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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후쿠시마 괴롭힌다" 아베가 계속 선동하는 이유

[최우현의 일본 어제오늘] '후쿠시마 헤이트' 프레임

등록 2020.01.23 07:17수정 2020.01.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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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제작한 2020 도쿄올림픽 패러디 포스터. 올림픽 성화가 아닌 방사능 성화를 봉송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 반크

 
명절 밥상은 대체로 풍성하다.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공수된 특산품으로 만들어진 음식, 선물로 받은 고급 주전부리들이 상에 오른다. 가족, 친지 간 모처럼의 해후도 이러한 먹거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주 거론되는 불편한 이야깃거리도 있다. 바로 음식의 원산지에 대한 이야기, 대체로 해외에서 국내로 수입되는 식자재들에 대한 불신을 표하는 목소리들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때문에..."

그중에서도 일본산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은 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이다. 물론, 방사능 오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후쿠시마와 그 주변에서 자라난 농수산물에 대한 일단의 수입 금지는 이루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원재료 수입을 막는다고 해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가공해 만든 식품까지 추적하기는 어렵거니와, 원전 인근 해역이 오염되었을 것이란 의심도 쉽게 거둘 수 없다. 게다가 방사능은 무색, 무취, 무미하다. 차라리 시커먼 때라도 묻어 있으면 걸러내기라도 할 텐데 말이다.

특히 '후쿠시마'는 그 이름만으로도 한국인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지금 한국인은 후쿠시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방사능의 위협을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그것은 여타 세계 사람들의 인식보다 강렬하다.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어째서 후쿠시마는 한국에 피해를 입히려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후쿠시마 인근 바다에서 조업활동을 하는 어민들조차 타인의 건강권에 무책임한 사람들로 비친다. 그만큼 후쿠시마는 많은 악명을 쌓아왔다.

한국이 후쿠시마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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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뉴스/EPA


그래서일까? 일본 정부는 한국과 후쿠시마의 사이를 계속 이간질한다. 한국이 딴지를 걸어서 후쿠시마의 부흥이 힘들어진다는 류의 불평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의 후쿠시마에 대한 이미지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프레임을 자기 스스로 만드는 꼴이다. 일본의 이같은 술수가 표면에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를 들 수 있다.

요미우리는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것도 적당히 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전하면서,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문제에 대해 "통렬한(痛烈)" 말을 퍼부었다고 추켜세웠다.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 언급된 '후쿠시마 괴롭히기'란, 근간에 한국 정부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를 뜻한다.

기사를 본 일본 국민들은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것은 한국'이라는 감정을 갖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한국이 피해자의 눈물을 머금은 불쌍한 후쿠시마를 괴롭힌다', '한국이 후쿠시마 헤이트를 하고 있다'는 등의 논란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이 후쿠시마를 괴롭힌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수월할 수 있다.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주체를 한국이라고 특정함으로써 후쿠시마 주민의 분노를 일정 부분 한국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후쿠시마 원전 관련 문제가 "한국-후쿠시마" 둘 사이의 문제인 양 도망치려는 의도도 숨겨진 듯하다. "후쿠시마를 괴롭히지 말라"면서 후쿠시마와 일본이 마치 따로 존재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 대해 상당히 악의적인 '언론 플레이'가 한국에 가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앞으로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비판하는 대상이 후쿠시마라는 일개 도시가 아닌, 일본 정부임을 정확히 특정하고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후쿠시마 주민들과 한국이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

따지고 보면 한국이 후쿠시마라는 도시를 괴롭힐 이유는 전혀 없다. 괴롭히기는커녕,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처리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사한 입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당수 후쿠시마 주민들은 원전 오염수가 해양으로 방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영역이 망가진다는 이유에서다. 그중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과 농어민들은 원전 오염수의 방출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로 결성된 '후쿠시마 원전 소송단'은 지난 2013~2016년에 걸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유출 등과 관련해 도쿄전력 사장 등 간부 32명과 법인을 고발하고 검찰 심사를 신청하는 등 법적 투쟁을 활발히 벌여왔다. 특히, 최초 고발이 있었던 2013년 당시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300톤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가 지금 못지않게 이슈화된 상태였다. (관련 링크)

참고로 이들의 고발 근거는 "사람의 건강에 관한 공해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즉 건강권이다. 오염수를 저장한 탱크가 내 집 앞에 쌓여가는 모습보다도, 오염수가 방출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권이 방사능 위협에 직면하는 것을 더 큰 문제로 본 것이다.

나아가 이들 중 일부는 도쿄 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축소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후쿠시마 원전 소송단 단장인 무토 루이코씨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후쿠시마 원전 피해를 감추고 이용하는 선전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후쿠시마현 내에 약 3천대의 방사선 감시장치 (모니터링 포스트)를 대폭 철거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방사선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사고는 끝났다', '사고가 일어나도 이렇게 빨리 부활할 수 있다' 그런 이미지를 유포시키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중략) 2020년 도쿄 올림픽도, 그를 위해 이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 (이것은) '일본은 안전해요'라는 선전입니다." - 아사히 신문 인터뷰 ('16.9.7.)

또 다른 저항자 그룹인 후쿠시마 농어민들 역시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되면 인근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생산물의 가격이나 유통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지금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우려가 남아 있는데, 하물며 100만 톤 이상의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된다면 그 안정성은 극도로 하락할 것이다.

지난해 9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해 희석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일본 하라다 요시아키 환경 대신의 발언에 크게 반발한 것도 후쿠시마 어민들이었다. 이들은 최근 '오염수 해양 방출'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일본 정부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한편, 후쿠시마 농민들은 해양 방출뿐만 아니라 오염수를 증발시켜 대기로 방출하는 방안도 반대하고 있다. 대기 방출이 농작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후쿠시마 농어민들이 원전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건강보다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인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는 궁극적인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이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려는 일본 정부를 견제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이 후쿠시마라는 도시 자체를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괴롭히는 것은 일본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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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 7주년 맞아 희생자 추모하는 피해지역 주민들. ⓒ 연합뉴스/EPA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비극들은 일본 정부가 얼마나 가해자적 위치에 있었는지를 분명히 해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연 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아닌, '재해 이후' 주민들이 겪어온 고통과 절망이다.

실제로 재해로 인한 사망이 아닌, 후쿠시마 원전이라는 희생의 시스템에 절망해 목숨을 버린 후쿠시마 주민들이 적지 않다. 가까스로 재해에서 살아남고도 이들은 왜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을까? 그렇게 후쿠시마의 괴로움이 시작될 때 일본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일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은 지 3개월 뒤인 2011년 6월 10일, 후쿠시마현 소마시에서 낙농업에 종사하던 5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남성은 자신이 관리하던 퇴비 오두막 벽에 하얀 분필로 이 같은 문장을 남겼다.
 
원전만 없었다면..
일할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미안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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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현 소마시에서 자살한 농민의 유서. 퇴비창고 벽면에 "원전만 없었다면" 등 고인이 남긴 유언이 적혀있다. ⓒ 아사히신문 갈무리


또 다른 비극도 있었다. 미나미 소마시의 93세 여성은 피난을 가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고 싶지 않아 "무덤으로 피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스카가와시에서 야채 농사를 짓던 남성은 "후쿠시마 야채는 이제 끝장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남성의 아내는 "그 사람은 원전이 살해했다"며 울분을 삼켰다. 원전사고로 인한 우울증으로 분신 자살한 58세 여성도 있었다.

후쿠시마 사람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도 꾸준하다. 이를테면 후쿠시마 출신 학생들에게 "방사선 옮는다" 따위의 놀림이 가해지는 경우, 또 후쿠시마 지역 번호판을 단 자동차가 주유소, 휴게소, 호텔 등 이용을 거절 당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후쿠시마현은 일본의 쓰레기통"이라거나 "후쿠시마 토인" 등의 혐오표현이 나타났다. 이 같은 사례들을 분석한 다카하시 데쓰야 일본 도쿄대 교수는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를 통해 일본이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또 차별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말했지만, 이러한 비극들은 원전 사고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비극의 당사자들은 일본 정부의 대응에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피해자들의 비극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하다.

2019년 9월, 일본의 사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도쿄전력을 이끌었던 경영진 3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사고조사위원회(NAIIC)'가 이 사고를 '예측 가능하며 방지할 수 있었던 전적인 인재(人災)'라고 선언했음에도 말이다. (2012년 7월 5일 NAIIC 공식 보고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의견차는 현격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대응으로 유추해볼 때, '한국의 후쿠시마 헤이트'를 프레임의 하나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작년,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관련 WTO 제소에서 한국이 역전승했을 때도 일본 정부는 얼마나 많은 소란을 피웠던가?

이제 한국 정부도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한국은 후쿠시마를 괴롭힌 적도 없고 괴롭힐 이유도 없다. 일본 정부가 또다시 '한국은 후쿠시마를 그만 괴롭히라' 따위의 선동을 한다면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것은 일본 정부'라고 따끔히 받아쳐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후쿠시마 원전 #후쿠시마 피해자 #후쿠시마 방사능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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