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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묵은 고물 라디오에서 '오늘의 날씨'가?

군산 근대소리박물관 이종간 관장을 만나다

등록 2020.01.18 12:14수정 2020.01.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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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1895년 이탈리아 마르코니가 무선통신 장치를 완성하면서 라디오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다. 1920년 1월에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세계 처음으로 방송(KDKA)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라디오 전성시대가 열린다. 이어 영국·프랑스(1922), 독일(1923), 일본(1925)에서 방송이 개시되고, 우리나라는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개국한다. 
 

1925년 6월 26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무선전화 시험방송 모습 ⓒ 조종안

 
전화기도 신기하게 여기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파 미디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신문들은 20세기 문명은 '라디오 문명'이라 논하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 신세계를 접한 청취자들은 '라디오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라디오가 문명의 무대를 독점하면서 신문지 몰락의 시대가 닥쳐올 거라고 예고하는 지식인도 나타났다.

일제의 라디오방송은 효율적인 한반도 식민통치와 정신 및 문화적 침투가 목적이었다. 일제는 1924년 11월 조선총독부 체신국에 무선실험실을 설치하고 첫 방송 전파를 발사한다. 이후 2년 3개월여에 걸친 시험방송을 거쳐 1926년 11월 '반도 민중의 문화를 계발하여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을 설립하였다.


흑백 TV 등장 전까지 특유의 감성과 정보 제공 메신저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던 라디오. 모던걸·모던보이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20~30년대 당시 라디오는 어떤 종류가 있었으며,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언제부터 방송을 청취하기 시작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송호마을)에 있는 근대소리박물관(관장 이종간)을 찾았다.

100년 된 라디오, 지금도 방송청취 가능
 

구형 라디오 백화점 같은 군산 근대소리박물관 전시장 ⓒ 조종안

   

마그나복스 5구 베터리 라디오 ⓒ 조종안

 
일제강점기 정미소 나락창고(100평)로 사용됐던 근대소리박물관, 진귀하고 빈티지한 음향기기들이 가득하다, 근대사의 애환이 담겼을 소품들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100살도 더 먹었을 축음기에서 옛날 가수 노래가 흘러나오고, 케케묵은 고물 라디오에서 오늘의 날씨를 전하는 기상캐스터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이종간 관장은 "86아시안게임 앞두고 서울에 출장 갔다가 황학동 어느 골동품상에서 구매한 1925년형 마그나복스(Magnavox) 5구 진공관 라디오는 지금도 전파가 잡힌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우리나라 최초 시험방송 라디오 모니터용으로 사용된 모델이죠. 방송전파가 잡히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최근에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회로를 구해 실물 그림을 그려놓고 하나하나 테스트해 가면서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구하지 못한 부속은 다른 제품으로 대체, 응용해서 재생했죠. 전파가 잡혀야 의미 있기 때문에 구상을 여러 날 했습니다. 보름도 더 걸렸어요."

타임캡슐처럼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라디오들
 

60~70년대 청년들에게 ‘인기 짱’이었던 소니 빵떡 라디오 ⓒ 조종안

     

보릿고개 시절 부(富)의 상징이었던 제니스 라디오 ⓒ 조종안

   
이 관장은 각종 라디오가 전시된 곳으로 안내한다. 정체불명의 진공관 라디오를 비롯해 보릿고개 시절 부의 상징이었던 제니스 라디오, 1926년형 RCA 6구 진공관 라디오, 지금 봐도 멋스러운 리비코 라디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내셔널 트랜지스터라디오, 60~70년대 모더니스트들 애장품이었던 소니 '빵떡 라디오' 등이 밀봉된 타임캡슐처럼 느껴진다.


소니 빵떡 라디오는 60~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다. 지금 봐도 모양이 현대적이고 간단한 인터페이스도 인상적이다.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해서 휴대하고 다니며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몸체 앞면에 찐빵 크기의 선이 둥글게 그어져 있어 빵떡 라디오란 애칭이 붙지 않았나 싶다. 네모와 동그라미 조화가 단순하면서도 애착이 가는 디자인이다.

장식용 고급 원목케이스 라디오와 가죽케이스에 싸인 트랜지스터도 보인다. '전자(電子)'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보릿고개 시절, 상류층의 상징이자 문화 가정의 필수품으로 사랑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라디오들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중 제조회사 마크가 없어 국산인지 외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탁상용 라디오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세운상가표 7석 라디오 ⓒ 조종안

 
"세운상가표 7석짜리 합판 라디오입니다. 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전인 1960년대 서울 청계천 상가 조그만 라디오 부품 가게들이 3~5명의 기술자를 두고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합판을 가공해서 만든 거라서 '청계천 라디오'로 통했죠. 1950년대 말부터 국산 라디오가 출시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정책 홍보를 위해 라디오 수신기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였지만 중고 제품도 고가여서 농촌은 라디오를 가진 집이 드물었죠."
 

국산 라디오는 언제부터 생산되기 시작했을까. 전쟁의 생채기가 가시지 않았던 1950년대 후반, 락희화학공업이 1958년 10월 금성사(LG화학 전신)를 설립하고, 이듬해 11월 출시한 진공관 라디오(금성 A-501)가 국내 최초 제품으로 알려진다. 당시 상표는 왕관을 연상시키는 별 마크와 금성의 영문 표기 'Gold Star' 등 두 가지로 되어 있었다.

일제가 보급했던 국민1호 라디오, 조선인에겐 '그림의 떡'

이종간 관장은 서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종로에 있는 어느 골동품상에서 구매했다는 '국민 보급형 1호 진공관 라디오(제조 연도:1938년 8월, 내셔널회사 제품)'를 보여준다.
 

국민 보급형 1호 진공관 라디오 ⓒ 조종안

 
"경성방송국이 1927년 2월 16일 개국하죠. 그때 일본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라디오를 가져와서 들었단 말입니다. 그때 그들이 가져온 라디오는 배터리로 사용했죠. 지금도 방송국 전시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이 라디오(국민 보급형 1호 진공관 라디오)가 경성방송국 시절에 들었던 라디오와 흡사하죠.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던 라디오와...

일본 사람들이 1930년대 후반부터 국민 1호다, 국민 2호다, 국민 3호다 이렇게 싸게 만들어 보급했던 겁니다. 그렇게 싸게 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죠. 왜 그러냐면 일본 놈들이 공출이다 뭐다 싹 빼앗아가 버렸는디 우리가 뭐가 남아 있었겠습니까. 라디오를 살 수가 없었죠. 그때 농촌 사람들은 뚝새풀 뜯어먹고 살았다고 허는디.."
 

이 관장 설명대로 라디오는 경성방송국이 개국하는 1927년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라디오는 대부분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나마 서울 시내에 수백 대가 있을 뿐이었고, 고급품 한 대 값은 1000원을 훌쩍 넘었다. 이는 큰 기와집 한 채 값을 웃도는 거액으로 조선인은 사들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군산 지역 라디오방송 청취는 1927년 전후 시작
 

1927년 4월 19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라디오 지방 특약점 모집 광고 ⓒ 조종안

 
전라북도 군산 지역 주민들은 언제부터 라디오방송을 청취하기 시작했을까. 기자가 만난 대부분 사람은 군산에서 가까운 이리방송국(현 전주 KBS)이 개국하는 1938년 10월 1일 이후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30년대 신문과 기록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경성방송국이 개국하던 해(1927) 4월 19일 자 <동아일보> 광고란이 눈길을 끈다. 경성(서울)에 본사를 둔 합자회사 구미양행은 라디오 지방특약점 모집 광고를 내면서 한일은행 각 지점의 기계 가설을 기념하기 위해 함흥, 원산, 강경, 군산 등지에서 주문하는 고객에게는 5월 16일까지 특별 할인하겠으니 기회 놓치지 마시라고 광고하고 있다.

그해(1927) 5월 1일 저녁 군산좌(군산극장 전신)에서 '라디오 청취대회'가 열리고, 1929년 12월 연말을 맞아 옥구군 임피면(현 군산시 임피면)에 사는 이완식씨가 200여 원의 가치를 가진 라디오 한 대를 대야보통학교에 기증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도 보인다. 이는 군산 지역 주민들도 경성방송국 개국 시기에 맞춰 라디오방송을 청취했음을 뒷받침한다.
#라디오 청취 #군산 근대소리박물관 #라디오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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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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