대표작 <내부자들>과 달리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담백하게 극을 진행한다.

배우들의 호연은 이 극을 이끌어가는 유일한 동력이다. 박용각 역을 맡은 곽도원, 데보라 심 역을 맡은 김소진은 안정적인 연기로 극에 힘을 불어 넣는다. 경호실장 곽상천(차지철)을 연기한 이희준은 연기 변신과 외모 변신에 두루 성공했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이병헌(김규평 부장 역)과 이성민(박통 역)이 유독 빛난다. 배우의 개인기를 통해 긴장감을 확보한 좋은 예다.

앞서 10.26 사태를 다뤘던 <그때 그 사람들>(2005)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블랙 코미디였다면, 이 영화는 웃음기가 전혀 없는 정치 누아르다. 전적으로 규평의 입장에서 극이 진행된다. 중앙정보부의 수장인 그는, 경호실장 곽상천과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2인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인 동시에, 최고 권력자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증오, 즉 양가적 감정이다.

그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옛 친구를 배신해야 하는 비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역사 속의 김재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김규평은 꽤 입체적인 인물로 비추어진다.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박통' 역시 마찬가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을수록, 정권의 영속적 연장을 꿈꿀수록 히스테리는 심해진다.

역사적이면서도 '사적'인 요소들이 얽혀 감정을 점진적으로 쌓아 올리더니, 마침내 폭발시킨다. 이러한 지점에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과 같은 누아르 고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모두의 예상대로, 이 영화는 후반부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조영욱 감독의 음악, 그리고 규평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롱테이크 카메라는 관객을 그날의 궁정동으로 동행시키는 듯 생생하다.

판단은 결국 역사의 몫?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컷 ⓒ 쇼박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엄연히 김규평이지만, 우민호 감독은 최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애썼다. 김충식 가천대 교수가 과거 동아일보 기자시절 쓴 연재를 원작으로 한만큼, 역사에 대한 각색도 조금씩 가미되었다. 예를 들어, 김 부장이 박 대통령과 함께 5.16 쿠데타에 가담했었다는 것은 영화적 허구다. 박정희에서 박통으로, 김재규에서 김규평으로, 차지철에서 곽상천으로, 김형욱에서 곽병규로. 역사적 인물들의 본명을 쓰지 않은 것도, 최대한 자유로운 영화적 표현을 허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애써 악마화시키지 않았고, 반대로 영웅시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상대적 악역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박통'마저도 그렇다. 영화는 김 부장이 심정적으로 민주화를 지지했는지, 그의 '거사'가 우발적이었는지, 계획적이었는지, 그가 왜 중앙정보부가 아니라 육군본부로 운전대를 돌렸는지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감독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극이 막을 내린 직후까지 계속 된다. (쿠데타의 주범인) 전두환의 10.26 사태 조사 결과 발표 영상과 김재규의 최후 진술 음성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마주하는 관객들의 태도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을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 10.26 우민호 이병헌 이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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