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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삼성 이재용 재판에 치료적 사법? 헛웃음 나온다

[기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김종보 변호사... 재판부 판단이 잘못된 5가지 이유

등록 2020.01.18 12:13수정 2020.01.1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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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이 갈수록 가관이다. 재판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2019년 10월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에 따른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하더니, 17일 재판에서는 "기업범죄의 재판에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라며 "미국 연방법원은 2002∼2016년 530개 기업에 대해 '치료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을 명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문심리위원을 붙이겠다고 한다. 아예 특정 인물(강일원 전 헌법재판관)도 정해 놨다. 헛웃음이 나온다.

[관련기사]
[파기환송심 4차 공판] "이재용 봐주기 명분 쌓기 아니냐" 특검, 재판부 정면 비판

치료적 사법을 하겠다는 재판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의 근본적 성격을 오해하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큰 죄명이 무엇인가? 바로 '뇌물'이다. 누구에게 준 뇌물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서원씨에게 준 뇌물이다.

왜 주었는가? 자신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부당하기 짝이 없는 합병비율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시키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움직이기 위해서다. 이재용 부회장은 온 대한민국 사람들을 분노케 한 국정농단의 주역 중 한 명이다. 2016년 촛불집회는 불과 4년 전 일이다. 뇌물을 달라는 강요를 받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대법원에서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벌써 이 사실을 잊었는가?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판단에 기속되어야 하는데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잊어버렸거나 잊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국정농단에 가담한 이재용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했으니 봐주겠다는 건 마치 친일부역자가 "앞으로 대한민국 국법을 준수하고 성실히 살겠다"고 하니 봐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라를 망쳐놓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이익 좀 보려고 나라를 망쳐놔도 반성하기만 하면 감옥에 안가는구나"는 신호밖에 주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권력자들은 "나라 좀 망쳐도 걸리지 않거나 반성만 하면 대박을 터트린다"고 생각하고 자기 뱃속을 채우려고 할 거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가 도입된 삼성'을 위해서라면 '뇌물 줘도 감옥에 안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도 상관없는 것인가?


둘째,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 제8장은 '사람'에 대한 양형기준이 아니라 '기업(또는 회사, organization)'에 대한 양형기준이다.

참고로 형벌은 원래 '사람'한테 부과하는 것이고 '회사'에게는 부과할 수 없는데, 회사의 대표자나 종업원이 회사 업무에 관해 노동법, 환경법,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하는 경우 회사도 처벌이 된다.

그런데 회사를 감옥에 가둘 수는 없기에 벌금형을 물리게 된다. 다시 미국 연방법원 양형기준 제8장을 보자. 제목부터가 "CHAPTER EIGHT : SENTENCING OF ORGANIZATIONS(기업의 처벌)"이다. 서설(Introductory Commentary)에서는 아예 "이 장의 가이드라인은 회사(organization)가 피고인으로 기소되었을 때 적용한다"고 써놨다. 게다가 회사의 대표자 또는 대리인(agents)은 자신의 범죄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앞에 제시된 가이드라인(제1장부터 제7장)에 따른다고 되어 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의 피고인은 '이재용'이란 사람이지 '삼성전자'란 회사가 아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피고인 이재용' 대신 '피고인 삼성전자'을 재판하려는 것 같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헷갈리고 있는 것인가?

셋째, 재판부는 제8장도 오해하고 있다. 다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을 보면, "범행 당시 준법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을 경우 회사(organization)의 과실 점수(culpability score)를 깎아준다"고 정하고 있다. (USSG §8C2.5.(f)(1): If the offense occurred even though the organization had in place at the time of the offense an effective compliance and ethics program, as provided in §8B2.1 (Effective Compliance and Ethics Program), subtract 3 points.) 하지만 "사후적으로 준법제도를 도입하면 과실 점수를 깎아준다"는 규정은 없다. 그저 "(회사에 대한 벌금형을) 집행유예 할 때에는 준법제도 도입을 조건으로 할 수 있다(USSG §8D1.4)"고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미국 연방법원은 2002∼2016년 530개 기업에 대해 '치료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을 명령했다"고 했는데, 그 530개 회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CEO개인에게 준법제도의 시행을 명령한 예가 단 1건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찾아보지 못했는데, 추측컨대 단 1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에 대한 양형기준은 제3장에 있는데, 여기에 CEO 개인에 대한 양형요소 중 '준법제도 도입'은 아예 적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기사를 검색해보면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이 적용된 사례로서 앰사우스 은행 사건(STONE AmSOUTH BANCORPORATION v. AmSouth Bancorporation, Nominal Defendant Below, Appellee.)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예시다.

무엇보다 앰사우스 사건은 민사재판(주주대표소송)이지 형사재판이 아니다. 판결문 어디에도 미국 연방 양형기준이 거론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적용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사후적으로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해서 앰사우스 은행(회사)의 책임을 덜어준 것이 아니라, 은행 임원들의 불법행위 당시 준법감시제도가 있었다는 이유로 은행(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델라웨어 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기업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재판부가 좋아하는 미국연방양형기준을 이재용 피고인 재판에 적용해보겠다. 미국 양형기준표(sentencing table)상 구금형은 43단계로 나뉘는데, 뇌물죄는 8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뇌물액이 많을수록 높아지는데 액수가 350만 달러에서 950만 달러 사이면 18단계를 추가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액은 86억 원, 미화 약 740만 달러이므로 8단계에 18단계를 추가하면 26단계가 된다. 26단계 중 초범에 대한 양형은 63~78개월 구금이다.

치료적 사법, 좋다. 범죄자의 갱생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정농단에 가담한 사람에게까지 치료적 사법을 적용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나는 청렴 선언을 하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준법감시인의 감시를 받겠다"면서 준법제도를 도입하고 셀프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구체적으로 실행계획을 제출하면, 최서원씨가 "나는 더 이상 박근혜 전대통령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고, 유력 정치인과 공모하여 뇌물도 받지 않을 것이며, 국정에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 계획을 재판부에 제출하면, 집행유예로 풀어줄 것인가?

준법감시제도는 '회사'의 제도이지 '이재용' 개인의 제도가 아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도 '회사'에 대한 것이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치료적 사법이라면서 준법감시제도가 논의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이재용 #삼성 #준법감시제도 #치료적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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