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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속에서 흔들린 충성, 영화가 잘 담아냈을까

[서평] 영화의 원작 '남산의 부장들'을 읽고

등록 2020.01.20 15:48수정 2020.01.2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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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 이병헌 주연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1월 22일 개봉한다고 한다. 영화는 1979년을 배경으로, 전 중앙정보부장의 폭로 사태와 현직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병헌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을, 곽도원이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을, 이성민이 박통을 맡았다고 한다.

<남산의 부장들>의 감독은 우민호 감독으로, <내부자들>에 이어서 또 이병헌과 합을 맞춘다. 전작 내부자들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은 아니었다. 이번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 있었던 일을 주제로 하는 만큼 얼마나 역사적인 사실을 흥미롭게 다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남산의 부장들> 영화는 사실 원작이 있다. 원작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일보 김충식 기자는 1990년부터 중앙정보부를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 2년 2개월간 자신의 취재기록을 써내려갔다. 시대의 지배자였음에도 아무도 대놓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중앙정보부. 그 권력과 폭력의 흔적을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원작 역시 매우 흥미진진하고 스릴이 넘친다.
 

남산의부장들 ⓒ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의 군사독재 시기를 정보부의 활동을 중심으로 다루는 책이다. 원작은 오래된 책이지만 2012년에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다. 5.16 쿠데타부터 12. 12사태까지 박정희 정권의 시작과 끝을 다룬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내내 있었던 수많은 공작에 대해 치밀하게 접근한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그들이 가지는 권력기관으로서의 속성과 정보 활용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군부 세력은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벌였다. 권력을 두고 정당 내부와 외부에서 갈등이 상존했다. 군부 내부에도 갈등 요소가 있었다. 이에 맞서는 야당은 김대중, 김영삼 등 젊고 쟁쟁한 정치인들을 필두로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중앙정보부를 활용한 공작과 정치적 음모를 통해 대응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정보부 인물들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의 당수 선거, 정치 활동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언론이나 정치인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공작자금과 회유, 협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책의 시작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와 전두환의 지지선언이다. 전두환은 당시 서울대 ROTC 교관으로, 육사생도를 이끌고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한다. 전두환은 이후 박정희의 신임을 받고 정권 내내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한다.

책의 끝은 12.12 사태 이후 전두환의 집권이다. 책의 중간 부분은 유신, 야당의 약진, 김형욱 부장의 독주와 몰락 등 다양한 음모와 게이트로 점철되어 있으나 시작과 끝은 모두 전두환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책의 구조를 이렇게 잡은 것은, 전두환의 집권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며 군사독재의 뼈대와 시스템 위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발생한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기간에 걸친 군사독재 기간 내내 정보 부서를 중심으로 하는 공작 정치와 폭력이 활개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전두환이란 인물의 집권은 어쩌다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책의 앞과 뒤에서 묘사되는 전두환을 제외하고, 중간 부분에서 이 책의 주인공격 인물을 하나 꼽자면 역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일 것이다. 그는 정보부의 부장으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고 세도를 부리다가 토사구팽당한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 적대하는 행동을 하다가 외국에서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책은 정보부는 다른 공공기관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중앙정보부는 일반 부처와 달리, 국정 운영은 물론이고 정당의 행사에 대해서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야당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여도, 국민들의 시위가 발생해도 다 정보부 소관이었다.

이 때문에 정보부의 권력은 엄청나게 거대해졌다. 권력의 속성상, 권력을 가진 2인자는 1인자의 2인자를 향한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 끝은 비극적이었다. 부장은 권력을 틀어쥐고 쓰다가 1인자인 박정희의 의심을 사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가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김형욱은 전자의 길을 간 사람이다. 이를 본 김재규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당대 정치인들의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매우 흥미롭게 풀어낸다. 권력을 향한 사람들의 경쟁과 증오가 책에 절실하게 묻어나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보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이 쓰이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때문에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배경 묘사 중에 전제가 되는 정보가 빠져있는 것이 있다. 그 당시에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이었기 때문에 빠졌겠지만, 이 책을 지금 읽는 독자로서는 인물정보 부록을 살펴보면서 읽어야 이해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또한 몇몇 역사적 사건들은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는데, 12.12 사태 당일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다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생각보다 상세한 언급이 없다. 즉, 이 책을 읽으려면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이외에 군부 인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있으면 좋을 듯하다. 군사독재 주역들의 이력, 지위 등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알고 있어야 글을 따라갈 수 있다. 물론 이는 주요 여당인사나 야당인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정보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보는 권력의 근원이 되고, 권력자는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행사하도록 두고 통치 수단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가 가진 권력이 1인자의 비위를 거스를 정도로 강해지면 토사구팽한다. 이 책이 그려내는 시대는 그런 일이 횡행하는 공작과 의심의 시기였다. 원작이 그려낸 '흔들린 충성'을 영화가 '그날의 총성'으로 잘 연결시켰을지 기대된다.

남산의 부장들 - 개정 증보판

김충식 지음,
폴리티쿠스, 2012


#중앙정보부 #권력 #정보 #비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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