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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한국전쟁 국민보도연맹 재심사건에 '무죄' 구형

창원지법 마산지원, 경남유족회 노치수 회장의 부친 등 6명 재심 ... 2월 14일 선고

등록 2020.01.17 14:12수정 2020.01.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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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국군 등에 의해 민간인 학살을 당했던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17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재심 사건' 결심 공판을 받은 뒤, 법정에서 나와 이명춘 변호사 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윤성효

 
17일 오전 11시.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10여 명이 경남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220호로 법정에 들어섰다. 70여 년 전 국군 등에 의해 학살되었던 아버지들을 대신해 재심을 받으러 온 것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낮게 말하는 속에 어르신들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분간 진행된 공판 거의 마지막에 검사가 구형을 했다. "무죄를 구형합니다"라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구형한 공판검사의 입에서 '무죄'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때까지 굳어 있었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환했다. 어떤 어르신은 낮은 소리로 "아…"라고 내뱉기도 했다.

재심 개시, 항고, 재항고, 이어 대법원 결정 나면서 시작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경남유족회 노치수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방경비법 위반'의 재심사건에 대한 결심 공판이 이날 열렸다. 담당 재판부는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부(재판장 이재덕 지원장, 황정언‧김초하 판사)다.

노치수 회장의 아버지를 비롯한 희생자 6명은 한국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등의 이유로, 재판 절차도 없이 학살 당했다. 일부는 창원마산 앞바다인 '괭이바다'에서 수장되기도 했다.

노치수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 있은 뒤인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듬해 4월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자 항고했다.


이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가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지만, 검찰이 재항고를 했다. 재심 개시를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대법원까지 간 것이다. 2019년 4월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그러고 나서야 재심 공판이 진행될 수 있었다. 재심 공판은 지난해 5월 1차, 7월 2차, 11월 3차가 열렸다. 이때까지 검찰은 학살 피해자들의 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검사는 6명에 대해 "남로당에 가입했고, 한국전쟁 발발 후 괴뢰군과 결합해 협력하는 이적행위를 했고, 이는 국방경비법 위반"이라고 하면서 "사형 집행된 시기를 1950년 5~8월 사이"라고 했다.

검사가 사형 집행 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내용의 공소장 변경을 한 것이다. 공소장 변경에 대해, 이재덕 지원장이 유가족을 대리한 이명춘 변호사한테 물었다. 이 변호사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동의한다는 의미에서 "예"라고 했다. 그러자 이 지원장은 종결하겠다고 했다. 이어 공판검사가 구형을 했다.

검사는 "얼마 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1948년 발생한 여수‧순천사건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이 재심도 순천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내용이 유사하다"며 "무죄를 구형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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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17일 '국방경비법 위반' 재심 사건에 대한 결심공판을 벌였다. 사진은 법정 앞 안냄ㄴ. ⓒ 윤성효

 
"농사를 짓다가 끌려가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 당해"

이명춘 변호사는 "학살 피해자들은 주로 '농지개혁'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뿌리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전쟁 당시 농사를 짓다가 끌려가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며 "집안에서는 어떻게 사형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신 과정도 모른 채 70여 년이 흘렀다. 재판부가 올바른 판단을 해서 억울함을 풀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덕 지원장은 아버지들을 대신해 재판을 받으러 나온 아들‧딸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아무개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할머니와 어머니는 과부로 살아오셨다. 너무 억울하다. 판사께서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고, 71살이라고 소개한 다른 박아무개씨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평생 '아버지' 소리 한번 해본 적이 없다. 무죄 판결이 나면 괭이바다에 가서 아버지라고 목놓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권아무개씨는 "저 역시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다"고, 변아무개씨는 "재판장께서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고 했다.

노치수 회장은 "할머니와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과 남편이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는지를 모르셨다. 재판장께서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으면 한다"고, 조아무개(74)씨는 "한 많은 70년이다.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달라"고 했다.

국방경비법은 1948년 공포되었다가 1962년 군형법이 제정되면서 폐지되었다.

재판부는 오는 2월 14일 오후 2시 선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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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관련 기록 자료. 이 자료에 보면 농지개혁을 요구하는 유인물(삐라)를 살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자료를 사본으로 받은 것이다. ⓒ 윤성효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창원지법 마산지원 #괭이바다 #이명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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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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