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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처럼 불행한 청춘이 생기는 건" 이 말을 면전에서 들었다

어르신과 2인 1조로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하다 겪은 일

등록 2020.01.21 09:21수정 2020.01.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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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로 일할 때 어르신들과 함께 2인 1조로 근무한다. 경상도 지역의 특성상 보수적인 분들이 많다. 여기서는 태극기집회가 정상이고, 나라가 이 모양인데 도대체 왜 대통령 지지율이 50%나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다.


대기업을 은퇴하고 문화관광해설사로 봉사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나는 '불행한 청춘'을 담당하고 있다. 정상 궤도를 벗어나 20대 후반에 간호대를 다시 간 나는 사회적 낭비이자 불행한 청춘의 표본으로 어르신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참여연대에서 시위나 하던 조국, 장하준 같은 애들이 나라를 운영하니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이 나라는 곧 사회주의가 될 거야.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니까 자네처럼 불행한 청춘이 나오는 거야."

이 말을 면전에서 들었다. 어르신은 회사를 퇴직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고 해설사로 봉사하고 있다.

"아니 60살에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고요?"

이렇게 물으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소리지르실 분이, 20대인 내가 새로운 시작을 했다고 '사회적 낭비'라니. 이토록 근거없는 비난에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은퇴한 어르신들의 봉사일을 '요즘 젊은 것들'한테 빼앗길 것 같다는 위기감이다.


실제로 청년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작고 작은 일자리들이 생기고 있고, 이 일은 어르신들의 일을 빼앗아 생기는 것도 많다. 문화의 전당에서 표를 검사하는 일이 어르신들에서 6개월짜리 청년 기간제로 바뀌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비록 봉사지만 교통비와 식비를 주는 문화해설사 일에 '젊은애'가 들어왔다는 점은 곧 자신도 대체될지 모른다는 크나큰 위협이다. 사람은 불안할 때 상대를 깎아내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불쌍한 청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 취업이 안 돼서 대학을 두 번 갔으니 이 아이의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불행한 청춘'을 이해해주자.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이 분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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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 2차 투쟁대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처음에 이런 말을 듣고는 크게 분노했다. '나라가 사회주의판'이라는 태극기집회 노인 못지 않은 막말을 듣고 나서, 그에 반박할 많은 논리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들었던 충격적인 막말 중에 하나는 "어차피 엘리트 1명이 10명을 먹여 살리게 되니,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만 교육시켜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를 앞두고는 언성만 높아질 뿐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내가 불행한 청춘이라고 불리는 것에 이의를 제기해도 정말 잠깐 정정할 뿐이다. 내 팩트를 보여드려도 가짜 뉴스로 무장한 논리가 들어오면 답이 없다.

유튜브 영상이 왜 가짜 뉴스인지부터 얘기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보수 유튜브를 지금 정권이 가짜뉴스로 낙인찍어 탄압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내 목만 아프다.

그래서 나는 '불행한 청춘'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르신들 마음의 안정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그냥 허허 웃고 만다. 까짓 거. 내가 더 오래 살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린 글입니다
https://brunch.co.kr/@chhieut/93
#청년일자리 #노인일자리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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